12월 6일 뜻하지 않게 대구 옆 경산에 있는 안심습지를 다녀왔습니다. ‘뜻하지 않게’라 한 까닭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강의’를 하러 갔을 뿐인데 일이 안심습지를 둘러보도록 풀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강의’는 제게 수수께끼입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지난 9월 섭외가 들어왔는데, 왜 제가 꼽혔는지, 저를 추천한 사람이 누구인지, 강의 주제가 무엇인지 따위를, 다녀온 지금도 제대로는 알지 못하는 상태랍니다.

제가 말씀드려야 하는 대상도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가서 보니까, 저보다 습지나 생태에 대해 몇 배는 더 잘 아는 40대와 50대 여성 분들이셨습니다. 풀이나 새 이름을, 저랑은 견줄 수도 없으리만치 잘 아시더라고요.

멀리 보이는 저 철길에서 이 사고가 났습니다.


어쨌거나 여기서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고가(高架) 철로(鐵路)에서 로드킬을 당한 너구리였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철로에서 짐승이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저는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진에서 앞쪽이 원래 머리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 검붉은 핏자국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날 길라잡이를 해 주신 이상원(마흔여섯인 저보다 훨씬 살갗이 탱글탱글했는데 나중에 쉰여섯이라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만) 선생님께서, 논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너구리를 보더니 바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옆에 있는 고가 철로에서 떨어진 녀석입니다. 콘크리트 다릿발을 타고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저 쪽 컨테이너 하우스 지붕 같은 데서 기어올랐을 것이고, 가다가 기차에 받혀 이렇게 떨어졌을 겁니다.”

뒷다리는 사진 위쪽 가운데 그림자 속에 있고, 앞다리는 오른쪽 아래 있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가까이 가 보기도 전에 “아마 머리가 없을 것”이라 하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가 통째로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아니 달아났다기보다는 기차 달리는 속도에 가루가루 깨어져 온통 흩어져 버렸겠지요.

짐승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망이라도 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을 올리지 말까 여기기도 했지만, 아무 잘못도 없이 죽어간 너구리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리 합니다.

(물론 잘못이 있으면 죽어도 된다는 뜻은 여기에 조금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또 이런 글 올리면 “너 잘 났다. 잘난 너는 기차 안 타고 자동차 안 타냐?”는 비아냥이 따라다님도 알지만, 그런 정도는 달게 받겠습니다.)

짐승이 많은, 그래서 로드킬이 일어날 개연성도 높은, 이런 습지에 철길을 내는 까닭은, 보상 비용이 안 들거나 들어도 조금뿐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다른 생명에 대한 인간의 배려 수준이 이렇다는 얘기입니다.

돌아오면서, 지율 스님을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옛날 스님들은,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벌레를 조금이라도 덜 밟으려고, 짚신을 아주 성기게 삼아 신었답니다.

아울러 1997년에 썼던, 그리고 이듬해 저를 비롯한 여섯이 공동으로 펴낸 시집 <사람 목숨보다 질긴>에 실리기도 했던, ‘로드킬을 불러온 이 잔인한 문명에 항의’하는 시, ‘길은 죽인다’도 곁들여 봅니다.



길은 죽인다

걷지 않고 살피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고
달려가는 길이라면
사람만 죽이지는 않는다

으깨진 뼈 조각조각
갈아 뭉갠 위로
갈아 뭉개뭉개
너덜너덜해진 가죽
껍질 벗겨져 허옇게 도드라진
머리통 피는 사방으로 튀지 않아
한 쪽으로 쏠려 검붉게 흩어져 있는데
죽은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가잘 데 없이
끝도 없이 뻗은 길
까닭도 모르고 튼튼히 포장된 도로는
산과 밭 밭과 논 논과 내 내와 마을
마을과 마을을 가르고
그 가르는 길을 가르면
길이 죽인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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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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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7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 2008.12.07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람되지만 너구리 내장 쥐가 파먹었네여... ㄷㄷ

  3. Favicon of http://blog.daum.net/tjryu 미리내 2008.12.07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 로드킬도 웬만해서 뉴스도 되지 않습니다. 탐욕과 소비 위에 건설한 이윤지상주의의 결말입니다. 지율스님과 관련해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불교가 한나라당 정부의 운하파기에 대해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불교는 노력해도 언론이 그 효과를 참여정부때처럼 부각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관철되리라 봅니다. -_-

  4. Favicon of http://ani2life.egloos.com A2 2008.12.07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5. 슬견설 2008.12.08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프킬라, 인간 문명의 끝간 데 없는 잔인함...


    "너 잘 났다. 잘난 너는 기차 안 타고 자동차 안 타냐?"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 중 1인입니다.
    사람, 아니 생물이 살기 위해서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합니다. 저도 사람의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는 하지만 너무 감상적이신 것 같습니다. (저도 물론 로드킬 당한 너구리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가려움을 참아가며, 한 마리의 모기조차 잡지 않는 성인 정도가 되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12.08 0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의견 주셔서요.
      그런데 모기 안 잡는 일은 성인(聖人)이 아니라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수능시험 친 고3 제 아들도 피를 빨린지언정 모기를 잡지는 않습니다.
      그런 정도 실천은 보통 사람도 한다는 말씀이고, 그러니까 이런 생명에 대한 인간의 잔인함을 다루는 글 또한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 답글에 무슨 선생님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해는 하시지 않기 바랍니다.

    • 슬견설 2008.12.08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히려 저의 글이 기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솔직히 지금 닉네임 슬견설이나, 모기 이야기는 제가 봐도 과장(?)한 것이구요. 저도 동물을 위한 에코코리더나 서식지 보전 등사람의 무분별한 발전에 대해 동물에 대한 배려가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시기(전혀 인식못하던)가 있었지만, 환경이나 동물에 대한 배려가 점점 커져 가는 것 같습니다. 기자님의 글도 그 배려나 관심을 크게 할 수 있고요. 사실 "로드킬, 인간 문명의 끝간 데 없는 잔인함"이란 제목을 보고, 사람이 고가철로에 올라오는 너구리까지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잔인하다고까지 할 것인가하는 생각에 좀 뒤틀린 심사(?)에 글을 올렸었습니다. 기자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제 생각이 좁고, 짧았던 것 같습니다.

    • sona 2008.12.08 0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훤주님께 다는 댓글입니다.
      생명은 이유를 불문하고 소중한것입니다. 때로는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문명이 잔인함을 동반한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그렇다고 우리인간이 다시 원시시대로 되돌아갈수는 없는거겠죠? 문명이 발달하는만큼 다른 생명들에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것,저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드님을 두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피를 빨릴지언정 모기를 잡지 않는다구요?평범한 사람인 제 입장에서는 심하게 오버스럽다못해 약간 어리석게 들립니다.꼭 그렇게까지 과장되게 말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습니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네요. 윗글을 보며 맞는말이라고 동감하다가도 김훤주님의 댓글을 보니 묘하게 반감이 생기구요.그런 표현은 정말로 전달해야할것에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릴뿐입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12.08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슬견설님, 고맙습니다. 꾸벅.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12.08 14: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sona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이 아니고, sona님께서 반감이 든다고 하셔도 어떻게 고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여름 동네 아이들이 개미를 발로 밟아 죽이는 옆에를 말씀드린 제 아들과 함께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야 너는 저거 어떻게 생각해?" 이리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들이 "아빠, 저는요 여름에 모기도 안 잡아요. 그런데 뭘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이랬습니다.
      제가 시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생명이 어떻고 하면서 교육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그리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단지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이고, 이를 두고 sona님께서 과장이라 여기셔도 그것까지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 같습니다.

    • 늦게봐찌만 2009.03.21 0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슬견설 짜증남..
      걍 보고 넘기면 대지 멀 모기 잡지않는 성인?
      완전 짜증 이빠이

  6. 게르드 2008.12.08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꼭, 미물과 동물을 똑같이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간지러워도 벼룩과 모기를 참아내는 것 보다. 저런 철길을 낼 때 동물을 위한 배려를 하는게, 조금은 더 환경을 위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비슷한 맥락이겠죠. 요즘처럼 문명화된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모기 몇 마리 안 잡는 것 보다는 차라리 모기 몇 마리 잡더라도 자동차 몇 번 덜 타는게 환경에는 훨씬 도움이 되겠죠.

    '문명화된 사회' 라고 정의한 이유는 채소를 먹는 것 조차도,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채소를 기르기 위해 뿌리는 비료와 농약을 생산할 때, 그리고 생산된 것을 우리 식탁까지 운송할 때, 모두 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지구를 덥히는데 일조하지요.

    환경 보호라는건, 너무 크게도, 작게도 생각할 필요는 없는 듯 합니다. 지적하신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살아 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일견 쓸모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저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배려도, 그 지역 생태계를 놓고 본다면, 분명히 도움이 되는 일이겠지요.

  7. 흑흑 2008.12.08 0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불쌍해요.. 몇달전에 전 동네 찻길에서 로드킬당한 냥이를 봤는데
    진짜 제가 기르던 냥이도 아닌데.. 되게 마음이 아픈거있죠
    속상하더라구요 ..

  8. 미국 2009.02.27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aryland 주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이런 사고들을 로드킬이라고 부르는지는 처음 알게되었네요. 이 주변에서 생활하시다 보면,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사고들입니다. 거짓말 안하고 하루에 1~2건들을 쉽게 볼 수 있네요. 너구리 뿐만 아니라 작게는 토끼, 설취류, 크게는 큰 사슴까지도 길가에 죽어있는 모습을 많이 보네요 -_-;

    모, 워낙에 미국에는 야생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주 정부에선 속수무책으로 아무대응을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도로를 달리 만들 수도 없고 설령 다시 만들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효과를 얻을지는 미지수 이네요.

    사슴을 치면 바로 신고는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물 못지않게 사람의 목숨도 위협이 된다고 하네요. 하지만 미국에서 배울점은, 빠르면 하루 늦어도 2~3일 만에 사채를 정리하는 워커들이 있습니다.
    또 눈이 많이 오면 실시간 재설 작업 해주는것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아무튼, 저도 운전 하다가 길가에 죽은 많은 야생동물들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들, 저 또한 운전을 포기할 순 없는게 현실이니까요..

  9. Favicon of http://sexygony.com 섹시고니 2009.02.27 0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명을 지키는 생각들이 더 많이 모여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10. 페타 2009.04.10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훤주님,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속에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소중한 저 생명들을 보면 늘 답답한 마음 끝이없는데요, 이렇게 좋은 글, 오랫만에 같은 생각을 갖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11. 라이카 2014.06.01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차는 그나마 나을 줄 알았는데 기차 로드킬도 빈번한가 보네요... 있는 고속도로나 선로에 만족하고 더 이상 늘리지 않으면 좋겠는데...

  12. 라이카 2014.06.01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차는 그나마 나을 줄 알았는데 기차 로드킬도 빈번한가 보네요... 있는 고속도로나 선로에 만족하고 더 이상 늘리지 않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