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우리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가 “‘존경받는 CEO대상’은 돈 주고 받은 상이었다”를 단독 보도했습니다. 알려진 그대로, 상금이나 상품도 전혀 없는 ‘무늬만’ 대상이었습니다.
“어청수 경찰청장과 자치단체장 등 26명이 수상한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대상’은 결국 거액의 돈을 홍보비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받은 ‘돈 내고 상 받기’의 전형으로 드러났다.”가 첫 문장이었습니다.
김주완 선배는 이 기사에서, “돈 내고 상 받기가 맞고 자치단체장들이 돈을 준 사실도 맞지만 어청수 경찰청장이 돈을 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경찰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놨는데, 그 때까지 통보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해서 오후에 우리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기사가 뜨자 마자 많은 이들이 눈길을 여기에다 쏟았고, 이 때문에 경찰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기사가 뜨자 경찰청은 부랴부랴 돈을 낸 적이 없다고 답변을 보내왔고, 그 내용은 기사에 반영되었습니다.
저는 이 날 4시 30분 노사공동위원회 일정을 챙기느라 경찰들 바빠진 사정을 제대로 낌새를 채지 못했습니다. 3층 노조 지부 사무실에서 6층 회의실로 올라가는데 경찰관을 만났는데도 말입니다.
자주 보이는 경찰관 한 명과 다른 한 명이 웃으며 4층 편집국 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는 김주완 선배 ‘웃으며’ 배웅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별로 문제가 없는 줄 알고, 가던 걸음을 서둘렀습니다.
경남경찰청장으로 국정감사 받던 2004년.
조금 있으려니 부속실 직원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사장님, 경찰청장 전화, 급하답니다.” 이랬습니다. 우리 허정도 사장께서는 회의 중이라 나중에 받겠다 하셨지만, 노조 쪽에서 “괜찮으니까 받고 오시라.” 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대충 그런 전화겠거니 짐작했지요. 나중에 알아봤더니 짐작이 맞았습니다. 다만 어청수 경찰청장이 아니고, 경남지방경찰청의 경찰청장이었던 모양입니다. 한 시간 남짓만에 회의를 마치고 4층 편집국으로 갔습니다.
5시에 시작하는 편집국 데스크회의를 마쳤으면, 김주완 선배를 만나 왜 전화했는지 까닭을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회의는 진행 중이었습니다.
3층 노조 지부 사무실로 내려갔지요. 조합원 한 명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6시 조금 넘어서인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김주완 선배가 엄살을 떨었습니다. “경찰 부탁에 따라 내일 경찰청장 기사 안 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하.
저는 멍청하게 속아넘어가, “알았습니다.” 하고 끊으려 했습니다. 편집국장한테 어찌된 경위인지 알아봐야 겠다 생각을 했겠지요. 그러니까 김주완 선배는 “하하, 아니에요. (신문사에서) 그 정도 소란은 다반사잖아요.” 하면서 “1면 머리로 나가는데, 놀려 주려고 한 말이요.” 이러십니다.
“아까 전화했을 때는 훤주 씨 도움 좀 받으려고 그랬지.” “그래 편집국 들어오는 것 같더니 금방 가 버리데? 눈치도 못 채고. 그 때 데스크 회의 하는 옆 방에 경찰들이 가지 않고 죽 치고 있었어요. ‘어청수’라는 이름만이라도 좀 빼 달라면서…….”
그러니까 이날, 우리 경남도민일보에 찾아온 경찰은 제가 보기로는 마산 동부경찰서 정보과 직원, 경남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과 직원들입니다. 데스크회의와 기사 마감으로 바쁜 와중에 김주완 선배는 이들을 뒤치다꺼리했을 뿐 아니라 갖은 전화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올해 어청수 청장.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과연, 이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을까, 아니면 위에서 시켜서 움직였을까. 사실 이런 물음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정보과 직원은 정보과장이 시켰고 홍보담당관과 직원은 경남경찰청장이 시켰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딱 잘라 말씀드릴 수 있지만 그 윗선까지는 그리 하기가 좀 버겁습니다. 그래도 물론, 경찰청장 본인이 틀어 막아라 시키지는 않았다고 믿어야겠지요? 저는 다만 다음날, 마산동부경찰서 정보과장께 전화를 드렸을 뿐입니다.
“시대가 옛날 권위주의 정권 독재도 아니고 하니 경찰이 편집국 드나들어도 홍보 담당 직원이면 아무렇지 않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드나드는 이가 정보 직원이라면 아무래도 사찰(査察)한다는 느낌이 풍기고 문제 제기도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뜻은 아니고요, 일선 경찰서에는 일상적인 홍보 담당 직원이 없거든요. 그래서 (무슨 요구는 않고) 사정이 어찌 됐는지만 좀 알아보라 했어요. 그리고, 전화하신 취지는 잘 알았습니다.”
이날 12월 3일은, 김주완 선배한테는, 한편으로는 커다란 보람을 안겨준 하루였습니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고달프고 버거웠을 것입니다. 노조 지부장이기는 하지만 후배인 제게서, 작은 힘이라도 좀 빌리고 싶었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하.
※첫 보도 : '존경받는 CEO 대상'은 돈주고 받는 상이었다
※관련기사 : 26명 모두가 대상(大賞), 참 희한한 CEO상
※관련기사 : '돈주고 상받기' 이것만 문제일까?
※관련기사 : 또 꼬리잡힌 '상 매매' 이번엔 꼭 뿌리뽑아야
※관련기사 : '상매매' 관행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관련기사 : 'CEO대상' 주관·후원단체, 언론인들도 모른다
김훤주
'지역에서 본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드킬, 인간 문명의 끝간 데 없는 잔인함 (25) | 2008.12.07 |
---|---|
“이 비싼 향수로 오늘 밤 유혹해 봐?” (8) | 2008.12.07 |
'CEO대상' 주관·후원단체, 언론인들도 모른다 (6) | 2008.12.05 |
'상 매매' 관행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2) | 2008.12.04 |
26명 모두가 대상(大賞), 참 희한한 CEO상 (23) | 2008.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