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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체벌 문제가 논란이 되는 걸 보니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였습니다. 부산 문현동에 있는 성동중학교였는데, 몇 학년 때인지도 가물가물하네요. 몸집이 다소 뚱뚱하시고 인상도 푸근한 국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성격이 너무 좋으셔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심지어 찡그리는 모습도 보기 힘든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딱 한 번 불같이 화를 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자꾸 무시하며 떠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갑자기 가장 요란스레 떠들던 아이 세 명을 "너! 너! 그리고 또 너!"라고 지목하며 "뒤에 가서 빗자루 몽둥이 들고 이리 나와!"하고 외쳤습니다.
순간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습니다. 그 선생님이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원래 순한 사람이 한 번 화를 내면 더 무섭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목을 받은 아이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삐쭉삐쭉 일어나서 빗자루를 들고 교단 앞으로 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교단 앞에 도열하자 선생님의 표정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예의 눈웃음을 띤 표정으로 도열한 아이들 뒤쪽 교실바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좀 더러운데, 쓸고 들어가라."
일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씨익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서서 다시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이들도 더 이상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빗자루 몽둥이를 찾아 교단 앞으로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선생님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셨던 것입니다. 머리 끝에서 어깨쭉지를 통해 뭔가 찌릿한 것이 내려오는 감동 같은 걸 그 때 느꼈습니다.
그 선생님은 '관용'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 덕분에 제가 이후 국문학을 전공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의 성함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혹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라도 집에 가서 중학교 때 앨범을 꺼내봐야 겠습니다.
[내용 추가] 아! 마침내 찾았습니다. 1978년 성동중학교 3학년 5반 권재철 선생님이셨습니다.
내 머리 속 기억에는 상당히 나이가 많으셨던 선생님으로 남아 있었는데, 앨범 사진을 찾아보니 의외로 젊어보이시네요. 지금도 교단에 계실까요? 혹 이 선생님 아시는 분 계세요? 전화라도 한 번 드리게 말입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였습니다. 부산 문현동에 있는 성동중학교였는데, 몇 학년 때인지도 가물가물하네요. 몸집이 다소 뚱뚱하시고 인상도 푸근한 국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성격이 너무 좋으셔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심지어 찡그리는 모습도 보기 힘든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딱 한 번 불같이 화를 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자꾸 무시하며 떠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갑자기 가장 요란스레 떠들던 아이 세 명을 "너! 너! 그리고 또 너!"라고 지목하며 "뒤에 가서 빗자루 몽둥이 들고 이리 나와!"하고 외쳤습니다.
순간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습니다. 그 선생님이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원래 순한 사람이 한 번 화를 내면 더 무섭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목을 받은 아이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삐쭉삐쭉 일어나서 빗자루를 들고 교단 앞으로 갔습니다.
그 땐 이런 정도의 체벌이 비일비재했던 시기였습니다. 사진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그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교단 앞에 도열하자 선생님의 표정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예의 눈웃음을 띤 표정으로 도열한 아이들 뒤쪽 교실바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좀 더러운데, 쓸고 들어가라."
일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씨익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서서 다시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이들도 더 이상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빗자루 몽둥이를 찾아 교단 앞으로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선생님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셨던 것입니다. 머리 끝에서 어깨쭉지를 통해 뭔가 찌릿한 것이 내려오는 감동 같은 걸 그 때 느꼈습니다.
그 선생님은 '관용'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 덕분에 제가 이후 국문학을 전공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의 성함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혹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라도 집에 가서 중학교 때 앨범을 꺼내봐야 겠습니다.
스캔을 잘못받아 사진이 좀 기울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고치겠습니다.
[내용 추가] 아! 마침내 찾았습니다. 1978년 성동중학교 3학년 5반 권재철 선생님이셨습니다.
내 머리 속 기억에는 상당히 나이가 많으셨던 선생님으로 남아 있었는데, 앨범 사진을 찾아보니 의외로 젊어보이시네요. 지금도 교단에 계실까요? 혹 이 선생님 아시는 분 계세요? 전화라도 한 번 드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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