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체벌 문제가 논란이 되는 걸 보니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였습니다. 부산 문현동에 있는 성동중학교였는데, 몇 학년 때인지도 가물가물하네요. 몸집이 다소 뚱뚱하시고 인상도 푸근한 국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성격이 너무 좋으셔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심지어 찡그리는 모습도 보기 힘든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딱 한 번 불같이 화를 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자꾸 무시하며 떠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갑자기 가장 요란스레 떠들던 아이 세 명을 "너! 너! 그리고 또 너!"라고 지목하며 "뒤에 가서 빗자루 몽둥이 들고 이리 나와!"하고 외쳤습니다.


순간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습니다. 그 선생님이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원래 순한 사람이 한 번 화를 내면 더 무섭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목을 받은 아이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삐쭉삐쭉 일어나서 빗자루를 들고 교단 앞으로 갔습니다.

그 땐 이런 정도의 체벌이 비일비재했던 시기였습니다. 사진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그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교단 앞에 도열하자 선생님의 표정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예의 눈웃음을 띤 표정으로 도열한 아이들 뒤쪽 교실바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좀 더러운데, 쓸고 들어가라."

일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씨익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서서 다시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이들도 더 이상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빗자루 몽둥이를 찾아 교단 앞으로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선생님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셨던 것입니다. 머리 끝에서 어깨쭉지를 통해 뭔가 찌릿한 것이 내려오는 감동 같은 걸 그 때 느꼈습니다.

그 선생님은 '관용'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 덕분에 제가 이후 국문학을 전공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의 성함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혹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라도 집에 가서 중학교 때 앨범을 꺼내봐야 겠습니다.

스캔을 잘못받아 사진이 좀 기울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고치겠습니다.


[내용 추가]
아! 마침내 찾았습니다. 1978년 성동중학교 3학년 5반 권재철 선생님이셨습니다.

내 머리 속 기억에는 상당히 나이가 많으셨던 선생님으로 남아 있었는데, 앨범 사진을 찾아보니 의외로 젊어보이시네요. 지금도 교단에 계실까요? 혹 이 선생님 아시는 분 계세요? 전화라도 한 번 드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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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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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gs1071.tistory.com 피오나 2008.10.28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제 글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십시요..^^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실비단안개 2008.10.28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선생님이셨네요.

    아이가 고등학생 때 선생님께 체벌을 당한적이 있습니다.
    하여 병원에 입원과 통원 치료를 한달 받았지요.
    그러나 마음은 치료가 되지 않더군요.

    어이없는 후소문에 시달려야 했고요.
    아이는 저 보고 엄마는 바보가 - 하더군요.
    인간이 아닌 건 무시가 최상이지요.
    제가 그 선생님을 무시해도 제 아이는 가장 아름답고 열심히 공부해야 했던 고 3을 엉망으로 보냈습니다.

    학생들의 체벌 기사가 나오면 제가 많이 민감해집니다.

    •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실비단안개 2008.10.28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나저나 믹시의 토큰 충전은 어떻게 하나요?
      오로지 기사 추천하기 위하여 믹시에 아이디를 만들었는 데 토큰이 바닥이라니-
      보통 3개씩 드렸거든요. 이럴줄 알았으면 아낄걸 그랬네요. ㅠ -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주완 2008.10.28 2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알기론 로그인을 새로 할 때마다 토큰 50개가 충전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자동로그인이 계속 되어 있으면 안 될 수도 있겠네요.
      로그아웃을 하시고 다시 로그인을 해보시죠.

    •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실비단안개 2008.10.29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시 로그인을 하니 충전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리구요.^^

      선생님의 사진을 올리셨네요. 꼭 연락이 되어 통화 하시고 만나는 기쁨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 ㅋㅋ 2009.05.16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주완! 이 씨발새끼가 용기를 좀 내나 햇더니 바로 꼬리를 내리는구만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야 이 씨팔새끼야!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같은 빨갱이 새끼가 이 지랄을 하고 있는거냐? ㅉㅉㅉㅉㅉㅉㅉㅉㅉ




























      아들 새끼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이 씨팔좆같은 새끼야! 설마 니 여편네도 선생년이냐?
      니 여편네도 개좆같은 씨팔년인 선생년이라면 더 이상 할말이 없다. ㅉㅉㅉㅉㅉ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주완 2009.05.16 1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무슨 말인지...

  3. Favicon of http://buldackcamera.tistory.com 불닭 2008.10.28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치가 많으신 은사님이시네요 ㅋ

    에휴,,, 선생님들이 인간적이시고 착하신분들이 많은데 몇몇 분들때문에 모두 욕을 ㄷㄷ;

    주완님 좋은 하루요 ^^

  4. 2008.10.29 0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분이시네요.
    요새 과잉체벌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더라구요.

    학생인 제 생각으로는 필요한 체벌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긴하죠.
    제가 고1때 저희반 반장이 한번 체벌받은적이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여학생 종아리를
    각목으로 무려 20대씩이나 때리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요새 학생들 제가 봐도 문제가 많긴 많습니다.
    학교에서도 담배는 기본이고
    선생님을 아주 우습게보고 대들고 조롱하고, 아마 직접 보신다면 경악하실껍니다 ^^;

    김주완님의 은사님처럼 체벌이 아닌 다른방법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요.
    그런 훈륭하신 선생님들이 많다하더라도 요즘 학생들에겐 별로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까울따름입니다. 제가 제 또래들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걸까요^^;

    오늘도 좋은하루되셨으면 합니다^^

  5. Favicon of http://sanhajunha.tistory.com/ 뉴클리어 2008.10.29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 해 제 나이 41, 중.고등학교 다닐 때 체벌이 일상화되었었죠. 귀싸데기,빠따....어휴~. 일제 잔재니 합니다만, 한 반에 5-60명씩 많을 땐 6-70명씩 밀어넣다 보면 정상적인 방법으론 통제 불가능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교육보다는 통제에 더 신경쓰게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다고 봅니다.

    군대의 경우를 보면 분대 단위로 생활을 하는 공수부대에서 오히려 일반 부대에에 비해 구타사고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10명 이하의 부대원이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숙식을 하다보면 정이 들게 되고 또 훈련량이 엄청나다 보니 팀웍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한 내무반에 4-50명씩 밀어 넣으면........어휴~

    부산 가야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얼마 전 교감선생님으로 승진하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뻣는지...박봉에 어려운 학생 등록금 대 주는 흔치 않는 분이셨지요. 아~ 그리고 보니 나의 선생님도 국어담당이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6. 푸른옷소매 2008.10.29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선생님이시네요. .. 이름을 기억해 내시면 좋겠군요. 칭찬 받아 마땅한 분은 칭찬 받아야 하니까요.

    우리 아이도 그런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되면 좋겠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좋은 선생님 얘기는 한 번도 안하니 맘이 아프더라구요.

  7. 아이는꽃으로도때리지마라 2008.10.29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선생님이셨군요...
    점점 저런... 선생님을 볼수가 없어서 서글픔니다..... ㅜ.ㅜ

  8. 하영맘 2008.10.29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현동 성동중을 나오셨다니 고향분을 만난거 같아 너무 기분이 좋으네요..^^
    전 문현여중을 나왔거든요.
    높은 비탈길을 낑낑 올라 가려면 정말 아찔햇는데..ㅋㅋ
    그땐 왜 그렇게 맨날 지각을 했는지..
    하지만 봄이면 담벼락 너머로 날리던 라일락향은 지금도 절 미소 짓게 하네요..^^
    님 덕분에 다시한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봅니다.

  9. 동뫼 2008.10.29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벌(體罰) - 찬반(贊反)에 관한 토론

    ◈.[000신문-여론칼럼-000]에서 벌어진 "체벌"에 대한 찬반토론의 글입니다.
    (7.2.~7.27.)
    ●.[토론 글-Ⅰ] ‘체벌’이라는 이름의 노예제도- (체벌 반대)
    *글쓴이 ;조00/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000000 편집부담당
    *편집 2002.07.1(월) 18:16

    6월27일치 〈000신문〉에 실린 “초등생, 회초리 5대 이상 못 때린다”와 〈00일보〉 26일치 “손발 때려선 안 돼”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며 나는 충격과 분노를 참지 못했다. 학생의 안전과 인격의 보호라며 교장, 교사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엉덩이에 체벌을 준다는 것이 이번 체벌 합법화 조처에서 나온 방법이었다.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 다른 학생이 없는 곳에서 정해진 매로 교장과 교감을 배석시킨 후 안전한 범위 내에서 때린다”는 말을 보면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체벌 그 자체가 인권 모독 아닌가? 학교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체 가학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그 자체가 전근대적인 것이며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체벌이 비인권적 제도라는 대전제는 잊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몇 대를 때려야 한다. 어디를 몇 대 때려야 안전하다”는 말로 저마다의 잣대를 대보고 있다. 집단의 규칙과 규율을 어길 때 그 구성원에게는 적절한 징계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 징계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죄에 대한 응보가 아닌 반성의 기회를 주는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둘째는 죄를 지은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임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 가학과 같은 전근대적 제도를 통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나라 어디를 가도 집단의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체적 고통을 통해 처벌을 가하는 곳은 학교밖에 없다. 학생이기 때문에, 또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지 않는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산업혁명 후기, 방임적 자유 아래 자본가들은 인권유린을 서슴지 않으며 노동자들을 혹사시켰다. 12살도 채 안 되는 어린이들에게 혹독한 일을 시켰던 그들은 노동자들이 규칙을 위반하면 합법적으로 채찍과 몽둥이로 때릴 수 있었다고 한다. 공장의 필수 유지 품목으로 노동자들에게 체벌을 가할 수 있는 몽둥이들이 늘 배치돼 있었다는 것을 보며, 이것이 지금의 학교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혹독한 노동과 같은 입시경쟁 아래 탈선하거나 규칙을 어길 때는 신체적 고통으로 다스린다는 것이 그때와 다를 게 없다. 오래 전부터 지속된 학생 인권유린을 교육 당국이 제도화하겠다는 이때, 나는 과연 우리나라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교사의 권위를 구실삼아 잘못된 구시대적 제도를 끌어오려는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 입안자들이여, 더이상 학생을 노예로 만드는 행동을 그만두고 체벌제도를 없애라. - 끝.

    ●●.[토론 글-Ⅱ]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체벌이라는 이름의 노예제도' 대한 다른 생각 - (체벌 찬성)
    *글쓴이 ; 동뫼/ 인천 00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편집 2002.07.08(월) 18:48

    7월2일치 ‘왜냐면’에 실린 조00씨의 글 “‘체벌’이라는 이름의 노예제도”를 정독하고 “가는 말이 험악해야 오는 행동 공손하다”는 신종 속담이 가끔씩 통용되는 교육현장에 20여년 몸담고 있는 평교사로서 체벌로 가해지는 ‘매질-회초리’의 긍정성을 통해 조씨의 글에 반론을 펴고자 한다.

    지난 6월26일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학교생활규정’ 예시안 중 학생 체벌에 관계된 내용, “… 다른 학생이 없는 장소에서 교감이나 생활부장 등 제3자가 반드시 입회한 가운데 매질을 해야 하고 …”에 대해 조씨는 “당혹스러울 따름”이라고 했는데, 당혹스럽기는 대부분의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우리 교육현장의 실상을 외면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훌륭한 우리의 교육적 체벌문화인 회초리(달초)의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안이기 때문이다.

    조씨 등 체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 사항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조씨의 주장은 사람이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 우월성’에 터를 두고 있다.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 종(種)임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반드시 항상 더 도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이 오욕(五欲)을 버리고 오욕락(五欲樂)에서 벗어나 참길을 가고자 할 때 비로소 영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을 참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 또는 사람이 참길을 잘 가지 못할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해 ‘조건 부여’를 제공하고 ‘조건반사’를 형성하는 과정 중에 ‘강화’가 필요하다. 강화(교육효과 향상)의 한 수단으로 ‘상(賞)과 체벌’은 당연한 방편이 아닌가! 이 점에선 사람도 다른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이 과정과 결과의 응보로 주어지듯이 벌(징계) 또한 응보로 주어지는 것이다. 잘못에 대한 과보로 불이익을 받으면서 후회와 반성이 뒤따르지 않겠는가.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둘째, 조씨의 주장은 “마음의 변화만이 우리들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고, 이런 변화만이 가치 있는 변화”라는 데 터를 두고 있다. 마음의 변화만으로 우리들의 행위를 올바르게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모두 바라는 바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이상(理想)일지도 모른다. “행위와 형식(물리적 힘)이 보통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의 변화를 많은 부분에서 가져왔고, 또 가져오고 있다”는 실상(實相)에 우리 모두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셋째,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비록 낡고 좀먹어 보여 불안하고 맘에 안 들지라도 기둥부터 제거해서는 안 된다. 면밀히 조사하고 대신할 성한 기둥부터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초중등 교육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구호’와 더불어 교육현장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과 대책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과 대안도 없이 기존의 관습과 제도를 바꾸고 폐지하는 것은 자칫 초중등 교육현장의 혼돈과 붕괴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조씨는 “체벌, 그 자체가 인권 모독”이라고 했는데,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나는 오히려 적절한 달초(체벌)는 ‘인권 모독’이 아니라 학생들을 유능하고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육성시키기 위한 ‘인권 담금질의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종류의 벌과 체벌은 학생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학(加虐)을 줄 소지를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다. 특별히 달초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체벌로서 달초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따지기보다는 학생에게 가해지는 여러 종류의 벌과 체벌이 합리적이고 교육의 이치에 맞게 시행될 수 있는 길, 즉 제도를 따짐이 옳다고 본다.

    조씨의 주장 가운데 딱 한 가지만 말꼬투리를 잡아 보고자 한다.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체적 고통을 통해 처벌하는 곳은 학교밖에 없다.” 이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학교교육 현장과 교사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록되었다고 본다. 학생들이 규율(학생선도 규정)을 어길 때마다 학생선도 규정을 적용하여 학생들을 처벌한다면 ‘근신(학교내의 봉사), 유기정학(사회봉사), 무기정학(특별교육이수), 퇴학’ 등의 처벌을 받는 학생 수가 늘어난다. 또 처벌에 관한 기록을 일정 서류에 남겨 두고 수십 년을 보관하여야 한다. 솔직히 이런 일에 우리 교사들의 정서는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벌금을 물릴 수도 없고, 수업을 못 받게 일정한 곳에 가두는 것도 현실적으로나 정서상으로 어렵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어라!”,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이 두 속담이 주는 교육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서 이만 마친다. -끝.



    ●.[토론 글-Ⅲ]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와 다른 생각-교사와 조련사는 다르다 - (체벌 반대)
    *글쓴이; 유00/ 00대학교 교지 <00> 편집장 *편집 2002.07.19(금) 18:09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와 조련사의 차이는 옳다고 믿는 것을 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폭력으로 길들이느냐에 있다. 현직 교사인 김동욱씨는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왜냐면’ 7월9일치)에서 사람과 동물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체벌을 옹호하고 있다.

    김동욱씨는 사람이 언제나 도덕적인 것은 아니며 사람을 참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건 부여를 하고 조건반사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김동욱씨가 혼동하고 있는 부분은 도덕과 조건반사의 차이다. 도덕은 이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조건반사는 생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매에 대한 조건반사를 통해 사람이 마치 도덕적인 양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도덕은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지 이익을 바라거나 불이익이 두려워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김동욱씨의 가짜 도덕이 무너지는 것은 두 가지 경우다. 한 가지는 매가 사라지는 경우다. 매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비록 학교에서는 얌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학교에서 매맞으면서 큰 학생들은 매질할 선생이 없는 사회인이 되는 순간 온갖 허위와 부도덕에 가득 찬 삶을 살아간다. 또 한 가지는 매가 부도덕을 가르치는 경우다. 폭력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그 “응보”에 익숙한 학생들은 자라나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힘에 쉽게 굴복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모두 이성의 요청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폭력에 굴종하는 법만 배운 결과다.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의 최종 목표는 본질적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적절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데 있다. 학생들은 시키는 대로 일하는 법을 학교에서부터 배운다. 여기에 잘 부합하는 학생은 우수한 노동력이 되어 남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반발하는 것은 결코 교사보다 도덕적으로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체벌에 대한 길고 지루한 논쟁의 사각은 여기에 있다. 교육은 학생들의 자유를 억압한다. 공장에서 상품에 자유가 없는 것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에겐 자유가 없다. 자유가 없는데 도덕이 있을 리 없다. 학생들의 도덕성을 함양하기 위해 매를 든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학생들이라는 생산과정 중에 있는 상품을 오차 없이 출고하기 위해서 폭력을 동원해 통제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체벌은 없어져야 하거니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표가 인간의 인격적 완성과 자아 실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끝.



    ●.[토론 글-Ⅳ] 교육은 인격적 만남의 과정 되어야 - (체벌 반대)
    *글쓴이 ;유00/ 서울 00중학교 교사 * *편집 2002.07.19(금) 18:09

    7월9일치 ‘왜냐면’에 실린 동뫼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교육의 길을 함께 걷는 교사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로서 ‘체벌의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교육적’이거나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신념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체벌을 반대한다. 이번 교육인적자원부의 체벌에 대한 방침은, 논의를 ‘체벌의 정당성 여부’에서 ‘체벌의 방법론’으로 비켜가게 했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하고 싶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도 많은 교사들이 체벌을 선호하지 않는다. ‘모든 교사들은 체벌을 찬성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번 예시안은 회수하고 취소하기를 바란다.
    ‘체벌 찬성론자’인 동뫼 선생님의 의견에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사람을 참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상과 체벌’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방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참길’을 결정하는 존재는 누구이며, ‘사람’의 범위에는 ‘학생들이나 미성년자’만 포함되는 것인가? 교사는 ‘사람의 참길’을 이미 알고 있는가? ‘사람의 참길’을 배워야 하는 대상은 우리 모두다. 그런데 왜 어른들과는 ‘대화’를 하고 학생들과는 ‘체벌’로 만나는가? 둘째, “학생들이 학생선도 규정을 어길 때마다 징계를 하고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교사들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나도 공감한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보면 어떨까? ‘학생선도 규정’은 말 그대로 학생들을 ‘바르게 이끌기’ 위한 방편이고, 징계 또한 ‘학생의 인격이 존중되는 교육적인 방법’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의 선도 또한 매보다는 대화를 통한 ‘인격적 만남’으로 가져가는 게 교육적이지 않겠는가?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 ‘교사하기 너무 힘들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육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을 학교(교사)를 향해 표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교육정책 전반에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대립 구도로 나타난다. 교육은 ‘교사(인격체)와 학생(인격체)이 만나 서로 돕고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한다면 체벌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끝.



    ●.[토론 글-Ⅴ]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에 찬성-'인격적인 체벌은 불가능한가' - (체벌 찬성)
    *글쓴이; 김00/ 00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편집 2002.07.26(금) 18:16

    '왜 체벌과 폭력을 동일시하는가' 교사가 체벌을 하면 교육은 더 이상 인격적 만남의 과정이 안되는 것인가 만약 교사가 체벌을 하면 교사는 조련사일뿐 더 이상 교사일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격적인 관계에서도 체벌은 존재할 수 있다. 무조건 체벌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체벌은 단지 ‘폭력에 길들이는 행동’ 혹은 ‘짐승과 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논지를 전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맞아서 폭력에 길들여 진다는 말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군대에서의 구타와 스승의 체벌은 분명 다르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체벌을 경험했다고 아이가 폭력적이라면 이 땅의 기성세대들은 모두 폭력의 한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다. 서당 훈장님의 매는 아이를 폭력에 길들이게 하였나 오히려 아이들을 너무 귀하게 키운 요즘, 수많은 학교폭력의 잔혹함은 과연 누구한테 배운 것인가

    체벌엔 3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스승은 절대 감정적으로 체벌을 해선 안된다. 둘째, 학생이 받아 들이지 못할 것이라 판단되는 순간에는 절대 매를 들어선 안된다. 셋째, 왜 잘못을 했는지 그리고 응당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야 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우리는 불교에서 ‘방’과 ‘할’(몽둥이로 때리고 큰소리로 꾸짖음)의 가르침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은 스승이 제자의 학습단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알에서 쪼아야 하고, 어미닭은 밖에서 알 껍질을 쪼아 주어야 한다. 방과 할은 어미닭이 해야할 일이다. 사랑하는 제자가 아니면 스승은 결코 때리지 않는다. -끝.




    ●.[토론 글-Ⅵ] 페스탈로치도 매를 들었다 - (체벌 찬성)
    *글쓴이 ; 김00/경기도 00종합고등학교 교사 *편집 2002.07.26(금) 18:16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은 모욕적 체벌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내가 고려대 김정환 교수(현재 정년퇴임)의 ‘전인교육론’이라는 강의를 듣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 분의 ‘체벌 교육론’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많은 교육학자들의 체벌 찬반론이 있지만 그 중에서 음미해 보아야할 사람으로 페스탈로찌가 있다. 사랑의 교사로 알려져 있는 페스탈로찌는 매를 들지 못하는 교사는 아이들의 영혼을 가꾸는 어버이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교사라고 했다. 체벌이 좋은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는 ①학생이 교사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을 때 ②학생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응분의 벌을 받음으로써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있는 경우 ③아이를 고무해 주는 경우이다. 페스탈로찌의 체벌론은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어버이는 매를 들 수 있으며 어버이를 대신하는 교사도 매를 들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의 확인이다. 체벌은 경우에 따라 매우 교육적인데, 문제는 어떤 방법과 종류의 체벌을 가하느냐에 있다. 체벌은 어떤 경우에나 충동적인 감정이나 보복적인 인상을 풍겨서는 안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①그 방법과 종류를 사전에 정하여 알리고 ②체벌을 공개적, 이성적으로 집행하고 ③그 사실을 학부모나 교장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정의를 가르치는 매와 아이를 감싸는 자애는 교육이라는 수레의 두 바퀴다. 정의와 자애가 동시에 발동되어야만 교육이 산다는 귀한 진리를 체벌론의 결론으로 삼고 싶다.

    이 강의 내용처럼 체벌은 극약과 같으니, 학생의 인격을 파괴하는 독약이 아니라 영혼을 각성케 하는 귀한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도록 각별히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




    ●.[토론 글-Ⅶ]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체벌은 필요하다 - (체벌 찬성)
    *글쓴이; 김00/ 00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회장 **편집 2002.07.26(금) 18:16

    원칙적으로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7월20일치 ‘왜냐면’에 실린 유재명, 유영애씨의 의견에 공감한다. 교육은 체벌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가운데 자아 실현을 이루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과연 이러한 이상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가 고등학교까지 사실상 의무교육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성직자가 신앙으로 사람들을 교화하듯 인격적인 교류만으로 모든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비록 일부이지만 수업진행을 방해하며 교사의 권위마저 짓밟는 학생들을 인격으로 감화시키고 지도한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 아닐까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체벌이 엄연히 행해지고 있는 현실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징계와 교화의 수단으로써 체벌은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으며, 영국, 프랑스 등 유럽과 미국의 14개 주에서는 체벌에 대한 일정한 지도안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일수록 체별의 교육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는 전문가의 견해도 있다. 따라서 올바른 인성교육과 훈육을 위하여, 아주 제한적으로 절차에 따라서 행하는 ‘따끔한 벌과 사랑의 매’는 최소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교육부의 예시안도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훈계의 방법으로 행해야 한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를 구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학생생활규정에 체벌조항을 두는 것이 마치 선생님의 권위를 살리는 방편으로만 인식되거나, 교사가 마구잡이 매질을 하여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을 조장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부 예시안은 체벌의 정도를 넘어서는 폭력이나 가혹행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체벌의 범위와 내용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체벌에 따른 시비와 문제를 줄일 수 있다.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교사·학생·학부모가 힘을 모아 긍정적인 자세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자가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경기도 고양시 장촌초등학교에서는 이미 2년 전에, 학교규칙에 근거하여 ‘교육 벌에 대한 내규’를 자율적으로 만들었다. 이 규정은 교육부의 예시안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며, 한발 더 나아가 언어폭력을 포함한 금지사항과 가혹행위 방지에 대한 내용도 명시하였다. 궁극적으로는 ‘벌과 매’가 없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다음 세대를 올바르게 키우고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감정이 배제된 따끔한 ‘사랑의 매’와 다수가 공감하는 제대로 된 ‘교육 벌’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끝.
    ●●.[토론 글-Ⅷ] 회초리가 죽음의 자리에서 아이를 건진다 - (체벌 찬성)
    * 글쓴이; 동뫼/ 인천 00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편집 2002.07.26(금) 18:16

    학교의 교육현장에서 훈계 때 '회초리로 학생들의 종아리를 때릴 수 있기-달초'를 주창하는 나의 졸문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7월9일 '왜냐면')에 대하여 사려 깊은 반론의 글을 올려 주신「유재명씨와 유영애선생님」께 먼저 감사 드린다.

    20여 년 전 '아직은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했던 막내아들이 「교편(敎鞭)」도 잡고, 결혼도 했을 때 선친께서는 나에게 "자식을 키우고 학생들을 야단칠 때 회초리로 종아리만 때려라. 그렇게만 하면 너는 좋은 부모 노실(소임), 좋은 선생 노실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당부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여 년 간 선친의 당부대로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를 뉘우치며「유재명씨와 유영애선생님」글(7월20일 '왜냐면')에 대한 나의 또 다른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Ⅰ】유00씨는「달초」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난폭하게 때릴 때 쓰는 주먹이나 발이나 몽둥이 따위의 수단"의 뜻을 지닌 「폭력」으로, 「조건반사(회초리)에 의한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가짜 도덕」이란 말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달초의 의미를 곡해(曲解)시키고 왜곡(歪曲)시킬 수 있는 말이지만 - 이 말들을 '되도록이면 매를 때리지 말고 말로써 학생들을 지도하라'는 속뜻으로 이해하겠다.

    하지만 학생들의 바람직한 행동의 대가로 상(賞)을 주어 더 크고 더 많은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길들인 것이나, 학생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의 대가로 체벌을 주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축소시키고 더 적게 하도록(못하도록) 길들인 것이나, 길들이기는 맨 한가지인데 '왜, 체벌만이 가짜도덕인가'를 묻는다.

    상과 벌은 둘 다 교육심리학 학습 이론 중 하나다.
    할 수만 있다면 상을 이용하여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상이 반드시 교육(현장)에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상이 좋고 체벌은 나쁘다는 식의 흑백논리는 교육현장에 별 이익을 주지 못한다. 어느 경우든 정당성과 적절성의 문제다.
    또 씨께서는 '동뫼씨의 가짜 도덕'이 무너지는 두 가지 경우에서 한 가지는 “매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 매질할 선생이 없는 사회인이 되는 순간 온갖 허위와 부도덕에 가득 찬 삶을 살아간다”고 했는데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씨의 논리대로라면 죄짓고 부도덕한 모든 사람들은 학교 다닐 적에 선생님에게 매 맞고 다녔기 때문에 그리 되었단 말인가.
    나의 학생일 적 경험과 교사일 적의 직.간접 경험에 의하면 적절한 -교사의 감정이 배제되고 교사와 학생 간에 이해되는-달초(회초리)에 의해 학생들이 정신을 추스리고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바른 삶을 살게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세상 일에는 모두 양면성이 있다. 같은 물이라 할지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액이 되는 것이 아닌가. 유00씨께서 달초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도 따져보고 생각해 봐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동뫼씨의 가짜 도덕이 무너지'는 또 한가지는 "매가(폭력이) 부도덕을 가르치는 경우다. ... 자신의 이익을 위해 힘에 쉽게 굴복하는 법을 배운다. ... 폭력에 굴종하는 법만 배운 결과다"고 했는데 이는 대체로 옳은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교사들에 의해서 「회초리가 몽둥이로, 달초가 폭력으로」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변화. 자행되었고, 해방 후에도 부도덕한 이승만독재정권과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계속 되어왔다. 어서 빨리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다. 하지만 회초리와 몽둥이질은 구분되어야 한다.

    또 씨께선 '도덕은 이성의 영역에 속하고 조건반사는 생리영역에 속한다'고 했는데 이는 조건반사에 대한 얕은 이해다.
    조건반사는 '자극이 대뇌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켜 어떻게 행동에 변화를 주는가?'를 연구함과 더불어 학생들의 학습향상을 위한 한 방편으로 연구. 적용되고 있는 학습이론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현대 교육이론 중 하나다. 따라서 조건반사는 고도의 생리(生理)영역을 포함한 높은 수준의 이성(理性)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임 ; 행동주의 학습이론에서는 '강화'와 '체벌'을 분리하는 경향이나, 필자는 바람직한 어떤 행동에 대한 좋은 보상을 함으로 해서 그 행동의 강도와 발생빈도를 증가시키는 강화와 바람직하지 못한 어떤 행동에 대한 나쁜 보상을 함으로 해서 그 행동의 강도와 발생빈도를 약화(금지) 감소시키는 체벌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같다고 보기 때문에 체벌도 일종의 강화로 본다.)

    【Ⅱ】유00선생님께서는 학교현장에서 '체벌의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많음을 인정'하셨는데 나는 솔직히 달초(체벌)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끌어 기울어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말로 잘못을 타이르자. 말로 해서 안되면 그만두지 머'. 시체(時體)말로 "인연이 없는 중생은 부처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데 "내 새끼도 아닌데"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게 달초를 해. 하는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저 아이들의 잘못을 시정해주지 않는다면 내 아이를 지도하신 선생님도 「내 아이의 잘못」을 그냥 둘지도 몰라'하는 생각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또 유선생님께서는 "... 사람의 참길을 결정하는 존재는 누구이며 ... 교사는 사람의 참길을 이미 알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내가 유선생님께 묻습니다.
    「의사는 질병에 관해서 다 알고 있습니까? 의사는 건강과 질병에 관해서 완벽한 지식과 치료법을 지니고 있어서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합니까? 의사는 완벽하게 몸과 정신이 튼튼합니까? 의사는 환자를 100% 나게 할 수 있어서 환자를 치료합니까?」
    아니지요. 의사선생님은 지금까지 밝혀진 의학지식과 치료법 자기의 경험 등을 다 동원해서 환자의 완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요.

    우리 교사가 '참길'이라고 믿는 것도, 앞선 성인들과 현인들 조상님들께서 지금까지 밝히고 여러 선배들께서 제시해 주신 길, 지혜와 진리 등이 아닐까요?
    우리 교사들도 자신과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솔로몬의 금언이라 전해지는 '잠언23장13절'의 의미를 찬찬히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아이들에게 매 대기를 꺼리지 말아라. 매질한다고 죽지는 않는다.
    아이에게 매를 대는 것이 그를 죽을 자리에서 건지는 일이다."
    (2002.7.24.)

  10. 푸른옷소매 2008.10.29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 재. 철 선생님... 좋은 선생님의 기억으로 많은 학생들의 기억에 남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권재철 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11. 김태훈 2008.10.29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광역시 교육청에 나오네요. 검색결과는 '권재철 낙동중학교 교장(중등) 971-0009 퇴직'으로 나옵니다. 낙동중학교에 한번 연락해보심이.^^

  12. 할로윈 2008.10.29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쓰신 분같이 선생님의 저런 태도에 감동을 받고 다음부터 바르게 행동하는 학생들만 있다면 체벌이 필요없겠죠. 근데 현실에선 선생님이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그걸 악용해서 더 방종하게 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문제죠. "어, 저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별로 야단 안치는구나."하고 대놓고 그 교사를 무시하고 수업시간에 제멋대로 구는 학생들이 꼭 있다더군요. 지나친 체벌은 분명 잘못된 거지만, 그런 학생들 때문에 체벌이 없앨 수도 없는 상황인거죠. 차라리 미국처럼 정학, 퇴학을 더 엄격하게 하면 그걸로 대체하면 되지만, 또 문제는 우리나라는 학생 인권 어쩌고 하면서 처벌을 너무 약하게 하기 때문에, 그런것도 겁 안내고 안하무인인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감당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ㅉ

  13. Favicon of http://mycom.kr 컴치초탈 2008.10.30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렸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 있어 정말 큰 행운일 것입니다.
    저는 불행히도 운이 없었습니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