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전공장을 사옥으로 삼은 제민일보
“무슨 건물이 이래?” 제주도에 있는 제민일보를 처음 찾아갔을 때 받은 느낌입니다. 10월 9일 지역신문협회 사원 대표자회의와 언론노조 지역신문위원회 대표자 회의를 위해 제주에 갔습니다.
1차 집결지가 제민일보 노조 사무실이었습니다. 제주공항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운전하는 이에게 제민일보를 가자고 했더니, 옛 사옥이냐 새 사옥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당연히 새로 옮긴 데로 가자고 했겠지요.
택시를 타고 20분가량 달렸습니다. 도두항 근처라는데 제민일보 건물이 바로 보였습니다. 택시는 도로 앞쪽이 아니라 뒤로 가서 우리를 내려줬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보통 앞쪽에 정문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가려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는 통로가 나 있지 않았습니다. 조금 헤매다가 우리는 할 수 없이 도로 돌아나와야 했습니다. 앞으로 갔으나 거기에도 마찬가지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없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뒤로 돌아들어갔습니다.
항운노조 수련원에서 바라본 도두마을. 제민일보는 왼쪽 아래에 있습니다.
3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 노조 사무실은 3층 구석에 조그맣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들렀다가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고 회의 장소인 항운노조 수련원으로 걸어가는 길에 누군가 물었습니다. “제민일보가 언제 여기로 옮겼지요?”
2. 제민일보에 동병상련을 느꼈다
아마 제민일보지부 이창민 지부장이 대답을 했겠지요. “2002년에요. 부채 청산하느라 원래 사옥을 팔고 여기 윤전 공장을 증축해서 옮겨왔어요.” 단숨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됐습니다. 인쇄한 신문을 차에다 싣고 내리기는 사람과 차가 적게 다니는 뒤쪽이 앞쪽보다 낫습니다.
그러니 뒤에다 정문을 냈을 테고, 여기를 증축한다 했을 때도 이런 구조까지 뜯어고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장 2층 3층 올리는 일이 더욱 급하고 중요했을 것이고요. 제가 아는 제민일보는 90년 지배주주가 없는 도민주주신문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한동안 잘 지켜나가다가 경영난을 맞아 지배주주를 맞이했다지요.
올해로 창간 10년째인 경남도민일보가 해마다 적자에 허덕이고 날마다 자금난에 쪼들리는 현실에 비춰볼 때, 19년째 맞는 제민일보 그이들의 풍찬노숙과 간난신고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욱더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제민일보 그이들은, 지배주주를 받아들이기는 했어도 아직은 도민주주신문으로 출발한 전통이랄까 기풍이 남아 경영과 편집의 분리(편집권 독립) 원칙 등을 나름대로 잘 지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성원들끼리 서로를 아끼는 분위기도 크다고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제민일보에 종사하시는 여러분들은, 이런 일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자체가 싫을 것입니다만, 제민일보가 지금 사옥으로 쓰고 있는 건물은 대부분 지역신문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 제게 들었습니다.
3. 제대로 인정 못 받는 지역신문,들
슬펐습니다. 눈시울이 시큰거렸습니다. 지역에서 사회 약자에게도 도움되도록 공정하게 보도하고 다양한 여론을 일구려는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 그렇지 않은 지역신문도 있지만, 모든 지역신문이 욕을 얻어먹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같은 식으로 따지면, 서울서 발행되는 신문들도 대부분 사이비입니다. 알려진대로 조중동은 공익보다는 사익(私益 또는 社益)을 앞세우는 나쁜 신문이고, 가운데 끼여 있는 어중간한 신문들도 비슷비슷합니다. 게다가 이른바 갖가지 경제 신문들은 자본의 이익만 옹호하는 이상한 신문입니다. 스포츠신문들은 또 어떻습니까!!
더욱이 이들 신문이라 해서 이른바 팩트(fact)에 그다지 충실한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지역발 기사는, 지역신문이 보도한 바를 그대로 베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이뤄지지 않거나 지역신문에 대한 그것과는 사뭇 다른 각도에서 진행이 됩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지역신문이 사라지고 서울서 발행되는 신문들만 남는다면 지역은 거의 전혀 활자화되지 못할 것입니다. 지역은 수도권의 구경거리 아니면 놀거리 아니면 이상한 엽기 사건이나 한 번씩 일어나는 동네로만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4. 지역신문발전법 말려죽이는 이명박
지역신문을 살려야 합니다. 그냥 무턱대고 모든 지역신문을 살려야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사원 민주주의 실현이나 편집권 독립(지배 주주의 편집권 침해 차단), 지면에 대한 독자 참여 보장, 비리 척결 등등을 전제로 쓸만한 신문을 골라 살려야 합니다.
이를 위한 법률이 바로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입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여러 지역 신문 가운데 일정한 기준을 넘는 신문사를 골라낸 다음(=선택) 이들을 우선 지원(=집중)하는 제도입니다. 모든 신문을 (이를테면 독버섯까지) 무차별로 지원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모든 방면 정책에서 그러하듯이, 자본 논리와 경쟁지상주의 논리에 찌든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미디어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 법률을 말려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200만 부씩이나 발행된다는 조중동에 10만 부 발행도 안 되는 지역신문이 무슨 경쟁이 되겠어? 그냥 내버려 둬, 돈 안 되면 결국 말라 죽겠지.’
6년 한시법으로 2010년까지 효력이 있는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의 제정 취지는 이렇습니다. 일단 해보고, 성과가 있으면 시한을 연장하든지 상시법(常時法=일반법)화하든지 하자. 성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팔자시네, 당연 폐지입니다.
지금 성과가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역 신문 독자들도 법률이 시행된 2005년 이전과 견줘 지역 신문의 질이 많이 나아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원에 앞서 엄격한 심사가 이뤄져 나름대로 내실 있는 신문사와 그렇지 않은 데를 구분하는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편집 규약이나 지면평가(독자)위원회나 편집제작위원회 같은 제도를 둬서 성과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100%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없애는 것이 정책 추진의 기본인데도 정부와 여당은 외눈박이도 되지 못한 듯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5. 부자와 서울 말고 서민과 지역도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방송을 장악하려 하기 때문에 나쁩니다. 나아가 방송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사유화를 추진하기 때문에 더 나쁩니다. 방송을 소유할 수 있는 집단은 족벌신문과 독점재벌 말고는 없습니다. 여론 매수 또는 여론 독점의 최종판입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미디어정책도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독점재벌과 서울을 살찌우면 만사가 다 해결된다는 잘못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송 장악 저지와 지역신문 활성화를 위한 투쟁은, 서울과 독점재벌 말고 지역과 서민도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 미디어 비평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에 13일 기고한 글을 조금 많이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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