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뜻하지 않게 추석 선물을 받았습니다. 동아일보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여느 선물과 마찬가지로 집으로 배달이 돼 왔습니다.
1.
며칠 전, 존경하는 선배 한 분과 사랑하는 후배 한 명에게서 받은 선물이 전부였는데, 정말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생각지도 않은 데에서 받았습니다.
회사와 노조에게서 받은 간단한 선물 말고 하나 더 받을 뻔하기는 했습니다. 롯데백화점에서, 삼성에서 배달 주문한 선물이 있는데 주소 확인하려 한다는 전화가 제게 왔습니다.
저는 1만원 넘는 선물은 받지 않는다는 우리 신문 방침대로,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마음만 고맙게 받고 물건은 받지 않겠습니다.”, 말씀드렸습니다. 선물은 당연히 오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 이틀 전에 손전화로 문자가 왔더군요. 삼성 관계되는 분이 보낸, ‘추석 잘 보내시라.’는 글이었습니다. 저도 ‘잘 지내시라.’ 문자를 보내드렸겠지요.
2.
이리 하고 나서 어제는 전날 지나치게 마신 술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뒹굴고 있는데 대문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열었더니, 이런 편지를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딱 보는 순간 무엇이 들었는지 대충 짐작이 됐습니다. 바로 신문 불법 경품 신고에 따른 포상금 지급을 알리는 공문이었습니다. 놀라지 마시기를. 무려 127만원이었습니다.
‘동아일보외동창원지국의 신문업에 있어서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건’으로 해서, 제가 ‘위법행위를 신고하고 당해 신고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자료를 제출’했으므로 포상금 지급 요건을 충족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신문고시는, 한 해 구독료(지난해는 14만4000원, 올해는 18만원)의 20%를 넘는 경품은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과 금액을 포상금 지급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제게 준 경품은 공짜 구독 일곱 달(구독료 8만4000원)과 3만원짜리 상품권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11만4000원에서 한 해 구독료 20%(2만8800원)을 뺀 8만5200원이 기준 금액이 됩니다.
보통 경고로 끝나면 포상금은 기준금액의 10배에 그치고 말지만 저처럼 신고한 상대방이 시정 명령을 받으면 5배가 더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15배 127만원을 받게 됐습니다.
동아일보 김학준 회장님, 고맙습니다! 우리 집이 살림이 잦히는 줄 어떻게 족집게처럼 알아가지고 이렇게 뭉텅이로 돈을 건네주십니까! 다음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3.
그러나, 같이 한 번 웃어보자고 말은 이리 하지만, 불법 경품 제공은 동아 조선 중앙이 저지르는 여러 잘못 가운데 가장 큰 죄악입니다.
자기네 보고 싶은대로만 보는 왜곡보도보다도,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편파보도보다도 불법 경품 제공이 더 큰 죄악이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달리 말하면 독자 매수(買受)이기 때문입니다.
독자 매수는 바로 여론 매수, 여론 장악으로 이어집니다. 별 생각 없이 백화점 상품권과 공짜 구독에 넘어가 조중동을 보게 되면 대부분은 조중동식 구도(=틀)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독자 매수의 결과는 언제나 여론 매수로 나타나게 됩니다. 게다가, 이 같은 독자 매수는, 지역 신문의 활로를 가장 심각하게 가로막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지역 신문들이 제 노릇을 제대로 못한 탓도 있겠지만, 서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비수도권 지역에서조차 해당 지역 신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떤 때는 10%에도 못 미치는 까닭이 주로는 여기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4.
그래서 저는 이번 포상금을 이렇게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집이 살림이 잦히니까 일단 필요한 부분에 포상금을 쓰겠습니다.(아마 아내 치료비가 되겠네요.) 다음으로는 우리 조합의 단결력을 높이고, 조중동 불법 경품을 막는 투쟁에 쓰겠습니다.
더불어 부탁드립니다. 조중동 불법 경품은 아무 때나 불쑥 찾아옵니다. 집에 있을 때도 오고 길거리를 걸어갈 때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확실하게 낚아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고는 어렵지 않습니다. 누르라는 데로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조중동의 범죄 행위를 막는 한편으로 수입도 조금은 생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정식 영수증은 저것들이 써 주지 않으니까, ‘언제부터 (구독료) 수금을 하겠다는 표지’만큼은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신문지에다 써도 좋고 명함에다 써도 좋습니다. 그렇게 해야 공짜 구독 보장 기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동아일보 덕분에 즐겁게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추석을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다른 많은 분들도, 이번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당~~.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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