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본 옛날 그 도리깨
며칠 전 나는 고성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아침에 선선할 때 나섰지만 날씨는 금세 더워졌다. 바람은 시원했으나 햇볕이 뜨거웠다. 모터배 아닌 노배라도 나타날까 싶어 바다에 눈길을 주고 걷는데 어디선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탁 탁.” “퍽 퍽.”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도리깨로 보리 타작을 하는구나.’ 고개를 돌려 언덕 위를 올려보았다.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다듬고 있고 할아버지 한 분이 서서 도리깨를 돌리고 있었다. 쇠나 플라스틱으로 조립한 요즘식 도리깨가 아니고 대나무로 얽은 옛날식 도리깨였다. ‘그렇지, 요즘 도리깨로는 저런 소리가 안 나지.’
2. 도리깨로 콩타작을 하면
나는 저 도리깨를 기억하고 있다. 옛날 시골 우리집에는 도리깨가 적지 않았다. 그때는 도리깨가 많으면 잘사는 집이었다. 도리깨가 많을수록 멍석도 많았다. 우리는 멍석도 예닐곱 개, 도리깨도 예닐곱 개였다. 크고 작은 멍석들은 헛간 담장 옆에 돌돌 말려 가로로 끼워져 있었다. 길고 짧은 도리깨들은 뒤란 처마 밑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타작을 하려면 먼저 멍석부터 바깥마당에 펼쳐야 했다. 콩이나 팥, 밀이나 보리는 깍지나 줄기가 달린 채로 그 위에 쏟아졌다. 일꾼들은 제 키에 맞는 도리깨를 둘러매고 곡물들을 내리쳤다. 아무리 장골(壯骨)이라도 그냥 세게 내리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너무 약하면 타작이 제대로 안 되었고 너무 세면 알갱이가 터져버렸다.
들판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타작은 언제나 신이 났다. 펄펄 날리는 흙먼지나 온몸에 흐르는 땀 따위는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어린 나는 옆에서 보니 낟알이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콩을 타작할 때가 더욱 그랬다.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접근은 금지되어 있었다. 휘두르는 도리깨에 제대로 맞으면 어디가 깨져도 깨지기 때문이었다.
도리깨질이 끝나면 아낙이나 아이들이 들어가 낟알을 따로 거두어 포대나 광주리에 담았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까끄레기가 따가워도 보릿짚이나 콩깍지 같은 나머지들까지 가지런히 챙겼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함부로 버려도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3. 기꺼이 모델 되어준 할아버지
할아버지 휘두르는 기세가 아주 힘이 넘쳤다. 울타리 너머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다. 찍고 나서 보니 거리가 멀어서 도리깨가 가느다란 작대기처럼 보였다. 몰래 뒷모습 찍기는 포기하고 용기를 내어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개가 한 마리 지키고 있다가 “컹컹” 짖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모자를 두 손으로 벗어 쥐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린 다음 최대한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나가던 사람인데예,……”
“그래서?”
할아버지 무뚝뚝한 말투에 살짝 조바심이 일었다.
나는 한 번 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옛날 도리깨를 하도 오랜만에 봐서예, 한 번 찍고 싶습니다예.”
할아버지는 잠깐도 생각지 않고 바로 크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 이런 도리깨는 내밖에 없을끼다.” 그러고는 옆에 세워두었던 도리깨를 다시 잡으셨다.
“요새는 잘 쓰지도 않지만 전부 다 플라스틱이지.”
“그렇데예, 그래서 더 반가웠어예. 그런데 도리깨가 좀 작네예.”
“내가 만들어서 그렇다 아이가.”
할아버지가 당신 키에 맞게 손수 만든 도리깨였다. 대를 쪄서 자루를 만들고 가지를 추려서 휘추리를 얽은 다음 그 둘을 이어붙였다. 그러고 보니 이음매가 볼트와 너트로 이루어진 것이 옛날식과 달랐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두리깨를 휘두르는 일꾼인 동시에 도리깨를 만들 줄도 아는 장인이었다.
“저는 어릴 때 도리깨질을 잘 못해서 제 뒤통수를 내리친 적도 있어예. 얼마나 아프던지.”
할아버지는 웃지도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거들었다.
“하모, 그런 아(아이)도 있었지.”
4. 다음엔 선물 사서 가야지
나는 소리없이 웃었다. 도리깨질, 이거 쉬워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중고생 때는 어설프나마 기본은 했었다. 자루 끝과 휘추리 몸통이 동시에 착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휘추리가 먼저 맞거나 자루가 먼저 닿으면 안 된다. 힘이 실리지 않아서 “틱 틱” 소리만 나는 삑사리다. 할아버지 쉬는 틈에 잠깐 휘둘러 보았는데 영 어색하고 기본조차 되지 않았다. 다시 연습을 좀 해야 할까 보다.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덕분에 정말 귀한 사진 얻었습니다.”
고개를 크게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그래, 가세요.”
웃음을 입꼬리에 물고 두 어른이 말했다.
나는 그 집 주소를 보아두었다. 나중에 무어라도 사들고 가서 제대로 사례를 하고 싶어서다. 그러다 재수 좋으면 이번에 눈에 못 담은 노배를 찍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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