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슬몃 젖어든 자연-합천 정양늪

김훤주 2021. 10. 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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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 헤엄치는 정양늪

맘 놓고 깊은 숨 쉬어보기

 

여행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이를 통해 휴식과 여유를 얻고 안목을 넓히며 사람도 사귄다. 그러나 한편으로 관행 여행에 대한 비판도 높아졌다. 지역에 약탈적이고 자연에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대안은 생태여행이다.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역을 배려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생태여행도 에너지를 써야 하고 지역민을 위하는 데도 한계가 있으며 자연 또한 손상된다. 그래도 관행 여행을 조금이라도 대체할 수 있으면 좋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과 함께 생태여행지도의 밑바탕을 깔아보는 이유다. 시군별로 중심되는 한 군데를 정하고 함께 둘러볼 현장을 꼽았다. 6~11(8월 제외) 넷째 주에 독자 여러분과 함께한다.

봄날 신록 속에서 거니는 정양늪생명길.

정양늪생태공원

정양늪은 규모가 아담하지만 깃든 생물이 많아 보존 가치가 높다. 가시연·수련·줄 등 여러 식물과 모래주사·동자개(어류), 큰고니·큰기러기(조류), 수달··너구리(포유류), 금개구리·도마뱀·대모잠자리 같은 양서·파충·곤충류가 함께 살고 있다.

겨울에는 지구에 2만 마리뿐인 고니가 떼 지어 찾는다. 백조는 고니의 일본식 이름이다. 1000마리를 웃돌기도 하는데 2018년부터 생태계가 안정되고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덕분이다. 점점이 앉은 모습에 아이들은 호기심을 키우고 탐조객은 눈길이 바빠진다.

정양늪은 도심 가까이에 있다. 일부러 찾는 대신 누구든 합천 읍내에 볼일 보러 왔다가 들르면 된다. 다른 관광지를 찾았다 가는 길에 돌아봐도 부담이 없다. 새벽에는 산책로를 걷기만 하면 습지만의 독특한 느낌을 누릴 수 있다.

생태학습관 2층 전망대에 오르면 아늑한 자태가 펼쳐진다. 산책길은 오른편도 좋고 왼편도 좋다. 징검다리로 이어지며 한 바퀴 두른다. 양쪽 길은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았다. 왼쪽 길은 나무덱으로 시작된다. 습지의 속살이 가까이 다가오는 길이다.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물결, 수면 위에 솟은 노랑어리연·수련과 마름·개구리밥, 둥치가 굵어진 왕버들,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개짓. 습지의 조용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길이다.

왕버들 군락을 지나면 징검다리가 있다. 물에 손을 담글 수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징검다리는 어른에게도 아련한 향수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호젓한 오솔길이다. 천천히 걸으면 습지가 만드는 근사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 번째 징검다리를 지나도록 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활기찬 몸짓은 멈추지 않는다.

오른쪽 길은 잘 자란 나무들이 줄지어 맞는다. 시원한 바람이 물과 나뭇잎을 푸르게 연결해주는 둑길이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 돌아보면 여태 살아온 나날처럼 길 또한 아득하다. 순천만이나 주남저수지는 그늘이 없지만 여기 정양늪생명길은 그렇지 않다.

습지는 계절마다 시간마다 보여주는 그림이 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르고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중이 다르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족하다. 이런 자연이 옆에 있어서 고맙다.(정양늪생태학습관 055-930-3343. 관람료 없음. 월요일·설날·추석과 새해 첫날 휴무.)

해인사소리길에서 만나는 고운 최치원을 기리는 농산정.

해인사소리길

해인사 들머리에서 대장경테마파크까지 이어진다.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골짜기와 산기슭을 넘나들며 멋진 경관도 안겨준다. 산길을 걷는 재미도 알차다. 나무는 맑고 시원한 기운을 내뿜고 풀꽃은 걸음이 멈춰질 만큼 향기롭다.

많이 걸어도 좋고 짧게 걸어도 된다. 농산정에서 빠져도 괜찮고 청량사 갈림길 지나 들판을 끼고 대장경테마파크까지 가도 된다. 테마파크는 어른 3000, 청소년 2000, 어린이 1500원 입장료를 받는데 들어가 보면 전혀 아깝지 않다.(055-930-4801, 월요일 휴관)

합천향교 명륜당 앞 은행나무.

향교

합천은 향교가 넷이나 된다. 향교는 조선시대 공립 교육기관이다. 요즘 학교는 교육만 하지만 옛날은 훌륭한 인물들 제사까지 바쳤다. 정문을 지나 명륜당에서 공부하고 뒤쪽 대성전에서 제사를 지냈다. 평지 합천향교(구정26-17)는 명륜당과 대성전이 좌우로 나란하다. 보통은 풍화루인 정문 이름이 영귀루인 것도 남다르다. 합천 읍내 강양향교(합천리 690-2)는 최근에 지었는데 주택가 언덕 위 도도록한 자리에 있어서 색다르다.

초계(교촌318-6)·삼가향교(소오218-5)는 산기슭이다. 풍화루~명륜당~대성전까지 상승감이 느껴진다. 초계·합천향교는 은행나무·회화나무 노거수가 볼 만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도 있다. 초계향교에는 햇살 따라 표정이 바뀌는 풍화루 주춧돌 거북도 남아 있다.

합천영상테마파크에 들어서 있는 일제강점기 경성역.

합천영상테마파크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2003<태극기 휘날리며> 세트장이었는데 지금 건물이 많아 이름을 주워섬기기도 벅차다. 1920년대 경성과 적산가옥, 해방 직후 공간에 80년대 서울 거리까지 재현돼 있다.

70년대 교복 차림으로 들어가는 옛날 교실도 있고 개화기 의상으로 사진 찍는 일제강점기 건물도 많다. 전기로 움직이는 마차(유료), 일행을 태우고 다니는 인력거(무료), 구멍가게·카페·식당도 있다. 모노레일이나 트램(유료)을 타야 갈 수 있는 청와대도 필수다. 대통령 책상 앞은 언제나 붐비고 대변인 탁자는 사진을 찍는 행렬이 기다랗다.

지역 농민 직영 로컬푸드직매장&농민레스토랑은 끝머리에 있다. 2층 뷔페(7000)는 재료가 합천산이라 싱싱하다. 2000원을 더 내면 두툼한 돈가스도 얹어준다. 1층은 로컬푸드와 합천 농산물을 취급하니까 그 취지가 생태여행과 다르지 않다.(055-930-3744. 입장료 어른 5000, 청소년·어린이 3000. 월요일 휴무.)

황매산 억새 물결

황매산·모산재·영암사지

황매산은 억새와 철쭉이 좋지만 여름과 겨울에도 괜찮다. 너른 평원이 900~1000m 고지에 펼쳐져 아이나 부모님과 즐기기 좋다. 카페·식당·수목원을 더했지만 꾸민 티는 없다. 황매산만 노닐려면 정상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들어가 능선을 따라 오른편 산불감시초소로 가면 된다. 계속 나가면서 평원을 즐기고 수목원까지 누릴 수 있다. 정상(1108m) 등반은 선택이다.

모산재도 가려면 오른편·가운데 길로 평원을 누리고 산불감시초소로 가면 된다. 2도 안 되는 모산재까지는 능선길도 험하지 않다. 정상(767m)까지 상하좌우 눈맛이 괜찮다. 오른쪽 돛대바위와 왼쪽 순결바위 모두 보고 와도 가뿐하다. 모산재는 독자적으로 올라도 괜찮다. 영암사지에서 왼쪽 작은 골짜기로 올라가 계단으로 바위를 지나면 다음부터는 완만하다.

 

모산재 영암사지.

영암사지는 망한 절터지만 밝고 환하다. 모산재 암반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스치듯 둘러봐도 좋고 두어 시간 조각들 생동하는 표정을 찾아도 좋다. 동구를 지키는 600살 넘은 느티나무도 눈길을 끈다.(황매산군립공원 055-930-4753. 주차료 4시간 3000(초과 1시간에 1000원 추가). 덕만·모산재주차장은 무료.)

옥전고분군.
합천박물관.

옥전고분군

구슬과 금귀걸이로 유명한 다라국은 옥전고분군으로 남았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처럼 야산 기슭과 마루에 고르게 퍼져 있다. 합천박물관 주차장에서 이런저런 야외 시설과 유물을 훑어보면서 오르면 10분으로 족하다.

합천박물관은 여기 유물이 대부분이다. 누린 이들은 당대를 호령한 권력자였지만 고분군에서는 그들이 세월 앞에 덧없다. 말갑옷, 기꽂이 등은 다라국의 당대 역량을 보여준다. 이탈리아반도에서 한반도 끝자락까지 들어온 로만글라스도 그럴듯하다. 비단길의 종점이 여기였다니 왠지 느낌이 아련해진다.(055-930-4882. 월요일·설날·추석과 새해 첫날은 휴무.)

 

경남도민일보 202062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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