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9일 주주총회를 끝으로 전무이사직을 마친 김주완입니다.
아직 계약직으로 할 일이 좀 남아 있지만, 정규직으로선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1990년 3월 기자질을 시작한지 햇수로 32년이 되었군요. 그중 22년을 경남도민일보에서 일하면서 참 많은 덕을 입었습니다.
기자의 가장 큰 행복은 ‘소신대로 마음껏 취재할 자유’를 보장받는 데서 나옵니다. 그런 점에서 경남도민일보는 저에게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또한 도덕성과 기자윤리에서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언론사에서 일한다는 것도 저에겐 엄청난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 언론사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무한한 영광이었고요.
2010년 몇 개월간 잠시 회사를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맞아준 동료들에게도 큰 고마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 덕에 편집국장으로 4년, 출판미디어국장으로 일하는 7년 동안 제가 해보고 싶었던 웬만한 일은 다 해볼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지만 원은 없습니다. 무리한 추진 과정에서 고생한 동료들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작년에 제가 전무이사가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지인들이 “다음엔 사장해야지?”라며 덕담 아닌 덕담을 하더군요. 제 형제자매들도 그러더군요. 그때마다 저는 “경남도민일보 사장이 얼마나 힘든 자리인 줄 아느냐?”고 응수했죠.
그렇습니다. 저는 지난 11년 동안 구주모 사장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과 스트레스에 짓눌리며 힘겹게 회사를 꾸려가는지 가까이서 보면서 ‘나라면 절대 저렇게 못하겠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정말 경영에는 능력도 없고 체질도 아니구나’ 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출판 작업은 좋았지만, ‘전무이사’라는 직함은 마치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전무이사는 떼고 출판 업무만 하면서 정년을 채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제 연봉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출판도 오래 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미 아이디어도 고갈됐고 열정도 식었는데, 돈 때문에 자리에 붙어있는 건 김주완답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들어서 아는 분도 있겠지만, ‘조기퇴직’은 3년 전 사내이사로 재선임될 때부터 계획된 목표이자 꿈이었습니다.
그 시점이 된 지금, 제겐 아파트도 한 채 있고, 아직 현업에서 일하는 아내도 있고,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아들도 있습니다. 덕분에 홀가분하게 조기퇴직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뭐할 거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장은 계약기간 동안 책 만드는 일을 해야겠죠. 출근과 재택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 다음? 계획은 없습니다. 32년 직장생활을 벗어나 새롭게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더 재미있을 만한 일이 뭔지 찾아볼 생각입니다.
이 정도로 제 퇴직의 변을 마칠까 합니다. 그동안 성질 더러운 부장, 국장, 전무에게 상처받으신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같으면 당장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에 걸릴 만한 폭언과 폭행(사람을 때리진 않았지만)도 많았습니다. 소급 적용해 고발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며 용서를 빕니다.
*참, 앞으로 만나면 ‘선배’라고 편하게 불러주면 좋겠습니다.
(정규직으로서 마지막 근무일이었던 3월 31일 경남도민일보 내부 페이스북 그룹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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