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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월 15일) 경남신문에 3.15의거 61주년 기획으로 '조현대 열사를 찾아서'라는 기사가 나왔다. 읽던 중 쓴웃음이 나왔다.
"~조사를 벌인 결과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조 열사의 사망 소식을 확인했다"라는 대목에서였다.
사실 조현대 열사의 희생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97년 경남매일 취재와 보도에 따른 것이다. 3.15의거기념사업회와 마산보훈지청은 경남매일 보도 이후에야 조현대 열사의 신원과 묘소, 가족 찾기에 나섰고, 결국 신원과 희생사실은 확인했지만, 묘소와 가족은 찾지 못한 채 2002년 3.15묘역에 가묘를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
또한 당시 경남매일은 기획연재기사를 통해 '12열사'가 아니라 조현대, 김동섭 열사를 포함해 '14열사'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학생의거'가 아니라 '시민항쟁'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경남매일이란 신문이 폐간해 없어지고, 3.15의거기념사업회 대표와 실무자들도 세대가 교체돼 과거 일을 잘 모르다 보니 그냥 기념사업회가 찾아낸 걸로 되어버렸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국립3.15묘역에 있는 3.15의거기념관의 전시물 중 '가해자는 누구인가'라는 패널에 있는 글도 내가 쓴 기사를 출처표기도 없이 무단으로 베껴 옮겨놨다. 오래 전에 알았지만 구차하게 여겨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나온 기사를 보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여기라도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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