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올림픽과 어린이 인권

김훤주 2008. 8. 1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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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무 살 시절, 우리한테 올림픽은 올림픽이 아니었습니다 전두환이 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했고 그것은 광주 학살을 가리는 구실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내림픽 또는 눌림픽이라 그랬습니다.

저는 사소한 데 신경을 좀 더 쓰는 편입니다. 많은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에 제가 눈길을 두는 때가 많습니다.

2.
엉뚱한 이야기입니다. 옛날 2002년 특기적성교육의 과정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만 특기적성교육이지, 실제는 강제 학습이었습니다.

정규 교과목을 마치고 하는, 이를테면 ‘보충’수업인데, 이것을 일러 특기적성교육이라 거짓말하면서 교육비를 따로 거뒀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겹쳐 있었습니다. 교육비를 걷는 문제랑, 강제로 과외 학습을 시키는 문제랑요. 물론, 둘 다가 하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거기에서 교육비는 더욱 문제가 컸습니다. 실제로 드는 돈만 받아야 한다고 돼 있는데 교장 교감들을 위해 관리수당까지 포함된 돈을 받아챙겼습니다.

이를 두고 학생들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이런저런 고등학교 정문 앞에 나가겠지요. 학생들이 하는 말, “와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신문도 있네요!”

저는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교육-학습 이야기를 하면서도 학습의 주체인 학생들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우리한테는 돼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장면.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제 올림픽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올림픽이 국민 모두의 관심사임을 저는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공중파 방송 3사가 왜 방영 시간 대부분을 올림픽 경기로 채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싫어합니다. 전체주의, 전체주의 성향을 더욱 세게 만드는 것 같아서요. 저는 영어로 Nation이 들어가는 모든 낱말과 중국글로 국(國)이 들어가는 낱말을 모두 싫어합니다.

내셔널(또는 네이션) 어쩌구나 애국 저쩌구 따위를 다 싫어합니다. 무슨 전체주의나 덜 떨어진 민족주의의 전조 같아서요. 아들한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00년 올림픽 때입니다. 지금 고3인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입니다.

“아빠, 올림픽이 그렇게 중요해요?” 저는 왜 묻는지를 몰랐습니다. “글쎄다, 나는 운동경기라고밖에 생각을 안 하는데? 그것도 서양 위주 운동 경기지.” “그런데, 왜 모든 텔레비전에서 중계방송을 해요?”

저는 여전히 묻는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왜 만화를 안 해요? 나는 만화를 보고 싶어요.” 했습니다. 핵심이 파악됐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4.
문제는 그이들이 선거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그 때도 나날이 줄어들었습니다. 청소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림픽이 되니까 어찌어찌 살아남은 프로그램조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아들 현석이 싫어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방송 3사가 왜 똑같이 올림픽 중계를 해요? 나는 평소에 보던 만화를 보고 싶은데……. 얘기도 하지 않고 제 멋대로 바꿨잖아요?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렇지? 올림픽도 내가 보기에는 스포츠 행사일 뿐인데. 그것을 핑계로 여러 다른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만 바꿔 갖고 중계하는 짓거리는 좀 안 하면 좋겠는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기사를 썼습니다. 조금이나마 갚음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KBS MBC SBS 모두 왜 올림픽만 중계 방송하냐? 이를테면 KBS에서 하는 마린보이가 보고 싶다는 아이가 있는데, 이런 견해는 왜 반영을 안 하느냐?”

5.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만 보장이 됩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어린이들 요구만큼 되는 경우란 절대 없습니다.

청소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올림픽 같은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사실은 생겼다고 판단하면) 어린이나 청소년 프로그램부터 먼저 잡아먹습니다. SBS MBC KBS 다 그렇습니다.

올해 올림픽에서도 저는 짜증이 납니다. 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는데, 평소 하던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데, 왜 올림픽의 이런저런 장면만 보여 주는 것인지요? 사실상 선택권을 없애는 노릇 아닌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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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저자는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일반 대중매체, 역사적 사료가 될 만한 갖가지 자료들이 무려 1만여 개의 테마별 파일 속에 정리되어 있다. 현대사 연구 작업은 바로 그의 손때가 묻은 수많은 파일과의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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