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합천 영암사지 서금당터 귀부 쌍어문

김훤주 2017. 3. 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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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영암사지에 가면 금당터가 있다. 금당터를 바라보고 오른쪽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서금당터가 바로 나온다. 금당이 부처님 모시는 자리였다면 서금당은 아마 영암사를 창건한 개산조사를 모시는 자리였다. 

서금당터에는 귀부(龜趺)가 둘 있다. 금당터를 바라보고 오른쪽과 왼쪽 구석에 하나씩 있다. 왼쪽 거북은 목을 뻣뻣하게 들고 있는 반면 오른쪽 거북은 다소곳이 수그린 채로 있다. 옛적 제대로 모르던 때는 왼쪽 거북이 더  멋진 줄 알았지만 지금은 오른쪽이 더 멋진 줄 안다. 

왼쪽과 오른쪽 거북은 차이가 많다. 왼쪽은 귀갑문이 희미하지만 오른쪽은 아주 뚜렷하다. 왼쪽은 등뼈가 거의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오른쪽은 그 표현이 선명하다. 왼쪽 거북은 꼬리가 조그맣고 덜 생동하지만 오른쪽은 커다랗고 엄청 생동한다. 

그밖에도 왼쪽은 별로 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지만 오른쪽은 구름을 비롯해 여러 무늬가 아롱져 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전에도 보기는 했겠지만 그 때는 청맹과니 맞짝이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오른쪽 귀부에는 물고기도 있었다!

오른쪽 귀부왼쪽 귀부.

이번에 찍은 오른쪽 귀부. 옛날에는 이끼 돌옷을 입고 있었으나 지난해인가 문화재청에서 이끼 돌옷을 벗거버려 현대조각 같은 느낌이 난다.

빗돌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지금 보는 거북이 모양 귀부는 아랫부분 받침돌이다. 그 위에 몸통을 이루는 비신(碑身)이 섰고 이런 빗돌 위에는 용을 아로새겨 이수(螭首)를 머릿돌로 덮어씌웠다. 이(螭)는 뿔이 달리지 않은 용을 뜻한다.

귀부 윗부분에는 비신을 꽂아넣을 수 있도록 홈이 파져 있다. 여기 서금당터 오른쪽 귀부에 나 있는 홈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물고기가 두 마리씩 새겨져 있었다. 쌍어문(雙魚紋)이다. 여태까지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어쩐지 딱 알아보았다. 

그 어디 있는 쌍어문보다 멋지고 아름답다. 김해 허황옥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런저런 쌍어문은 차라리 천박하게 여겨질 정도다. 거기 물고기는 탑 비슷해 보이는 것을 가운데 놓고 별개로 떨어져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다.

물고기는 불교 또는 부처님과 어떻게 연결될까? 생각 가는대로 떠올려보면 목어(木魚)가 있다. 법고(法鼓)·운판(雲板)·쇠북과 더불어 불교 음악 사물(四物) 가운데 하나다. 

소가죽으로 만드는 법고는 육지 짐승, 구름 모양 운판은 날아다니는 짐승, 대종이라고도 하는 쇠로 만드는 쇠북은 땅 속 중생을 상징한다. 그러면 목어는? 물 속 생물을 뜻한다. 사물을 울리는 뜻은 그 소리로 사방 모든 중생을 일깨우는 데 있다.

가운데 아래는 여의주인 듯.

그러나 여기서는 물고기를 불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 눈을 감지 않으니 잘을 자면서조차 꿈 속에서 용맹정진 수행을 하는 듯이 여겨진다. 물고기가 진리와 대오(大悟)를 향하여 나아가는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여기 있는 물고기도 아마 그런 뜻으로 새겨졌겠지. 빗돌의 주인공 무슨무슨 개산조사 또한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물고기처럼 쉬임 없이 갈고 닦았을 것이다. 그래서 백척간두에 이르고 다시 진일보하여 남다른 경지를 얻었을 것이다. 이런 큰스님의 큰 뜻을 기리려고 여기 물고기를 새겨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물고기가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씩이다. 여기에는 아무 뜻이 없을까? 그냥 보기 좋으라고 예술적 형태미를 위하여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대칭으로 집어넣었을 따름인 것은 아닐까? 

쌍어문 물고기 무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입을 맞대어 있다. 다른 하나는 서로 맴을 돌듯이 머리에 꼬리가 이어지고 꼬리에 머리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신독(愼獨)은 힘들다. 혼자서는 게을러지기 십상이고 마음이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여럿이 함께할수록 조금이나마 더 쉬워진다. 물론 깨달음은 오로지 혼자서 이룩하는 외로운 경지이다. 

등용문(登龍門)이라 할 수도 있겠지. 폭포처럼 내리치는 거기로 오히려 훌쩍 뛰어올라야 비로소 용이 된다. 그와 같은 도약은 순전히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등용문까지 나아가려면 깊은 여울도 건너야 하고 거센 물살도 헤쳐야 한다. 함께 건너가고 함께 헤쳐나가자. 운운…….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해 놓고 보니 불교의 기본을 내가 잊고 있었던 것 같다.부처님은 뜻의 인간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뜻을 떠난 존재인 것인데. 이런 따위 뜻이나 따지고 있어 가지고는 그 무심 저 무위에 이르기는 불가능한 노릇이겠지.

이것은 뜻도 아니고 뜻이 아닌 것도 아니다. 여기서 뜻을 보면 뜻이요 뜻을 보지 않으면 뜻이 아닌 것이다. 그냥, 아무 덮씌움 없이, 그냥 물고기로만, 물고기 두 마리로만 받아들인다 해도 어찌 누가 어떻게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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