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홍준표가 대선에서 4등 이하로 떨어지면 좋겠다

김훤주 2017. 3. 23. 07:00
반응형

1. 잘못 예측해 죄송합니다

지난 2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 후보로 대선에 나서리라고 예상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예측은 아시는대로 보기좋게 빗나갔다. 황교안은 지난 15일 대통령 선거를 5월 9일 한다고 발표하면서 자신의 불출마까지 함께 밝혔다. 

예측을 엉터리로 했으니 글을 읽으신 분들께 민망하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린다. 스스로에게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촐싹대지 말아야겠고 좀더 조심해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주 엉터리로 사실과 다르게 틀린 예측을 했으면 기분이 좋지 않아야 마땅할 텐데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기쁘고 즐겁다. 왜냐하면 덕분에 홍준표가 경남에서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홍준표가 그동안 경남에서 도지사를 하면서 얼마나 학정과 폭정을 일삼았는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벌써 여러 차례에 걸쳐 얘기를 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홍준표는 정치인도 아니고 행정가도 아니고 오직 싸움꾼이다. 

2. 홍준표는 정치인 아닌 싸움꾼

홍준표는 지역사회가 도지사 주민소환에 나서자 진보적인 박종훈 경남교육감에 대한 주민소환으로 맞불을 놓았다. 여러모로 억지를 부리다보니 측근들이 불법을 저질러 구속되는 일이 터졌다. 기자들이 사과를 해야지 않느냐 하자 홍준표는 말했다. "무슨 사과? (구속된 사람이) 내 새끼냐? 전투를 하다 보면 사상자도 생긴다." 그렇다. 홍준표에게 도지사질은 행정도 정치도 아니고 전투였을 뿐이다. 

전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고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좌와 우의 대립도 아니었고 귀족노조냐 서민노조냐도 아니었다. 도정 쇄신도 아니었고 부채 청산도 아니었다. 그것은 할머니 할아버지 돈 없어 치료를 못받는 것이었고 일하던 간호사들이 길거리로 내쫓기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의무교육인데도 돈을 내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것이었고 이를 개탄하고 항의하는 이들은 인간 이하 멸시와 모욕을 견뎌야 했다. 홍준표 앞에서 도의원은 '쓰레기'가 되어야 했고 기자들은 '개'가 되어야 했다. 평범한 유권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반대나 비판을 하면 홍준표는 여지없이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러니 이런 마구잡이 싸움꾼을 보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나 싶다. 내 예상대로 황교안이 나섰다면 홍준표는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무대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문이라면 손끝만해도 밝히는 스타일이라서 홍준표는 되지 않을 일이다 싶으면 꼬리를 사렸을 것이다. 

3. 해찰은 새누리당에 부려야지!

그런데 황교안이 나오지 않는다니, 엉거주춤 한 발 걸쳐 놓고 있던 홍준표는 틀림없이 이렇게 여겼을 것이다. '수구 꼴통 발언·행동은 따라올 선수가 없는 경지이니 내가 한 번 나가보아야겠다!' 

아, 고맙다. 모름지기 그래야지. 홍준표 당신이 해찰을 부릴 데는 역시 경상남도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이야. 그게 정확하고 정직한 거야. 홍준표를 키운 것은 팔할이 자유한국당=새누리당=신한국당이었잖아. 사람이 은혜를 갚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지. 

'역시나'였다. 홍준표는 정밀한 계산 아래 막말을 이어갔고 이로써 자유한국당=새누리당=신한국당의 적통 적자임을 인정받았다. 홍준표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김진태·윤상현 같은 같은 친박은 물론 그 어느누구도 홍준표에 견주면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자유한국당에도 없었다. 

이제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홍준표 없는 경상남도'가 실현이 된다. 아니 이번 월요일 20일부터 2주 동안 휴가를 내었으므로 '홍준표 없는 경상남도의 실현'은 사실상 이룩되었다. 

물론 홍준표가 조금이나마 당선 가능성이 있다면 마냥 기뻐하기는 어렵다. 홍준표가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전무하기에 나는 마음놓고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걱정되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4. 홍준표는 무엇을 노릴까?

홍준표는 대선 이후를 겨냥하고 구상할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은. 자유한국당 대표로 대선을 치른 다음 홍준표는 당권을 움켜쥐려 할 것이다. 또 적당한 국회의원 보궐선거 자리에 출마하여 당선되려 할 것이다. 아울러 내년부터 해마다 치러지는 공직선거들에서 공천권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홍준표의 추잡한 싸움질을 전국 단위에서 보아야 한다. 보통 괴로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구성원들 대부분의 정신 건강은 형편없이 나빠질 것이다. 홍준표를 4등 이하로 끌어내리고 싶은 이유가 여기 있다. 

만약 2등을 하면 홍준표가 당권을 쥐고 이런 것들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지지율이 3등인데 만약 2등을 한다면 자유한국당을 되살리는 1등공신이 된다. 이렇게 되면 홍준표는 얼굴도 서고 명분도 크게 생긴다. 국회의원들은 앞다투어 머리를 조아릴 것이고 홍준표는 실리까지 짭짤하게 챙길 것이다. 

물론 홍준표가 2등을 한다 해도 자유한국당과 홍준표는 얼마 안 가 더불어 침몰한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이 고비가 된다. 자유한국당은 그 유구한 전통으로 말미암아 수구 꼴통밖에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천박하다. 머리에는 욕심밖에 없고 입에는 막말밖에 없다. 그러므로 품격을 아는 보수들은 선택지가 다를 것이고 제대로 된 보수를 담을 그릇 또한 따로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 그 재료가 많이 보인다. 

문제는 대선 바로 다음 날부터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패악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나도 그 중에 하나다. 홍준표가 4등 이하로 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까닭이다. 

5. 이런저런 가능성은?

성적표가 4등 이하가 되면 제 아무리 매구라 해도 당할 재간이 없다.('매구'는 '천 년 묵은 여우'의 경상도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망해가는 집구석이 자유한국당인데, 그 곳간에 얼마 안 되는 정치 자산까지 까먹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홍준표가 3등을 하면 본전치기가 된다. 2등에 가까운 3등이냐 또는 4등에 가까운 3등이냐에 따라 조금은 엇갈릴 것이다. 2등에 가까운 3등을 하면 홍준표한테 유리하겠고 4등에 가까운 3등을 하면 불리하겠지.

어쨌든 3등을 해도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당권을 장악하고 세도를 누리기가 쉽지는 않겠지. 홍준표도 매구지만 더한 매구가 자유한국당에는 충분히 많다. 그러나 그조차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홍준표 도지사 치하에 5년을 살았던-살아야 했던 경남에는 많다. 그래서 4등 이하 하기를 나는 바란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