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해전 하면 원균이 떠오르고 원균 하면 무능하고 이순신 장군을 괴롭힌 나쁜 사람이라는 규정이 항상 따라붙는다. 그런데 원균이 정말 그토록 무능하고 나쁜 사람이었을까는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원균은 경상우수사로서 임진왜란 초기 경상좌수영이 전멸한 가운데서도 적극 나서 왜군을 막았고 이순신과 합동 전투도 치렀다. 우리한테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뒤로 숨는 용렬한 지휘관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순신과 견주어서 능력을 평가하면 무능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게다가 능력을 떠나 주어진 조건만 비교해도 원균은 이순신보다 불리한 점이 많았다. 

원균 영정.

이순신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터지기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나름 전란에 대비할 시간이 넉넉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원균은 1592년 1월 고작 임진왜란 시작 3개월 전에 경상우수사가 되었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해전에 익숙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 나서 원균은 1595년 충청병사(충청도병마절도사)로 옮겨가게 된다. 바다에서 육지로 전장이 바뀐 것이다.  

1596년과 97년 즈음 왜군은 이순신 제거를 위해 이간책을 썼다. 선조를 비롯한 조선 조정은 이간책에 넘어가 이순신에게 일본 수군 본진이 있는 부산을 치라고 명령한다. 이순신은 부산은 왜적이 강성하고 가릴 데도 마땅찮아 쳐들어가면 안 된다면서 거부한다. 

이순신은 결국 왕명을 거역한 죄로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선조는 이순신 대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육전에 익숙해져 있었던 원균이 이제는 다시 수전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통제사가 되기 전에는 원균도 선조와 마찬가지로 부산 깊숙이 쳐들어가 쓸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제사가 되고 나서 원균은 이순신이 부산으로 진격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과 달리 부산으로 쳐들어가기를 한사코 저어했다. 

과정은 이처럼 달랐지만 이순신과 원균 모두 결과는 같았다. 그러자 도원수 권율이 원균을 여러 차례 나무라고 다그쳤을 뿐 아니라 곤장까지 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하여 떠밀리다시피 나가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배로 기록되는 칠천량해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순신 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

이런 흐름을 짚어보면 원균이 마냥 무모하거나 무능하다고만 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선조의 비겁함과 무책임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사정을 살펴보고 하되 굳게 지켜야 옳은데 권율이 다그쳐 원균을 죽였다"고 책임을 신하한테 떠넘겼다.  

칠천량해전 참패의 책임을 온전히 원균에게만 묻기는 어려운 정황들이 곳곳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무조건 출병을 고집했던 권율도 책임이 있고 그렇게 하도록 권율을 몰아부쳤던 선조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이어진 논공행상에서 선무1등공신은 셋뿐이었는데 이순신·권율 그리고 원균이었다. 부산으로 진격하라 다그쳐 칠천량해전 대패의 원인 제공자인 선조가 그 장본인인 원균을 일등공신으로 책봉했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원균의 이미지가 나쁘게 굳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인물과 대조되는 자체가 원균한테는 원초적으로 불리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1960~70년대 이순신 장군 영웅 만들기를 하면서 원균을 악역으로 동원한 까닭도 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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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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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중일기는 읽어봤나?? 2017.03.06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똥대가리가 있나?? 담에 올릴땐 더 잘아아보고 올려라~아가야~ 인터넷만 하지말고 책도 찾아보고 난중일기도 한번 읽어보고 말이야~

  2. 앙원균띠 2017.03.14 0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안빨로 관직오르다 한번은 걸려서 파직된 개쓰레기를 뭐??? ㅋㅋㅋㅋㅋ

    경상우수사도 집안빨로 오른 쓰레기인뎈ㅋㅋㅋㅋㅋ

    임진왜란 터지자마자 도망가겠다고 타고갈 배를 제외한

    수십여척의 초 주력함대를 싹다 불태우고 도망가는 새끼를 두둔하네?

    원균맹장설 이거 후손들이 주장하는건데 알고는 있나몰라

  3. 원균명장설 2017.05.02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여간 끝나질 않네. 생각은 하고 입을 여는건지.
    핑게 잘 보고갑니다. 그래서 뭐 원균이 잘한게 뭐가 있긴 합니까? 부하들 모조리 수장시켜버린 죄밖에 없는 머저리일 뿐인데. 차라리 원균은 없느니만 못한 놈이었지. 그놈만 없었어도 임진왜란 피해 저정도로 안나왔지.그야말로 역사의 죄인. 민족의 죄인. 살아있었던거 자체가 범죄. 그게 원균.

  4. 원균 2017.06.18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난민 아녀자 겁박희롱

    부하 매질로 때려죽이기

    술먹고 진영에서 깽판치기

    부하 굶겨 죽이기

    조선 어부 습격해서 죽이고 머리모양을 왜인과 같이하여 전공으로 보고

    부하의 전공을 위조하여 자신의 아들과 사촌에게 주기

    기타 등등등등등등등

    위의 나열만 항목들은 팩트에 근거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5. Favicon of http://www.naver.com 충무공 2017.07.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무공 이순신과 어디서 세균보다 못한 원균을 비교합니까 ㅡㅡ

  6. 아라요 2017.09.08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척이 넘는 판옥선과 수만명의 조선 수군을 무찌르신 왜장 원균님

  7. qwef1 2018.02.14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리 듣자마자 1만여명 병력 해산시키고 50~100여척에 육박하는 판옥선 자침하고 도망간놈을 뭐?..

    권율이 착했으니까 곤장으로 끝난거지 다른사람이였으면 효수야 이양반아

  8. 2018.04.06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균은 그냥 무능한게 맞음.
    해전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는걸 감안하더라도, 군영을 불태우고 판옥선들을 자침시키고 도주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이순신을 모함하였으며,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술마시고 첩질을 일삼았고, 칠천량에서의 졸전은 출병뿐만 아니라 이후의 전투도 범상한 것조차 되지 못해 소수의 적의 기습을 받자 도주부터 생각하여 후퇴시키고, 후퇴조차 제대로 해 내지 못해 군사가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걸 오직 원균이 처한 상황이 나빠서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지.

  9. 지나가는과객 2018.06.09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주시나 원균 후손 찌끄래기들이 요즘 어떻게든 원균 띄워보려고 로비하고 다니는거 참 안쓰럽다. 몇백년 후에는 이완용 후손들도 이완용은 사실 충신이었다고 떠들고 다닐까 무섭군 ㅋㅋㅋ

  10. 원균후손이냐? 2020.07.27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 처음 침략 했을때, 원균은 싸우지도 않고 50여척 넘는 판옥선을 수장 시키고 도망간 무능한 놈임, 그때 배만 가지고 퇴각 해서 최대한 배 지키거나 용감하게 싸웠으면 평양으로 가는 왜구의 진군 시간을 상당히 지연 시켰을 것임 배 가지고 퇴각 해서 후일을 도모 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요. 말도 안되는 쉴드좀 그만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