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빙 필자의 글/대한민국 경찰관 황운하의 생각

경찰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6. 10. 9. 12:03
반응형

대한민국 경찰관 황운하의 생각

경찰이 당면한 몇가지 시대적 과제의 해법에 골몰하다보면, 관건은 '경찰수뇌부가 정치권력에 매우 취약하다'라는 국민적 불신을 여하히 극복하느냐 여부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국민적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헌법정신인 직업공무원제의 취지가 무시됨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경찰조직에서 직업공무원제의 적용대상이 아닌 정무직은 차관급인 경찰청장 한명밖에 없다. 치안정감 직급은 신분보장의 예외일뿐이고, 치안감이하는 더우기 직업공무원에 불과하다.

후배 경찰관들에게 부끄럽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는 정부인사라고해서 직업공무원제의 전제인 실적제, 실적제의 근간인 성과나 선임순위(seniority)가 무시되고 정실주의 인사가 허용될 수 있는건 아니다. 경찰고위직 인사가 실세들이 전리품 획득하는 각축장이 되어서는 경찰조직이 건강성을 가질수 없다.

대통령 인사권을 빙자해서 누군가가 '누군 되고, 누군 안되고'를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면 누굴 바라보고 일하겠는가. 결국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과 검찰에의 예속이 심화되고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진 : 김덕진 카카오톡

정치권력과의 특별한 연줄에 따라 경찰고위직 인사가 좌우되는 관행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제도의 성숙성을 부정하는 자기비하이고 패배주의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사회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벌써 타파되었어야 할 폐습에 불과하다는걸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폐습의 타파는 경찰대학 졸업생들이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과제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졸업한지 32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게 없다. 후배들 보기 부끄럽다.

경찰청장 리더십의 핵심이자 존재이유는 '인사와 수사에 있어서의 외풍차단, 독립성의 확보'에 있다.

직업공무원제의 헌법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직업공무원제

우리 헌법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주권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헌법 제7조에서는 공무원은 (정권이 아닌)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공직제도로서 직업공무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직업공무원의 범위에서 장차관 등 정치적 성격을 띤 정무직은 제외하여야 하며 경찰 등 특정직을 포함한 경력직공무원을 의미한다. 이들로 하여금 집권세력에 의해 논공행상과 같은 정치적 판단의 제물이 되지 않고, 업적과 능력에 따라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어 공직을 전 생애의 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직업공무원제의 핵심적 요소이다. 따라서 직업공무원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과 함께 실적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 보장의 의미를 정치활동 금지나 선거에 있어서의 중립성 확보만으로 좁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직업공무원제 확립과 관련하여 정작 중요한 내용은 공무원의 인사에 정치적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있다. 직업공무원의 신분이 정권교체의 영향하에 놓이거나 공직이 집권세력의 전리품이 되어 엽관제(獵官制)나 정실인사(情實人事) 등에 의하여 좌우되거나 또는 정당한 이유없이 부당하게 승진누락 등의 신분상 불이익을 받는다면 공무원의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는 무의미해진다.

그렇게 될 경우 공무원들은 각자도생으로 연명과 승진을 위하여 정치권 실력자들과의 연줄을 만들어 그들의 사병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게 된다. 따라서 인사에 있어서 정치적 요인 또는 혈연, 학연, 지연 등 정실적 요인을 배제하고 능력이나 자격을 기준으로 하는 실적제가 근간을 이루어야만 직업공무원제를 천명한 헌법정신에 부합하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정도차이가 있을 뿐 실적주의를 인사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고, 대체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공무원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안심하고 소신껏 직무에 전념할 수 있어야만 국민전체를 위하여 참다운 공익을 실현할 수 있고 현대행정이 요구하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일개 부처 국장 인사까지 손을 댄다?

그럼에도 작금의 직업공무원에 대한 인사실태는 이러한 헌법정신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동아일보 박제균 논설위원의 지난 4월21일자 칼럼 ‘총선참패는 靑 좁쌀인사부터 시작됐다’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칼럼은 ‘국정실패는 인사실패부터 시작된다’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전 정권까지는 해당부처에 어느 정도 재량권이 주어졌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일개 부처 국장 인사까지 일일이 손대고’ 있으며, ‘일선 부처가 청와대에 올린 3배수 인사안의 순위대로 되기보다는 청와대가 낙점하는 인사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런 과정이 정상적인 의사결정 통로를 통해 이루어지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른 바 실세로 불리는 ‘어디선가’에 의해 인사가 판가름나고 이러니 공무원들의 원성이 자자하지 않을 수 없고 (공무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세종시에서 야당의원이 연달아 당선된 건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전 경찰의 치안정감과 치안감급 승진 인사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치안감 이상 고위직은 임명권자인 대통령 즉 청와대가 출신지역과 입직경로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더 이상의 구체적 경위는 알기 어렵다.

다만 앞서 소개한 박제균 칼럼에 따르면 일개 부처의 국장급 인사까지 일일이 손대는 청와대가 치안감 이상의 인사에는 당연히 개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청와대는 치안감 이상의 승진인사에 경찰청장으로 하여금 2~3배수의 인사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후에 청와대의 ‘누군가’가 낙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청장을 역임한 몇분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로는 과거에도 치안감 이상의 승진 인사를 청와대가 결정하는건 맞지만 지금처럼 청와대가 낙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찰청장 자신이 마련한 인사안대로 대체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공직은 권력실세의 전리품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행사되는 구체적 과정에 있어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찰청장이 자신의 마련한 인사안을 놓고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최종 관철시키는 방안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경찰청장이 제출한 2~3배수의 인사안을 놓고 청와대의 ‘누군가’가 ‘누구는 (안)되고’ 여부를 최종 낙점하는 방안은 직업공무원제의 근간을 훼손할 위험이 높다.

그런 시스템하에서는 직업공무원이 국민전체를 위한 봉사자로서 일하기 어렵고 소신껏 직무에 전념하기 어렵다. 자신을 낙점하거나 배제하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찾아 앞다투어 그들의 사병이 되려 하지 않겠는가. 임명권자가 대통령인 정부인사라고 하더라도 헌법이 규정한 바 직업공무원제의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직업공무원제의 취지에 부합하느냐의 판단 기준은 공직이 이른 바 권력실세의 전리품인양 취급되거나 정치적 요인 또는 학연, 지연 등 정실적 요인에 좌우되느냐 여부이다. 경찰청장이 자신의 지휘권 행사를 명분으로 정실(측근)인사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처럼, 정부인사를 명분으로 권력실세들이 학연, 지연 등을 고리로 한 자기사람 챙기기에 나서는 것은 직업공무원제를 부정하는 엽관제에 다름 아니다.

최근의 경찰고위직 인사와 관련한 언론보도 중에는 청와대의 모모 실력자들과의 지연 등 특별한 인연이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는 내용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역을 잘 태어난 것’이 인사의 결정적 기준으로 작용한 듯 알려지는 것은 직업공무원제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반한다.

또한 실적제의 중요한 판단기준인 선임순위(seniority)가 뚜렷한 이유없이 존중되지 않는 것은 인사에 대한 신뢰도와 조직의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물론 지연 등과 아무 관계없더라도 또 선임순위를 뛰어넘을만큼 출중한 역량을 지녔다는 전제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글쓴이 : 황운하 경무관

경찰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이 된다면...

인사는 메시지이다. 무슨 메시지가 던져질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경찰은 정치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왔다. 경찰의 수뇌부는 국민이 아닌 정권실세에 충성한 대가로 자리를 보전받거나 승진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 사이에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추락했다. 오늘날 경찰이 불신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불신’이다.

거기에는 경찰 고위직 인사에 있어서 직업공무원제를 규정한 헌법정신이 지켜지지 못한 체 정실적 요인에 의한 인사가 횡행한 탓도 적지 않다. 정치권력이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명분으로 경찰 고위직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싶어하는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막중한 책무를 수행해야 할 경찰조직의 고위직 인사가 조선말 열강들의 각축장처럼 되어서는 경찰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정치권력도 직업공무원제라는 헌법정신을 상기하며 스스로 자제해야겠지만, 경찰수뇌부 또한 순치에 익숙한 자세로 ‘어쩔수 없다’며 마냥 고분고분하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쉽게도 역대 경찰총수 중 어느 누구도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정치권력과 대립한 적이 없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경찰청 장관과 경시총감(우리의 서울청장)이 각각 자신의 직을 걸고 최고 권력인 수상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대립을 마다않는 투쟁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경찰에 대한 신뢰 확보는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글 : 황운하 경무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