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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함안 성산산성의 세 가지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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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에 성산산성이 있습니다. 가야읍내 말이산고분군에서 도항마을을 지나 함안면으로 발길을 옮기면 불꽃놀이로 이름 높은 이수정(무진정)이 나옵니다. 정자와 그 앞 연못에 눈길을 건넨 다음 정자를 끼고 오른편으로 산길을 오르면 성산산성이 나타납니다. 


1587년 함안군수 한강 정구는 지역 사림들 역량을 모아 읍지 <함주지(咸州誌)>를 펴내면서 성산산성을 두고 ‘가야 옛 터’라 일었습니다. 지금껏 발굴이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성산산성이 신라 기록의 보물창고로 확인됩니다. 군사·행정 목적으로 글자를 적었던 나무조각이 다른 나무 도구들과 함께 엄청나게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아라가야가 쌓아놓은 석성을 신라가 점령한 뒤 군사 요충으로 썼던 모양입니다. 


동문 현장 안내판 일부를 찍은 사진입니다.


성산산성은 조남산(鳥南山 140m) 꼭대기에 있습니다. 조남산은 함안 물줄기 대부분의 방향과 마찬가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조남산 앞쪽에는 함안에서 가장 굵은 물줄기인 함안천이 왼쪽에서 신음천을 쓸어담고 오른쪽에서 검암천을 끌어안는 일대가 펼쳐집니다. 함안천은 더 나아가 남강으로 이어지고 남강은 또 얼마 뒤 낙동강과 합류를 합니다. 


성산산성 동문 자리 발굴 현장.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건물터.


옛적에 함안으로 외적(外賊)이 쳐들어온다면 거개는 이 물길을 거슬러 올랐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조남산 꼭대기에 성산산성이 놓여 있는 까닭을 제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오면 바로 아래에서 무진정과 둘레 문화유산까지 눈에 담깁니다. 무진정은 지나치게 알려져 있어서 따로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함께 있는 ‘부자쌍절각’ 등은 한 마디 붙여둘 만합니다. 


무진정은 함안 조씨 외자 이름 섬이 지었는데, 그 증손 준남이 정유재란 때 왜적한테 조상 무덤이 파헤쳐지는 지경을 당하자 무진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며 그 아들 계선은 1627년 정묘호란에서 전사를 했답니다. 


부자쌍절각과 충노대갑지비(오른쪽).

무진정 아래 연못 풍경.


이를 기리는 부자쌍절각인 셈인데요 앞 오른편에는 조그만 빗돌이 옹색하게 있어서 ‘충노대갑지비(忠奴大甲之碑)’라 일컬어집니다. 대갑은 아들 조계선을 모시는 노비였던 모양입니다. 조계선이 전사하자 대갑은 의주에서 돌아와 부음을 전하고는 “난리에서 주인도 구하지 못했는데 살 면목이 없다”면서 검암천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답니다. 이 노비 이름만 보면 아무래도 갑 중에 갑이었을 것 같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을(乙)도 병(丙)도 아니고 정(丁)이나 무(戊)로 살다 죽은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성산산성을 찾아 누릴 수 있는 첫 번째 미덕은 이런 역사 유적을 눈에 담음과 동시에 옛적 사람들이 여기에다 산성을 쌓은 까닭을 나름 짐작해보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으로는 산성에 이르는 길과 산성을 한 바퀴 두르는 길이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오르내리기 좋다는 사실이 되겠습니다. 


길바닥을 보면 질경이가 짜다라 많습니다. 질경이는 씨앗을 수레바퀴나 사람 신발에 묻혀 퍼뜨립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질경이가 수북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쏠쏠하게 드나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마 마을 사람들 발길이겠지요.


아래에서 산성 들머리까지 오르는 길은 두 갈래가 있습니다. 무진정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오른쪽 주차장 있는 데서 오르는 길과 왼편 재실을 지난 다음 괴항(槐項)마을로 해서 오르는 길입니다. 오른편은 줄곧 곧게 뻗은 길이지만 왼편은 이리 비틀 저리 구불 굽은 길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접어들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가 천천히 걸어도 10분을 넘지 않을 정도로 짧으며 또 가파르지도 않습니다.(두 길은 도중에 만납니다.) 


동문 자리에서 왼쪽으로 산성 테두리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길도 썩 괜찮습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설렁설렁 걸으면 1시간 남짓 걸립니다. 테두리보다 꺼져 있는 한가운데 안으로 가는 길들도 군데군데 열려 있어 이런 데로 들어가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산성 한가운데 풍경. 대숲 아래 땅이 전에는 농지였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두르면서는 성곽 위에 올라가 볼 수도 있습니다. 농사짓는 들판과 사람 사는 마을 그리고 굽이치는 개울들 풍경이 시원하게 한 눈에 담깁니니다. 이태 전에는 성곽 위에 찔레나 아카시아가 무성해 올라가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보니 이렇게 깔끔해져 좋은 전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솔길 왼쪽이 성곽입니다. 이태 전에 왔을 때는 수풀이 무성해 올라가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말끔해져 있어서 훌륭한 조망까지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길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미덕은 밋밋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길이 좁아지거나 넓어지고 이런 나무로 우거졌다가 저런 나무로 바뀌고 나지막한 풀들이 우묵하다가 갈대·억새 따위가 키를 넘기고 하는 재미도 더해진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잘 생긴 나무를 눈에 담으며 탁 트인 전망도 누리는 즐거움을 이 자드락 산길이 안겨준다는 사실입니다. 무진정 오른쪽 주차장 사이로 난 길에는 멋지게 생긴 미루나무(맞는 이름은 양버들이라 들었습니다만, 이럴 때는 꼭 미루나무라 해야 맛이 납니다.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운운.)가 마치 싸리나 대로 만든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이 생겼는데 가볍게 일렁이는 바람에도 기다란 몸매가 흔들흔들 흔들거립니다. 오르면서 보면 흔들거리는 배경이 푸른 하늘이어서 유독 돋보입니다. 



산성 어귀에 다다라 왼쪽으로 돌면서부터 뛰엄띄엄 이어지는 소나무들도 그 품새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다듬은 것처럼 말끔한 모양으로, 아래쪽 가지는 털어낸 채이지만 위쪽 가지들은 좌우로 정연하게 넓게 퍼져 있어서 낙락장송은 아니라도 넉넉한 기운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느티나무도 몇 그루 있는데요, 아마 옛날 여기 꼭대기에도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을 때 동구나무 구실을 톡톡히 했을 것 같이 멋집니다. 그 옆에는 배롱나무도 몇 그루 있어서 조금만 지나면 그 꽃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도 펼쳐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아 움푹한 안쪽으로 들면 이번에는 대숲이 마중나와 있습니다. 곳곳에서 자라는 갈대·억새·미나리 위편으로 보면 대나무가 남북으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대숲 사이로 길지 않은 오솔길이 나 있는데요, 이런 대숲길의 즐거움은 몸소 걸어본 적이 없으면 실감하기가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다음으로는 다시 동문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옵니다. 내려오다 보면 좁지만 뚜렷한 오솔길이 오른편으로 하나 보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너르고 또 곧은 편이지만 이 길은 좁으면서 지그재그입니다. 그러면서 대숲과 솔숲, 참나무류 활엽수가 주류인 나무숲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인데도요. 



이렇게 들어선 마을 끄트머리에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지어진 ‘괴항새마을회관’ 단층 건물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쓰지 않아(새로 지은 마을회관은 마을로 좀 더 들어가 있습니다.) 좀 남루하지만, 그래도 정문 언저리만큼은 나름 시대정신을 담아 꾸민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괴항마을 담벼락 담쟁이덩굴.


괴항새마을회관.


이렇게 함안 성산산성의 미덕은 말씀드린대로 △눈에 담을 역사·문화 △걷기 좋은 산길 △마음에 드는 나무와 숲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금 봄날에 가면 공해로부터 자유로운 쑥을 마음껏 캐는 보람도 있습니다. 달래나 머구(머위)도 있는데 쑥처럼 지천에 깔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가죽순도 적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사람 손 타지 않은 돌미나리도 무성하게 있었습니다. 


흐르는 개울에 자라나 있는 돌미나리. 산꼭대기에 물이 솟다니 신기합니다.


이번에는 시간이 모자라 손대지 못했습니다만 언젠가 넉넉하게 시간 내어 다시 한 번 다녀오리라 마음먹은 성산산성입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 사람들한테는 말할 것도 없고 함안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니 한편으로 아쉽고 한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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