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런 심정으로 <경남의 숨은 매력>을 썼습니다

김훤주 2016. 5. 4.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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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아마 서점에 책이 깔리는 모양입니다. 제가 네 번째로 펴낸 <경남의 숨은 매력-역사문화 스토리텔링> 이야기입니다. 크게 대중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경남에 살고 있거나 경남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뿌리 뽑힌 세상이 싫습니다. 물론 뿌리가 뽑히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제가 스스로 제 뿌리를 뽑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 문화에 대해 그 뿌리를 제 나름껏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아래는 <경남의 숨은 매력>에 머리말로 붙인 글입니다. 경남 지역 18 자치단체 20개 지역에 대해 글을 써 놓고, 왜 이런 글을 썼을까 돌이켜 보는 과정에서, 조금은 울컥, 하면서 이 머리글을 썼습니다. 좀 지나치게 솔직한 것 같아서, 적지 않게 민망하기는 합니다.







나고 자란 내 고장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저는 어릴 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향 창녕 읍내장터 근처 석빙고나 술정리동삼층석탑에 올라타고 신나게 놀 때도 그것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조금씩 자라면서 사연이 서려 있는 데를 부러 찾기도 하고 방바닥에서 뒹굴뒹굴하며 지역 관련 역사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굵직한 역사들보다 손만 내밀면 바로 잡히는 지역 역사가 볼수록 생생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역 역사 유물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습니다. 아마도 이런 바탕이 우리 고장 경남의 역사를 소재로 삼아 감히 이렇게 책을 내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역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지역 특징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천편일률로 서술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역마다 자연적인 특징이 있고 그 특징이 삶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거창에 커다란 돌부처가 많다든지 고성 학동 돌담장이 아름답다든지 하는 데에는 거창이 전국 으뜸 화강암 산지이고 고성은 지질이 무른 퇴적암 계열이라는 점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거제도 일대에서 왜 해전이 유독 많았는지도, 섬들이 많고 육지와 섬 사이가 좁은 덕분으로 바다가 덜 거칠었기에 당시 항해 기술로는 유일하게 통행 가능한 해로가 거기였다는 사정이 곁들여져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성이 가야 시대 어떻게 해서 강한 세력이 될 수 있었는지도, 거기가 빼빼한 곶(작은 반도)이었기에 배들이 짐을 싣고 빙 두르는 것보다 여기 배를 대고 동서를 오가며 육로로 짐을 나르는 편이 나았다는 사정을 알아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을 다루는 역사책인데도 지역적인 것보다는 전국적인 것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나 관점이 느껴질 때도 적지 않아 또한 아쉬웠습니다. 


이를테면 창녕을 얘기하면서 신라 진흥왕 척경비를 대부분 창녕 대표 유물처럼 꼽는데요, 이는 전국 관점에서 보면 타당하겠지만 지역 측면에서는 달리 살펴볼 구석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녕은 ‘빛벌’ 가야의 옛 땅입니다. 진흥왕 척경비는 정복자인 신라 왕족·귀족에게는 기릴 만한 무엇이지만 가야 후예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천 다솔사는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 선생이 오래 머물렀고 자주 다니러 왔던 사실 그리고 작가 김동리가 소설 ‘등신불’의 모티브를 얻고 창작을 했던 산실로 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로 하여금 다솔사와 인연을 트도록 만든 주역은 바로 당시 주지스님 효당 최범술이었습니다. 사천에서 나고 자란 효당은 불교계 항일비밀결사였던 만당卍黨(그 당수가 한용운)을 조직하는 데 열성이었고 사천에 광명학원(그 선생님이 김동리)을 설립하는 등 민족교육에도 힘썼습니다. 효당이 있었기에 다솔사가 민족독립운동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역사책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슨 일에서든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은 ‘한 번쯤 다르게 생각해 보는 힘’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지금까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되면서 생각이 확장되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 참패한 칠천량해전에서 전쟁의 끔찍함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지는 않겠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본 지배집단의 대륙 진출(침략) 야망에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아울러 사천전투에서 패퇴한 조·명연합군의 합장 묘역인 조명군총에서는 왜적의 잔인함을 떠올리는 데서 나아가 강대국에 빌붙어 나라를 지탱하는 아픔과 슬픔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새길 수 있으면 또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은 역사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사학자가 펴낸 역사서는 아닙니다.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의 관점에서 발품을 팔아 돌아보며 느끼고 찾아낸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지역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조금이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이라 여기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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