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여영국이 총선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김훤주 2016. 4. 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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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창원 성산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선거 기간에 써올리지 않은 글입니다. 노회찬 득표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미루었다가 이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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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여영국에 대한 기억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영국(현직 경남도의원, 정의당 경남도당 위원장) 선수가 경남도의원 후보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저는 적지 않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이가 출마하는 창원시 제5선거구(상남·사파동)가 노동자 밀집지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5년 넘게 노동운동을 해온 여영국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어쨌거나 노동운동을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탐낼 만한 선거구라는 말씀입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후보와도 맞서야 하지만 그에 앞서 노동운동 안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과정이 꽤 어렵겠고 어쩌면 여영국이 본선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아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세가 2008년 꼭대기에 이르렀던 민주노동당이지만 그 때는 이미 쪼개져 진보신당과 양립하고 있었습니다. 생긴 지 얼마 안되는 진보신당은 예전부터 있어 왔던 민주노동당보다 허약한 존재였고 여영국은 그 허약한 정당에 몸담고 있는 불리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보니까 어지럽고 간단하지 않다고 하는 노동판에서 여영국 후보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신기했습니다. 


그즈음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동을 해 온 선배 한 명을 만나 “어떻게 그리 쉽게 정리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선배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한 마디 짧게 말했습니다. “영국이니까!” 



바로 그 순간 선배 그 말뜻이 제게로 마치 감전이 되는 듯이 번져왔습니다. 여영국은 1985년인가 이래로 해고·수배·구속 등등 갖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야말로 열성으로 노동운동을 해 왔습니다. 통일(지금 S&T중공업)에서 잘린 뒤로는 창원 지역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직하는 일을 주로 벌였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노동조합) 위원장이니 부위원장이니 사무국장이니, 또는 이런저런 지역 조직의 대표니 처장이니 하는 감투 한 번 쓰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노동운동 하나만 바라보고 아무 사심 없이 열심히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 여영국이었기에 특정 선거구를 집어 ‘제가 한 번 나가보겠습니다.’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쉽사리 양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여영국은 정치적·사상적 차이를 떠나 노동운동을 하는(그리고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창원 지역 노동운동의 대표선수로 인정하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2. 이번 총선에서 여영국의 역할


그런데 이번 제20대 총선에서 노회찬을 모셔오는 과정을 거치며 어쩌면 더 이상 그런 대표선수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습니다. 


다들 아시는대로, 노회찬의 창원 성산 출마는 간판 노릇을 했던 여영국을 비롯해 지역 여러 노동자들이 나서서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모셔오기는 창원(또는 경남) 지역 노동운동에서 여영국과 달리 이루어져 있는 세력 집단에서 출마 못하도록 막는 데 1차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셔진 노회찬은 다른 세력에서 내세운 손석형과 민주노총경남본부 경선에서 맞붙어 이겼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여영국은 당연하게도 노동운동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대신 자기가 소속된 정치집단 또는 세력의 이익만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구실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포스트(Post)-권영길 지역 정치판을 선점하기 위해 손석형을 앞세운 세력·집단을 두고 패권주의라 비판한다면, 이를 막기 위해 멀리 서울에서 선수를 차출해 투입한 세력·집단 또한 마찬가지로 패권주의라 비판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손석형이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로 적합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이를 역패권주의라 이름해 될는지는 모르지만 이 역패권주의를 실현하는 앞자리에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여영국이었습니다. 


3. 지역에 어른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우리 지역 시민사회(노동운동까지 포함해서)가 제대로 구실을 못하는 까닭이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지역 시민사회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나이 지긋한 사람 가운데 모두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는 인물은 없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집단·세력만 쪼잔하게 대표·대변하거나 아니면 그저 자리·감투(운동하지 않는 바깥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는)욕심밖에 남지 않은 인물이 대부분입니다. 어른이 제대로 없다 보니 우리 지역 시민사회가 이리 갈라지고 그리 무너지고 저리 흔들리고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장차 그런 구실을 한 인물이 여영국이지 않을까 여겼습니다. 30년 넘게 노동운동을 해온 데 더해 별다른 흠결도 없으며 이쪽저쪽에서 두루 고루 인정을 받는 여영국이라면 나중에 지역의 어른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지요. 이렇게 여영국 같은 인물이 지역을 아우르며 중심을 잡아주면 그 덕분에 지역 시민사회가 한결 활기차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기대도 했더랬습니다. 


그런 그이가 이번에 특정 세력·조직·집단의 이해를 관철하는 데 앞장서는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 저로서는 제가 앞서 품었던 기대를 걷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여영국 또는 그이와 견해가 같은 이들이 제 글을 반박하면서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때 그 국면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하느냐?”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포기해야지요. 실력도 없으면서 집적대면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할 일은 바깥에서 인물 모셔오기가 아니라 지역에서 인물 키우기이고 실력 기르기가 아닐까요?”) 


물론 얻은 것도 있습니다. 반발과 반대 가운데서도 지역 노동정치판에서 패자(霸者)가 되어 맹주(盟主)에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혹시라도 나중에 창원시장 선거에 나서기라도 한다면, 그 때 써 먹을 수 있는 조직을 이번 20대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제대로 구축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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