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노회찬, 창원 성산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김훤주 2016. 4. 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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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써둔 글입니다만, 노회찬 득표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투표 종료 시점에서 1시간이 지난 4월 13일 오후 7시에 올립니다.



노회찬과는 옛날 한솥밥을 먹기도 했었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진보정당이 없는 조건에서 진보정당운동을 한 적이 있었고 당시 노회찬은 전국 단위 지도부의 일원이었으며 저는 지역 단위 집행부의 일원이었습니다. 


1992년 총선에 민중당으로 참전했다가 참담한 패배와 더불어 민중당은 해산되고 말았던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그래도 진보정당의 꿈을 버리지 못해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라는 조직을 만들어 작으나마 운동의 한 모퉁이에 있었더랬습니다. 


물론 그 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조직을 떠나갔지만 노회찬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정추의 대표를 맡아 굳센 의지로 활로를 개척했습니다. 저는 그 때 진정추 창원을지부에서 사무국장 등등을 맡아 상근하고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노회찬 대표는 열성이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2008년 총선도 기억이 납니다. 문제의식은 선도적이었으나 조직 실세는 대단하지 못했던 진정추 출신이기에 노회찬은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서 앞자리가 아닌 8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안타까이 여긴 유권자 대중이 ‘노회찬 일병 구하기’ 작전을 펼쳐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껑충 올라가는 바람에 급기야 노회찬을 실제로 국회에 진입시키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저는 그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선수가 자기를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했다가 3%에 못 미치는 정당 지지를 받아 낙선한 것까지 기념하는 마음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노회찬이 이번 20대 총선을 맞아 창원 성산에서 정의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원래 지키던 서울 노원병을 떠나서 말씀입니다. 그런데 앞에 말씀드린 그런 인연으로 보면 창원에 온 노회찬을 반기고 기뻐하는 마음이 앞서야 마땅할 텐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해 저도 안타깝습니다. 


노회찬은 본인의 창원 성산 출마가 결정된 상태에서 진행한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원병에서는 (자기든 안철수든) 어차피 새누리당이 아닌 야당 후보가 당선되지만 창원 성산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새누리당 후보를 떨어뜨리고 당선되면 효과는 두 배가 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노원병은 새누리당=0, 야당=+1이지만, 창원 성산은 새누리당=-1 야당=+1이라는 얘기입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한동안 한솥밥을 먹기까지 했던 저로서야 노회찬의 이 이야기를 진정성 그 자체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까지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 숫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많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대부분 사람들은 ‘노회찬이 안철수가 무서워서 노원병을 떠나 만만한 강기윤(새누리당 소속 창원성산 지역구 국회의원)이 있는 창원성산으로 내려왔다’고 여깁니다. 노회찬 본인이 어떤 마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객관적·대중적으로 볼 때 이런 인식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국회의원이 민의를 대변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대중이 볼 때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노회찬이 대변하려는 민의가 반드시 창원 성산에만 있지는 않을 텐데, 굳이 창원 성산에 온 것은 그런 특혜를 누리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기 쉽다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노회찬도 정치인인지라 국회의원 자리를 발판 삼아 더욱 크게 뻗어나갈 생각을 한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그런 생각 또는 욕심이 잘못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런데 만약 노회찬이 이번에 창원성산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아마 노원병에 출마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아니면 수도권 다른 지역구에라도 나섰을 것입니다. 


이렇게 노원병이나 수도권에 출마하는 노회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진보나 정의라는 대의를 위해 싸우는 이미지로 떠올릴 것 같습니다. 반면 어떤 이유를 갖다대든 창원 성산에 출마하는 노회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자리를 탐하는 이미지로 떠올리기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역지사지(易地思之)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노회찬이 19대 총선에서는 노원병에 출마해 당선됩니다. 그러다 노회찬의 삼성 X파일 떡검 명단 공개가 법원에서 유죄 확정되면서 국회의원 자리를 잃습니다.(지금도 저는 안타깝습니다.) 


이 틈새를 파고들어 2013년 노원병 보궐선거에 안철수가 출마합니다. 노회찬은 그 때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를 비판합니다. 그래서 노회찬 아내 김지선씨가 대신 출마합니다. 하지만 안철수를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노회찬의 이번 창원 성산 출마는 2013년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노회찬 쪽이 안철수한테 했던 비판을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로써 진보진영은 앞으로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핀잔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민주노총경남본부 경선에서 노회찬과 맞붙었던 손석형도 역지사지를 못한 인물입니다. 손석형은 2008년 경남도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될 때 해당 선거구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바로 지금 새누리당 이 강기윤)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한 데 대해 무척 세게 비판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에는 본인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도의원 중도사퇴를 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결론 삼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노회찬은 이번에 창원 성산 출마를 통해 진보진영 최초 3선 국회의원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분명 좋은 일이고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보탬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는 반면 잃은 것도 있습니다. 대다수 일반 대중의 눈에 대의를 앞세워 활동하는 큰 인물로보다 국회의원 자리를 탐하는(물론 그렇기는 해도 일은 잘하는) 쪼잔한 인물로 비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3년 전에 안철수를 향해 쏟아냈던 비판을 이번에는 본인이 스스로 뒤집어쓰는 모습도 보여주었는데, 이 또한 좋게 작용할 리는 전혀 없다고 하겠습니다.(노회찬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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