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었음이 확인되는 순간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독재가 확실하게 되살아나는 반면 민주주의는 숨통이 제대로 끊어지겠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를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재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박정희는 제가 고1 때 죽었습니다. 박정희는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지만 학교까지 감옥으로 만들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어떻게 하라고 규정하고는 그것에 어긋나면 엄벌했습니다. 심지어 변소 가서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눌 때도 허리를 굽히지 말고 꼿꼿하게 세워야 한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뺨따귀를 얻어터져야 했으며 학교 정문 드나들 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감방살이를 했던 선배 한 명도 떠올랐습니다. 또 그 선배의 끝모를 절망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합뉴스 사진.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해 종신 대통령이 됐고 국회를 장악했고 법원을 무력화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사실상 자기가 임명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기를 대통령으로 선출(실은 추대 또는 옹립)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국회의원 정원의 3분의1을 사실상 자기가 임명하고는 거기다 ‘유신정우회’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나머지 3분의2는 여야가 동반 당선이 가능하도록 중선거구제를 시행함으로써 국회의원의 3분의2를 안정적으로 자기 수하에 넣었습니다. 사법부에 대해서는 대법원장은 물론이고 대법원 판사(지금 대법관)과 일반 법관조차 자기가 임명하도록 하였습니다. 


게다가 이런 헌법에 비판 또는 반대를 하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먹이도록 했고 긴급조치권도 박정희가 대통령으로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발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긴급조치 그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 또는 반대를 하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매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치하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그 선배였고 그 때문에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이는 자기 신념과 맞지 않음에도 오로지 박근혜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문재인한테 투표를 했습니다. 박근혜가 당선되면 그 아버지 역사를 그 이상으로 되풀이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나중에 들었는데, 그 선배는 당시 진짜로 이민을 해야 하나 고민을 심각하게 했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2012년 12월 그 즈음 경남 하동 쌍계사 들머리 버스 정류장에서는 이런 종이쪽을 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당선을 알리는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를 복사한 종이였는데요, 그 옆 공간에는 “우리나라 역대 세 번째 여왕 탄생!!!”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참으로 쓸쓸하고 씁쓸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12월 하순 어느 날에는 경남 함양 어느 산골 동네 마을회관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는 동네 할매할배들 열대여섯 분이 바람벽에 등을 기댄 채 윗목 한가운데 놓여 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커다랗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할매할배들은 그런 장면을 보는 자기네 입가에 웃음을 헤벌레 물고 있었습니다. 그런 웃음은 당신들 흐뭇한 속내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절망스러웠습니다. ‘아~~ 저런 할매할배들 탓에 대한민국 독재가 되살아나고 민주주의가 숨통을 끊기는구나. 정말 때려주고 싶도록 밉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런데 이런 생각과 감정이 3년 남짓 세월이 흐른 지금 한홍구가 쓴 <대한민국史-1>을 읽으면서 바뀌었습니다. 159쪽이었는데요, 여태껏 가져왔던 경상도 할매할배들에 대한 제 태도에 문제가 많았음을 분명하게 짚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 대결 주체에 대한 서술이었습니다만, 꼭 남과 북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다른 대결이나 갈등에도 조금은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렇습니다. “지금 평양의 3호청사에서 대남사업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북의 엘리트 관료들은 남에서 태어났다면 반체제운동을 하기보다는 고시에 합격해서 공안검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큰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남쪽 엘리트 관료들이 북에서 태어났다면 유능한 당 일꾼이 되었을 것이고, 극우의 논객들은 그들이 ‘동토의 왕국’이라 부르는 북에서 반공투사가 되기보다는 <로동신문>이나 <근로자>의 글쟁이가 되어 체제옹호의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당사자 세대의 대결을 넘긴 오늘의 분단에서 이런 운명의 우연성의 여지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화해의 길을 열 수 없다.” 


우리는 경상도 할매할배들이 십중팔구가 박근혜한테 투표를 하였을 것이고 전라도 할매할배들은 마찬가지로 십중팔구가 문재인한테 투표를 하였으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령별 분석은 나와 있지 않지만 제18대 대통령 선거 투표 결과를 보면 이를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물론 청·장년층 투표도 비슷한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저는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 창원 신촌동 한 술집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문재인을 보고 “저 새끼도 빨갱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이는 63년생인 저보다 나이가 어렸습니다.) 


‘경남’ 함양에서 육십령 고개를 넘으면 바로 ‘전북’ 장수이고 팔령치 고개를 하나 넘으면 또 바로 ‘전북’ 남원입니다. 또 ‘경남’ 하동에서는 너비가 1km도 안 되는 섬진강을 건너가면 ‘전남’ 구례입니다. 그런데도 투표 성향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나오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결과입니다. 경상북도를 보면 171만122명이 투표했는데 박근혜 지지가 137만5164명(80.82%)이고 문재인 지지는 31만6659명(18.61%)입니다. 전라북도는 어떨까요? 아시는대로 114만2133명이 투표했는데 박근혜 지지는 15만315명(13.22%)인 반면 문재인 지지는 98만322(86.25%)입니다. 


맞붙어 있는 전라북도 장수·남원과 경상남도 함양을 대조해 보겠습니다. 남원입니다. 5만4221명이 투표했는데 6583명(12.25%)가 박근혜 지지, 4만6681명(86.90%)가 문재인 지지입니다. 장수입니다. 1만5113명이 투표했는데 14.93%인 2236명만 박근혜 지지이고 83.92%인 1만2567명이 문재인 지지입니다. 경남 함양은 당연히 정반대입니다. 투표한 2만6500명 가운데 1만8736명(71.71%)가 박근혜를 지지했고 7014명(26.84%)이 문재인을 지지했습니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전남은 117만1210명 투표에 11만6296명(10.00%)만 박근혜 지지이고 103만8347명(89.28%)가 압도적으로 문재인 지지를 했습니다. 반면 경상남도는 200만8683명이 투표했는데 125만9174명(63.12%)이 박근혜를 지지했고 72만4896명(36.33%)이 문재인을 지지했습니다. 


전남의 구례군과 경남의 하동군도, 섬진강만 하나 사이에 있을 뿐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구례는 1만7833명 투표에 박근혜 지지 2230명(12.60%) 문재인 지지 1만5328명(86.65%)이지만 하동은 반대로 3만4056명 투표에 박근혜 지지 2만1848(65.28%) 문재인 지지 1만1193명(33.44%)입니다. 



한 번 스스로를 돌이켜 봅니다. 저는 한홍구가 <대한민국史-1>에서 말한 ‘운명의 우연성’에 대해 여태껏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태어날지 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태어나 보니 경남이고 전남이고 광주고 대구더라는 것이 사람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고 이웃이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에 새겨지는 역사도 달라지고 문화도 달라지고 감각과 감정도 달라지겠지요. 그렇게 해서 결국 말과 생각과 행동까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운명의 우연성으로 여기 있는 ‘나’는 경상도 사람이 되었고요, 저기 있는 ‘나’는 전라도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기를 쓰고 박근혜를 반대했던 전라도 할매할배들이 만약 경상도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지난 대선에서 기를 쓰고 박근혜를 지지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인 경상도 할매할배들이 만약 전라도에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전라도 할매할배들도 대부분은 경상도에 태어났더라면 뒤집어지면서도 박근혜를 지지했을 테고, 경상도 할매할배들도 대부분은 전라도에 태어났더라면 고꾸라지면서까지 박근혜를 반대했을 것입니다. 


한홍구가 <대한민국史-1> 159쪽에서 얘기했듯이 이것은 ‘운명의 우연성’에 좌우되는 정치 성향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경상도 할매할배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까닭도 없고 전라도 할매할배들에게 고마워하거나 미안할 이유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운명인 것을.(전라도든 경상도든 할매할배들이 어찌 보면 가엾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경상도든 전라도든 그 할매할배들 투표 성향은 거기서 본인들이 태어났기에 형성되었을 뿐인 것이고 이는 그이들 스스로도 어찌해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니까요.(물론 집단적·전체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이고, 개인개인을 따져보면 달리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속이 터져도 일흔 넘은 경상도 사람들 투표권을 박탈해야 한다든지 등등 되지도 않는 푸념들일랑 꿈에서도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운명을 운명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해서, 그 운명을 넘어서고자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까지 멈추어야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제 마음에서 경상도 할매할배들에 대한 미운 감정을 없애준 한홍구가 무척 고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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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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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답답해서 씁니다. 2017.01.11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진실을 대면하면 누구나 알게 됩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양 호도하여 지역에 전파시키고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자들에 의해 이 지경이 난 것을 그 지역에서 태어난 운명처럼 얘기하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