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밀양 월연대 예림서원을 아시나요?

김훤주 2015. 11. 7. 14:00
반응형

2015년 마지막 생태·역사기행은 가까운 밀양으로 향했습니다. 밀양은 산도 좋고 들판도 좋고 인물도 좋은 고장이지요. 자연과 인물이 어우러지니 그럴 듯한 문화유산은 절로인 듯 생겨난답니다. 


아침 8시 40분 창원 만남의 광장을 출발한 일행 발걸음이 처음 닿은 데는 월연대였습니다. 밀양강이 동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가지산에서 시작된 동천은 재약산에서 발원한 단장천을 쓸어담으며 몸집을 부풀린 다음, 월연대 앞에서는 밀양강 물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물과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언제나 흐름이 느린데요, 그래서 언저리에는 습지가 너르게 펼쳐지고 강물은 연못(淵)처럼 잔잔하기 마련입니다. 여기 이름 월연(月淵)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보름 밤이면 둥근 달 어리는 모습이 더없이 멋지다는 얘기입니다. 그것도 둘씩이나, 동천에 하나 밀양강에 하나. 



하지만 보름밤이 아니라도 월연대는 언제나 멋집니다. 조선 중기 이태라는 양반이 여기 별장을 짓고 살았습니다. 강가를 향해 튀어나온 바위가 낭떠러지를 이루는 형상입니다. 그 꼭지에 정자를 앉히고 이름을 월연정이라 일렀습니다. 


강물 따라 흐르는 아래쪽에는 묵을 집 두 채를 지었는데 하나가 쌍경당(雙鏡堂)입니다. 거울(鏡)은 강물에 비친 달을 이릅니다. 마루에 앉아 현판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눈길을 앞으로 돌렸더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바라보는 풍경이 건물 바깥에서도 그지없었는데 한 채 정자와 두 채 건물 자리에서 보니 그것이 더 멋졌습니다. 일행은 다들 따스한 햇살 아래서 조그마한 탄성을 자아냅니다. 


월연대는 건물과 풍경도 좋지만 나무도 멋진 친구가 많습니다. 정자 아래 평지와 언덕에 자리잡은 배롱나무는 이제 길고 화려했던 꽃을 떨구고 잎마저 떠나보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내온 연륜을 굵은 둥치로 드러내보입니다. 


또 한림이공대(翰林李公臺)라고 오목새김이 된 바위 너머에는 백송이 한 그루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주 드문 나무인데요, 껍질이 소나무답지 않게 거칠지 않으면서 흰 빛이 납니다. 바로 옆 은행나무도 멀리서 보니 그럴 듯하고 들머리에서부터 이어지는 오래 된 활엽수들도 사철 구분 없이 멋집니다. 


이어서 예림서원입니다. 밀양 출신으로 조선 시대 사림의 조종(祖宗)으로 일컬어지는 김종직을 모시는 서원입니다. 이름도 예쁘고 둘레 풍경도 처지지 않으며 경내 분위기 또한 퍽 소박하면서 단아합니다. 시간을 길게 들이지 않아도 전통 서원의 풍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정문 노릇을 하는 독서루를 지나면 오른편 열고각에는 목판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왼편에는 몽양재라는 건물이 있는데 '아이(蒙)를 기른다(養)'는 뜻에 비춰볼 때 당대 학생들 가운데 나이가 어린 축에 드는 이들이 묵었던 곳이지 않나 싶습니다. 


축대를 오르면 중심 공간입니다. 소나무와 산수유가 받쳐주는데, 동재는 돈선재고 서재는 직방재입니다. 착함(善)을 두텁게(敦) 하자는 뜻이고 곧고(直) 반듯하게(方) 살자는 뜻입니다. 진리는 먼 데 있지 않습니다.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김종직은 <소학(小學)>을 으뜸으로 삼아 읽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동재와 서재는 요즘으로 치자면 학생들 기숙사니까요, 이런 현판에 담긴 뜻은 그러니 요즘으로 치면 교훈 또는 급훈이 되겠습니다. 가운데 건물은 교실과 교무실을 겸합니다. 일신재(日新齋)와 시민재(時敏齋)는 옛날 선생님이 머물던 곳입니다. 


구영당(求盈堂)은 강당인데 지금으로 치면 교실쯤이 되겠지요. 구영은 모자람이나 이지러짐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것으로,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한테 충분히 가치로운 목표라 하겠습니다. 


강당 구석자리 옛적에 썼음직한 오래 된 예림서원 현판에까지 눈길을 던집니다. 그보다 위에 있는 사당 육덕사(育德祠)는 공개되지 않는 제사 공간이니 이쯤에서 발길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나오는 길에는 독서루 2층 누각에 올랐습니다. 아래위로 주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옛날 손님도 맞이하고 풍류도 즐기고 공부도 하고 하기에 걸맞은 공간입니다. 


여기는 그늘이 짙습니다. 잠깐 몇 마디 얘기 나눴을 뿐인데도 은근히 추워질 정도입니다. 그늘이라 그런 모양이지요. 바깥은 햇볕이 따사로운데도 그렇습니다. 가을 햇살 개햇살입니다. 


가까이 밥집 ‘흑담’에서 비빔밥을 맛나게 먹은 다음 호박소로 향했습니다. 호박소 단풍이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색깔을 달리하며 잎사귀가 물들어가는 모습이 은근히 괜찮습니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가까이서 보는 가을 나뭇잎은 그랬습니다. 



풍경 자체가 워낙 빼어난데다 산길이 산길답지 않게 가파르지 않고 무척 평탄한 편이어서 호박소 언저리 위쪽이나 또는 오천평바위까지 바람소리 물소리와 더불어 이리저리 거닐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호박소 둘레는 해마다 빠져 죽는 사람이 있는 바람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통제가 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위쪽이나 아래쪽도 골짜기와 바위가 못잖게 좋았습니다. 


그런 너럭바위에 올라앉아서 따뜻한 햇살 따라 볕바라기를 하노라면, 저절로 저기 나무처럼 단풍이 들 것만 같은 느낌까지 뭉개뭉개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1시간 30분 가량 노닌 일행은 마지막으로 얼음골옛길로 갔습니다. 



얼음골 들머리에서 동명복지회관까지 2.5km남짓한 길은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답니다. 자동차 소음 없이 사고 걱정 없이 사람이 활개치며 걸을 수 있는 한적한 길이 요즘은 썩 드뭅니다. 


가깝고 먼 주변 풍경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벚나무 가로수와 바로 옆 사과밭 여물어가는 빨간 열매도 받쳐줍니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걸으면 사각사각하는 느낌이 그 뽀송뽀송한 질감으로 척추를 타고 퍼져나가기까지 합니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지원하는, 2015년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마지막 루트로 그다지 손색이 있지는 않는 그럴 듯한 길이었습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