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북한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고 임금을 받지 않는다

기록하는 사람 2015. 9. 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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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개성공단 사람들(김진향 외 3명 지음, 내일을여는책, 279쪽, 1만 5000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실 북한에 대해 별 흥미가 없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져오는 세습정권이자 1인독재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탓이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뜬금없는 '통일 대박' 발언도 그렇고, 그 상대편에 있는 민족주의 통일론자들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성공단 사람들>을 읽은 건 순전히 친구 송성기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개성공단상회에 들러 셔츠와 속옷 등 몇 개를 샀는데,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그 후 한동안 방치해뒀던 책을 오늘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은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가 강승환 이용구 김세라 등 인터뷰어들과 함께 쓴 책이다. 김진향 교수는 북한과 통일 문제를 전공한 학자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5년간 대북정책을 수립, 집행했으며, 개성공단에서 4년간 대북협상을 담당했다고 한다.



책은 3개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파트 1은 김진향 교수가 쓴 '개성공단에 대한 기본 이해 : 오해와 진실'이라는 해설이고, 파트 2는 개성공단에서 직원 또는 주재원, 법인장 등으로 근무한 9명을 인터뷰한 것이다. 파트 3은 인터뷰어들의 방담과 김진향 교수가 개성공단 근무시절 에피소드를 일기체로 엮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그동안 북한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던가를 깨달았다. 나 또한 우리의 기준으로만 북한을 이해하려 해왔던 것이다.


나도 일선 기자 시절 당일치기로 개성공단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북한 노동자와 잠시 대화를 나눠볼 일이 있었는데, 자기네들 체제에 대한 확신과 우월감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만큼 개성공단에 차출된 노동자는 당성이나 사상이 확실히 검증된 이들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북한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들이 왜 그렇게 정신무장이 되어 있는지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가령 이런 것이다. 개성공단 기업의 한 법인장이 한 말이다.


"그들이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갖는 '독보회' 시간입니다. 독보회는 신문을 비롯한 교양자료를 전체가 함께 모여 읽으면서 국가정책과 시사문제 등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설해주는 모임이에요.


언젠가 급히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날도 아침 독보회를 하고 있어서 "지금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이 중요하지 않는가?"라고 큰소리를 쳤더니 오히려 저에게 면박을 주더군요. "지금 당의 지령을 받고 있는데 몰상식하게 무슨 말씀을 하는 거냐?'고. 그래서 "아, 그런가? 몰랐다. 일이 긴박하니 답답해서 그런 거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겠다" 하고 말았죠.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집단주의의 한 모습을 본 거죠."


5만 3000여 명에 달하는 북측 노동자들은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200여 대의 통근버스(5만 명)와 자전거(3000명)으로 개성에서 공단까지 출퇴근한다. 6시쯤 공단에 도착한 이들은 각 공장별로 6시 40분부터 식당에 모여 '독보회'라는 생활총화를 한다고 한다. 북측 간부가 신문이나 책을 읽어주거나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


또한 남측 법인장이나 주재원이라고 해서 북측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를 하지는 못한다. '직장장'이라는 북측 노동자 대표를 통해 업무 지시를 해야 한다. 그만큼 집단주의가 체화해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에 오는 북측 노동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개성시와 인근의 가용노동력 대부분이 개성공단에 근무한다. 특별히 타 지역에서 선발되어 오지 않는다. 개성공단의 가장 큰 문제는 만성적 노동력 부족이다. 즉 기업들이 요구하는 만큼의 근로자를 공급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장군님의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큰 뜻을 받들고 어려운 남측 중소기업들을 도우러 온 것"이라는 것이다.


북측 노동자와 남측 노동자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북측 근로자들은 기업-근로자 관계를 '고용-피고용' 관계로 설명하는 것에 당혹해 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돈으로 사람의 노동력을 산다는 고용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북측에서 개인 근로자들은 지역단위 인민위원회나 당이 지역 실정에 맞게, 개별 인민의 역량과 소질에 따라 기업소나 각종 기관, 사업소에 행정적 공적 차원에서 배치하는 것이다. 개인은 인민위원회와 당의 조치를 받들어 기업소에서 일할 뿐이다.


'임금을 주고 노동을 산다'는 자본주의 개념은 북측에서는 '돈으로 사람을 산다'는 불쾌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기업주들이 '임금을 주고 내가 고용한 사람'으로 북측 근로자를 인식, 간주하면 반드시 갈등관계에 빠진다."


그래서 한 남측 주재원의 이런 고백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직장과 직업, 노동의 개념이 우리하고 다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국가적 조치에 의해 직장에 배치받는 거니까요. 이것 외에도 회사는 원칙을 갖고 북측 근로자들을 대하려고 하지만 북측을 몰라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처음엔 우리 기준에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오해도 많았죠. 그런데 물질적 문제로 제가 화를 내면 그들은 쩨쩨하고 인색하고 괴팍하다고 생각하더군요. 심지어 '초코파이를 덜 줬다' 이런 것 때문에 쩨쩨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웃음)"


임금에 대한 개념도 우리와 다르다.


"임금의 대부분은 상품공급권으로 주어진다. 북측 근로자들의 임금은 자신들이 근로한 만큰 정확히 산정되어 달러 가치로 계산되며 매일 전체 근로시간에 대한 확인을 근로자들이 스스로 서명, 확인한다.


일반적으로 북측에서는 임금이라 하지 않고 생활비-노동보수(생활비와 가급금, 상금, 장려금 등으로 구성)라고 한다. 노동보수의 30%는 사회문화시책비(무상교육-무상의료 등의 소위 사회주의 국가시책운영기금)으로 공제하고 나머지 70%의 금액은 대부분 상품공급권으로 지급된다. 그 나머지만 북측 화폐(조선 원)로 지급된다.


상품공급권은 개성공단 근로자 대상 전용 상품공급소에서 쌀, 밀가루, 채소 등의 식료품과 생활용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상품공급소에서 교환되는 상품은 국정가격이라 장마당 가격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상품공급권은 대부분 먹거리와 기본적인 생활용품 구매로 사용한다. 기타 생활비는 집단주의가 강한 체제 특성상 각종 상호부조(생일, 잔치, 장례 등)나 추가 생필품 구입 등에 쓰인다."



2013년 개성공단이 6개월간 가동 중단되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북측 노동자들은 그냥 쉬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다시 만났을 때) 보니까 살이 빠지고 많이 꺼칠해졌더라고요. 마음고생 많이 해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하는데, 그동안 집단근로하느라 힘들어서 그랬을 거에요. 보통 특근 없는 주말에는 집단근로에 동원되는데 월요일에 보면 얼굴 살이 축나 있곤 했거든요."


이 정도만 해도 북한 사회가 어떤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또한 개성공단은 어떤 곳인지,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개성공단의 진실은 무엇인지, 통일 여정에 개성공단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해준다.


김진향 교수는 우리가 북한을 알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행복의 전제 조건인 평화를 위해서다. 평화와 안보는 국민생존권이 걸려 있는 절대국익의 영역이기에 이 문제를 둘러싼 사실관계들은 어느 영역보다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애초 계획대로 개성공단을 창원공단 규모의 거대 공단도시로 만들고, 이런 공단을 10개만 더 만들어 성공시킨다면 통일은 저절로 온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통일은 '통일비용'이 한 푼도 들지 않는 흑자통일이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 언론이 개성공단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기사를 무책임하게 써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기자들부터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그리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동남아 진출을 고민하는 기업가, 통일을 고민하는 운동가, 아니 평화를 바라는 모든 국민이 읽으면 좋겠다.


개성공단 사람들 - 10점
김진향 외 지음/내일을여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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