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도 그냥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 3·4·5·6월은 민주항쟁의 계절이다. 3·15의거, 4·3항쟁,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민주항쟁 등이 모두 이 계절에 일어났다.
지난 5월 16일 광주에서 '5·18 진실 왜곡과 언론의 역할'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가슴을 저몄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사진 한 장이 신문에 보도되고,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되면서 마산에서 시작된 항쟁이 4·19혁명으로 전국에 번질 수 있었다. 만일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학살하는 사진 다섯 장 정도만이라도 신문에 보도되었더라면, 과연 우리나라의 양심적 시민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 그게 광주만의 고립된 투쟁으로 끝났겠는가."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주완
그랬다. 당시 언론은 계엄군의 통제 아래 정부 발표를 받아쓰기만 했고, 광주시민은 '폭도'가 되었다. 1960년만큼이라도 언론이 살아 있었더라면 과연 그 무자비한 학살이 가능했을까.
1987년 6월항쟁 때도 그랬다. 6월 10일 마산종합운동장에서 대통령배 축구대회 한국-이집트 경기가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중단되자 3만 여 관중이 시위대와 합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유일한 지역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한(韓)·에(埃)축구경기 중단 / 차량방화 기물 파손' '마산서도 시위…시민반응 냉담'
1991년 10월 10일이었다. 나는 당시 진주전문대(현 한국국제대)에서 일어난 집단폭력 사건을 취재 중이었다. 이 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C동 101호 강의실에 대기 중이던 경상대 학생 30여 명을 진주전문대 학생들이 각목 등 무기로 무차별 폭행하고 감금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모든 방송과 신문은 경찰의 발표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180도 바꿔 보도했고, 피해자인 경상대 학생들은 '지리산결사대'라는 '빨치산과 일본 적군파를 모방한 극렬운동권의 소수 전위부대' 조직원으로 둔갑해 19명이 구속됐다. 이 또한 '취재' 없이 '받아쓰기'만 했던 결과였다.
2013년 4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 노조를 '강성 귀족노조'라 매도하면서 "1999년에는 노조가 원장을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거짓말을 반복했다. 언론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볼 생각은 않고, 그대로 '받아쓰기'만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오히려 원장이 주먹을 휘둘러 간호사 노조원들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홍 지사의 말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는 어땠나. 거기에도 '취재'는 없었고 '받아쓰기'만 있었다. 기자들은 '기레기'가 되었다.
2015년 5월 6일 종편 채널A는 세월호 추모집회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2008년과 2003년 사진을 세월호 집회 사진으로 둔갑시켜 내보냈다. '받아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사실을 '조작'까지 한 것이다. 만일 영국BBC가 이런 짓을 했다면 사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모두 물러나고 사법처리까지 받을 일이다.
한국언론은 60년, 80년, 87년을 겪어오면서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퇴행하고 타락했다. 언론인의 양심과 자정에 맡겨둬서 될 일이 아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의 93세 노인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 독립적인 언론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참여하는 일, … 그건 비단 정치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전투이다."
이제 시민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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