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조현오의 구겨진 제복

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기록하는 사람 2015. 5. 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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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까. 근거없는 비난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만 아니라면 이 블로그는 글쓰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편집자 김주완]



구겨진 제복 5화. 조현오, 전의경 구타 근절 어떻게 했나


조현오가 서울지방경찰청장에서 경찰청장으로 내정되어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시절, 한 전직 참모 증언이다.


당시는 양천경찰서 고문사건, 경찰 성과주의를 문제 삼은 채수창 서장 항명 파동,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 등으로 야당이 경찰 조직을 압박하던 때였다. 조직 안에서는 조현오가 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조현오가 대뜸 물었다.


"전의경 구타 사고는 왜 안 없어지는 거지?"


참모는 조현오가 그렇게 몰린 상황에서 전의경 구타 문제를 고민하는 게 놀라웠다.


조현오가 첫 보직인 부산금정경찰서 생활안전과장 일을 할 때부터 '전의경 가혹행위 금지'는 경찰청장 단골 지시 사항이었다.



전투경찰은 1961년 창설됐는데, 당시는 직업경찰이었다. 1971년부터 현역병으로 대체됐고 2013년 9월 폐지됐다. 의무경찰은 1982년 치안 업무를 보조하고자 만들었는데, 전경과 의경은 구분 없이 시위 진압에 동원됐다.


전경이 폐지되고 의경만 남으면서, 시위진압을 담당하는 부대로 직업 경찰관으로 바뀌고 있다. 

직업 경찰관을 100명 단위로 묶으면 경찰관 기동대가 된다. 기동대장은 경정이 맡는다. 전국에 경찰 부대는 51개 정도 운영한다.


의경 부대는 소대 3개를 묶어 중대 단위로 구성하는데 한 소대 인원이 30명 정도다.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방범순찰대를 포함해서 200여개 중대가 있는데 서울에서 운영하는 부대만 100개 정도 된다. 보통 중대장은 경감, 소대장은 경위가 맡는다. 경찰대 졸업자는 2년 동안 소대장을 맡는 것으로 병역을 해결한다.


소대장, 중대장 등은 지휘요원이다. 지휘요원은 평소 방범근무 때는 현장 상황을 점검한다. 집회나 시위가 벌어지면 진압을 지휘한다. 대기 상황일 때는 승진 공부에 매달리기도 한다.


숙소에서 대원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그런데 당시 대원관리를 부대 고참에게 맡기는 지휘요원이 많았다. 고참은 조직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조현오가 부산동부서 형사과장 때는 경찰서 내 한 의경이 목을 매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20년 동안 가혹행위 때문에 자살하는 전의경 소식은 항상 들렸다.


조현오는 사천경찰서장 시절 가혹행위를 막고자 서장 판공비를 들여 영어책을 샀다. 



경찰서 회의실에서 하루 한 시간씩 전의경을 모아놓고 영어 공부를 시켰다. 고참일수록 숙제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신참을 괴롭힐 시간이 줄었다.


2007년 조현오가 경비국장을 할 때는 '전의경근무 총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방청과 일선 경찰서에서는 현장 상황을 앞세우며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하기도 했다.


조현오는 경비국장을 거치고 부산과 경기, 서울에서 청장 자리에 올라서도 늘 지휘요원에게 부대 관리를 강조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관행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조현오는 인사권과 감찰권을 쥔 경찰청장에 오르면서 그 한계와 맞서기 시작한다.


2011년 1월 23일 강원도 307 전경대 부대원 6명이 집단 탈영한다.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조현오는 사건 발생 다음 날 강력한 조치를 단행했다.


"구타나 가혹행위가 구조적이고 고질적으로 이어져 온 부대는 해체하겠다."


강원도 307부대를 비롯해 가혹행위가 심한 부대는 모두 해체 수순을 밟았다. 2월 23일 <추적60분>은 이 같은 조치를 '보여주기 식', '무의미한 대책', '이벤트 성 홍보'라며 비판했다. 조현오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조현오는 조직이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한 충격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보내는 정형화 된 공문은 조직에 어떤 자극도 주지 못했다. '행정 처벌', '관리감독 강화', '적절한 징계' 같은 문구로 몇 페이지를 채운 공문은 조현오가 보기에는 그저 관행적인 것이었다.


전의경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주체는 경비부서였다. 하지만, 이 문제를 경비부서에 맡길 수는 없었다. 강원도 307부대 사건 다음 날, 조현오는 경찰청 감찰과장을 불러 감찰 직원을 전국 지방청에 풀라고 지시했다. 지방청 차원에서 은폐하고자 하는 시도를 미리 막으려는 조치였다. 조현오는 적절한 조치만 취하면 가혹행위는 발붙일 수 없다고 믿었다.


가혹행위는 입대 6개월 미만인 전의경에게 집중된다. 조현오는 6개월 미만 전의경 수천 명을 지방청 강당에 소집했다. 경찰청 감찰 직원은 가혹 행위 사례를 수집하며 현장에서 소원수리를 받았다. 가해자는 처벌할 것이며 피해자는 원하는 지역에 모두 보내겠다고 했다. 혼자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게 어색하다면 동기들과 묶어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전의경이 빠져나가 인원이 얼마 남지 않은 부대는 모두 해체 수순을 밟았다.


다음 조치는 복무점검단 구성이었다. 고참이 신참에게 일을 떠넘기지 못하게 한 만큼 이를 지휘요원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했다. 복무점검단은 관리요원이 부대를 제대로 관리하는지 파악하는 일을 했다. 전의경 관리에 소홀한 직원에게는 징계가 떨어졌다.


징계는 형사 처벌과 다른 행정 처벌이다. 견책, 감봉, 정직, 강등, 해임, 파면까지 6가지 종류가 있다. 징계는 행위책임 또는 감독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행위책임은 자기 잘못으로 벌어진 일인 만큼 후회, 반성, 모멸감이 상당하다. 전의경 가혹 행위 관련 징계는 대부분 감독책임이었다. 감독책임은 통상 행위책임보다는 처벌이 약했다. 그러나 조현오는 전의경 구타가혹행위와 관련된 감독책임을 행위책임과 동등한 수준으로 형량을 매겼고 심지어 책임이 무거운 경우 ‘형사입건’까지도 시켰다. 


사고를 은폐한 직원에게는 '파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징계를 받은 직원이 순식간에 170명을 넘어섰다.


경찰 조직에서 징계는 어떤 의미일까. 조현오가 차명계좌 발언 건으로 실형 8개월이 확정되자 이 보도를 접한 한 경찰관은 "이런 새끼는 더 살아야 해"라며 적의를 드러냈다. 



조현오에 대한 적의는 감독책임 징계에 대한 불만 위에 쌓인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전의경 감독책임 징계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씌우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당시 조현오는 모두에게 책임을 지울 기세였다. 가혹행위가 발생한 경찰서 서장은 직위해제였다. 직위해제는 우선 직무 수행을 못하도록 하는 조치로 대부분 직위해제는 바로 징계로 이어진다.


2011년 2월 인천남부경찰서 의경 한 명이 이메일로 'TV 시청을 못한다'는 민원을 조현오에게 보낸다. 조현오는 인천남부경찰서장을 바로 갈아치워버린다. 당시 곳곳에서 치안 총책임자를 파리 목숨 취급한다는 불만이 불거졌다.


조현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만큼 가혹행위 역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했다. 조현오는 학교폭력을 주목했다.


2010년 12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각목으로 구타한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 관련 학과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는 고질적인 악습이었다.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학생 상당수는 경찰관이 된다. 조현오는 수사국장에게 사건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학생 장래'를 거론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강경하고 단호했다.


“그런 폭력적 성향을 가진 학생은 경찰 조직에 필요 없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의경 지원율이 20대 1로 급상승했다. 최근에는 의경 합격을 청탁하는 전화를 받는 이도 있다고 한다. 조현오는 당연히 이런 변화에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자부심과 별개로 인사청탁은 조현오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다. 그는 경찰 생활을 하면서 의경 보직에 대한 청탁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인사청탁은 가혹행위만큼 뿌리 뽑아야 할 악습이었다.


2007년 경비국장으로 부임한 조현오는 의경 보직 배정 방법을 이렇게 지시했다.


“의경들 군번 돌려!”


경비국장 권한으로 의경 보직 청탁 정도는 간단하게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경찰 인사 청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청장은 통상 총경급 이상 고위직 인사권을 행사한다. 조현오는 조직 기강을 잡으려면 경찰청장이 인사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사가 외부 청탁에 휘둘리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어요? 윗사람에게 아첨은 기본이고, 외부 빽을 잡으려고 온갖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래서야 지휘권이 확립될 수 있겠어요?”


문제의식은 아주 타당하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조현오는 외부 인사 청탁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다음 6화- 인사청탁 경찰관 명단 공개 편은 5월 7일 업데이트됩니다.>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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