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은 진포대첩을 기억하지만 경남 남해는 관음포대첩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진포는 군산의 옛 이름입니다. 진포대첩은 1380년 6월에 일어났습니다. 왜구들이 군산항 어귀에 몰려들어 타고온 배를 두고 뭍에 올라 약탈·살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500척이 넘었다고 하지요. 그 배들을 최무선 등이 화포로 모조리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물 위에서 벌어진 대부분 전투가 그렇듯, 군산에도 당시 자취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군산시는 군산항에다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군산항에 있습니다.

 

그러고는 끄트머리에다 "함선에서 화포를 사용한 세계 최초 전투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해상 전투로서, 해전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고 적어두고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 문장으로는 "It was the first sea battle in the history of the world in which cannons were used."라 새겼습니다.

 

 

안내판 부분입니다.

관음포는 남해 옛적 읍치인 고현면 앞바다를 이릅니다. 임진왜란 막바지에 이순신 장군이 치른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으로 이름난 곳입니다. 이순신은 여기거 왜적을 대파했는데, 아깝게도 하늘은 그이 목숨까지 거둬 갔습니다.

 

관음포는 이순신 장군 승전 200년 전에도 고려 수군이 왜구를 쳐부순 승전지였습니다. 1383년 관음포 앞바다는 당시 해도원수 정지 장군이 함선 17척을 깨뜨리면서 숨진 왜구 2500명의 시체로 뒤덮였습니다.

 

남해와 서해 바다에서 왜구가 본격 설치기 시작한 때는 1350년인데요, 당시 관음포대첩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남해 백성들은 정지 장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석탑을 만들었습니다.

 

큼지막한 자연석 위에 크지 않은 몸돌과 지붕돌 5개씩을 번갈아 쌓아 올렸습니다. 부처님을 대신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승전 기념물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역사입니다.

 

남해에는 이처럼 아무 자취도 없는 군산과 달리 750년이 넘은 기념물까지 번듯하게 남아 있는데도 관음포대첩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고현면 탑동마을 정지석탑이 있는 데를 가면 아주 간략한 기록만 있을 뿐 관음포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밝혀놓고 있지 않습니다.(정지석탑에 담긴 역사·문화적 의미도 상당하다고 보지만, 여기서 그것까지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정지석탑.

화포를 사용한 세계 최초 해전은 군산 진포대첩이 아니라 관음포대첩입니다. 이는 여태 역사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입니다. 이를테면 남해나 경남 지역 연사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일방적 주장이 아닙니다.

 

진포에서 고려 수군이 함포로 공격한 대상은 항구에 정박해 있던 왜구의 배들이었습니다. 타고 온 왜구들이 뭍으로 분탕질 떠나는 바람에 배는 대부분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포대첩은 "함선에서 화포를 사용한 세계 최초"는 될지라도 "세계 역사상 화포가 사용된 최초 해전(the first sea battle in the history of the world in which cannons were used)"은 될 수 없었습니다.

 

관음포대첩은 달랐습니다. 정지 장군은 정박해 있는 배들을 때려부수려고 함포를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마다 200명씩이 타고 있던 왜구 해적선을 함포로 공격해 열일곱 척을 가라앉혔습니다. 명실상부한 해전(sea battle)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진포대첩은 전술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전투였습니다. 나중에 조선 왕조를 창건하는 이성계는 진포대첩이 일어난 한 달 뒤 황산대첩의 주인공이 됩니다. 황산대첩의 전장은 지금 전북 남원 운봉 일대였습니다.

 

뭍에 올라 약탈하던 왜구들은 진포대첩으로 타고 온 배가 모조리 불타버리면서 퇴로가 끊어졌습니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이들은 가는 곳마다 약탈과 살육을 저지르며 내륙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에 고려 왕조가 이성계 장군 등등을 내려보내 내륙에서 왜구를 물리쳤는데 바로 황산대첩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진포대첩에서 머리를 좀더 써서 몇 십 척이라도 배를 왜구들한테 남겨뒀다면 고려 백성들 피해를 좀더 많이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얘기입니다.

 

남해는 당시 자취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도 아주 뜻깊은 과거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반면 군산은 이렇듯 당시 자취가 전혀 없는데도 일부러 부풀려 가면서 과거 역사를 기억합니다.

 

같은 경남에 사는 저로서는 퍽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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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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