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장학재단 할 일이 장학금 지급뿐일까?

김훤주 2015. 1. 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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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장학회를 운영하는 한 인사에게서 며칠 전 들은 얘기입니다. "올해 10년째인데 갈수록 힘이 빠져요. 기금 내시는 분들도 썩 내켜하지 않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이러셨습니다. "요즘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잖아요. 고등학교도 시골서는 거의 돈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60만원 안팎 줘봐야 말만 장학금이지 그냥 용돈일 뿐이니까요."

 

의무교육 확대로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줄었다 했습니다. 지역에서 어지간히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집안이 대부분 먹고살만해 장학금이 아쉬운 실정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여러 명목으로 주어지는 장학금이 적지 않아 중복도 잦다고 했습니다.

 

좋은 생각으로 장학회를 만들고 뜻있는 이들로부터 돈을 모아 장학금을 주는데 그 돈이 장학보다는 아이들 일상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쓰이니 맥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장학금 지급이 전혀 쓸모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런 장학금이 옛날에는 효과도 보람도 있었지만 지금도 과연 그럴까요. 소득수준이 많이 오르면서 크게 보면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시대는 이미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육하고 공부하는 목표가 좋은 시험 성적이 아니라 바람직한 인격 구현이라는 데 생각이 이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둘러봐도 장학사업이 장학금을 주는 데서 벗어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문제의식을 달리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여러 장학사업을 펼치는 것입니다.

 

전국 규모 장학재단들을 보면 견문을 넓히고 세상물정도 익히라는 취지로 여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환원하도록 봉사 프로그램을 내놓은 데도 있습니다. 또 학생한테 혜택을 주는 데서 나아가 그 멘토나 선생님의 자질·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도 있습니다.

 

남해 고현면 탑동마을 정지석탑. 고려 말기 관음포 앞바다에서 정지 장군이 왜구를 크게 무찌른 데 대해 고맙다는 뜻을 담아 지역 주민들이 세운 석탑. 남해 사람들도 이런 내력을 잘 모릅니다.

 

물론 지역 장학재단(장학회)이 전국 규모 장학재단을 따라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 또는 문제의식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역 교육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유학가는 아이가 적어서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적어서 문제인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나고 자란 고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부모형제나 이웃·친지가 작으나마 그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많은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도 학원도 수능시험에 집중하느라 지역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고성군 마암면 석마. 암말입니다. 농경문화 한가운데 있는 북방 기마문화 자취입니다.

 

이러니 아이들은 자기 고장을 '별것 없다'며 비하·무시하기 일쑤입니다. 군 단위 지역은 아이들 대부분이 늦어도 고등학교를 마치면 바깥으로 나가는데, 돌아오는 경우는 좀처럼 드뭅니다.

 

이런 장학사업은 어떨까요? 자기 고장 역사·문화·생태·인물을 체험·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지역 모든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군 단위 지역은 초등학교가 한 학년이 400명을 넘는 경우가 드물고 고등학교는 한 학년이 800명이 되기 어렵습니다.

 

거창 정장리 최남식 가옥. 지역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했던 최남식 어른이 오래 전에 지은 네덜란드풍 건물입니다. 거창 시민사회 역량이 남달리 탄탄한 데 대한 설명을 해주는 건물입니다.

 

따라서 한 해에 40인승 버스로 열 차례만 해도 족합니다. 특정 학년(이를테면 초등학교 5학년)을 정해 해마다 돌리면 됩니다. 특정 개인 몇몇이 아닌 지역 아이 모두를 장학 대상으로 삼는 보람도 누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하는 데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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