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최치원이 귀 씻고 지리산 신선이 된 자리

김훤주 2014. 8.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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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저녁 창원교통방송에서 했던 방송 원고입니다. 고운 최치원 전설이 어려 있는 지리산 골짜기 소개입니다.


8월 둘째 주말은 전설이 함께하는 지리산 골짜기로 여러분을 모셔볼까 합니다. 신라 시대 이름을 떨쳤던 고운 최치원 관련입니다. 최치원은 우리 경남 여러 곳에 자취를 남기고 있는데요, 가까운 마산의 월영대도 고운 선생이 노닌 자리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함양에는 당신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인공숲을 조성했는데, 바로 상림입니다. 또 가야산에도 머문 적이 있는데요, 최치원의 형이 가야산 해인사에 스님으로 있었습니다. 홍류동 골짜기 농산정에 가면 최치원이 읊었다는 한시가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지리산 골짜기에도 고운 관련 유물·유적이 많습니다. 먼저 쌍계사 들머리 한자로 바위에다 새긴 쌍계(雙溪) 석문(石門) 넉 자가 최치원의 솜씨라 하고요, 경내에 있는 진감선사대공영탑비 비문은 최치원이 지은 것입니다. 불일폭포 가는 길에도 최치원이 두루미를 불러서 타고 날아갔다는 전설이 서린 환학대도 있습니다.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어쨌거나 오늘 소개하려는 데는 세이암인데요, 쌍계사 들머리에서 아자방으로 이름난 칠불사 쪽으로 4km정도 거슬러 오르면 시냇가에 있습니다. 의신마을에서 내려오는 화개천이 여기서 너럭바위를 만나 넘쳐흐릅니다.

 

이 너럭바위에 한자로 세이암, 씻을 세(洗) 귀 이(耳) 바위 암(嵓)이라 적혀 있습니다. 귀를 씻은 바위라는 뜻이지요. 물론 바로 옆 바위와 맞은편 세워져 있는 바위에도 이런저런 글자들이 새겨져 있지만 모두 최치원 글씨가 아닙니다.

 

오른편에 洗 耳 岩(글자는 다릅니다)이라 쓰여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손가락으로 세이암 석 자를 바위에다 새겼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력이 세었다는 것입니다. 최치원이 여기서 귀를 씻은 뜻은, 속세와 인연을 끊겠다는 데에 있습니다. 세상 속세에서 더럽고 어지러운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물이 많은 뿐만 아니라 맑기까지 합니다. 물이 풍성한 덕분에 물고기가 유난히 많습니다. 산골짜기답지 않게 사람 손 하나보다 더 큰 물고기도 참 많은데요, 반면에 게는 전혀 없다고 합니다. 바위도 많고 조그만 돌들도 많아 게들이 즐겨 살만한데도 게가 없는 까닭은 역시 최치원에게 있습니다.

 

왼편 너럭바위가 세이암입니다.

여기서 최치원이 몸을 씻고 있는데 그 발가락을 게가 물었습니다. 최치원은 게를 잡아 멀리 던지며 “다시는 여기서 사람을 물지 말라”고 했더니 그 뒤로 사람을 무는 게가 사라졌다는 전설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물에 몸을 담그고 맞은편을 바라보면 언덕배기에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범왕리 푸조나무입니다.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 앞에 있는데요 이 나무에도 최치원과 관련된 전설이 있습니다.

 

최치원이 여기서 귀를 씻고 세이암 글자를 새긴 다음 지리산 신흥사로 들어갈 때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 자란 나무가 바로 이 푸조나무입니다. 고운 최치원은 이렇게 입산을 하면서,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 있고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고 없을 것이라 했답니다.

 

푸조나무는 여태 죽지 않고 살아서 세월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운 또한 신선이 되어 지리산 골짜기 어디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지리산 골짜기에 들렀다면 그냥 세이암에 발만 담그고 바로 가기는 어째 좀 아쉽고 아깝습니다.

 

드나들면서 쌍계사나 칠불사에도 한 번 걸음하면 좋겠습니다. 쌍계사도 칠불사도 매우 유명하지만, 그래도 쌍계사에 가시면 대웅전 오른편 옆 자리에 놓인 마애불상은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무척 맑고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한테 보여주면서 한 번 쓰다듬어 보라고 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마애불과 더불어, 쌍계사 대웅전 둘레 투박한 꽃담장도 볼만합니다.

칠불사는, 김해 가락국 김수로왕와 허황옥의 일곱 아들이 출가한 절간으로 그와 관련된 아자방이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눈에 담을 수 있지는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칠불사에 가시면 영지 둘레를 한 번 거닐어 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한자로 그림자 영(影) 못 지(池)를 써서 그림자 연못이 되는데요, 출가한 일곱 왕자가 보고 싶어서 수로왕 일행이 찾아 왔지만, 자식들이 다들 용맹정진 중인지라 만나보지 못하고, 여기 연못에 비친 왕자들 그림자만 보고는 돌아섰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나무그늘이 좋고 아늑한 분위기도 그럴 듯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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