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고운 최치원은 어느 산 산신일까?

김훤주 2014. 7. 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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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지었다는 한시가 있습니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습니다. 제목이 秋夜雨中(추야우중)이랍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비 내리는 가을밤에’쯤이 되겠습니다.

 

내용 가운데 ‘만리(萬里)’를 두고 당나라 유학 시절 지은 표시라고도 하고, 전체적인 기교나 내용을 보고 귀국해서 나이를 많이 먹은 뒤에 지었다고도 하지만 어쨌거나 상관은 없겠습니다.

 

“가을 바람에 외롭게 읊으니(秋風惟孤吟)/ 세상에 알아주는 이가 적구나(世路少知音)/ 한밤중 창밖에 비가 내리고(窓外三更雨)/ 등불 앞 마음을 만리를 달려가네(燈前萬里心)”.

 

자기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는 데서 오는 쓸쓸함이랄까 씁쓸함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던 모양입니다. <삼국사기>의 이런 대목은 한시 ‘추야우중’의 정서와 바로 통합니다.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하동 쌍계사 들머리 쌍계 석문.

 

“치원이 서쪽으로 가서 당나라에 벼슬하다가 동쪽 고국으로 돌아오니, 모두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운수가 막혀 움직이면 문득 허물을 얻게 되었으므로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며, 다시 벼슬할 뜻을 품지 않았다. 마음대로 유유히 생활하며, 산림 아래와 강과 바닷가에 누각과 정자를 짓고 소나무와 대를 심고 책 속에 파묻혀 풍월을 읊었다.”

 

이어서 그이가 노닌 데가 나옵니다. 경주 남산, 강주 빙산(剛州氷山=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동), 합주(경남 합천)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현(창원의 옛 마산 바닷가)의 별서(別墅).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 원래는 최치원이 지리산 들어가기 전에 꽂았던 지팡이였다 합니다.

 

그런 다음에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가장 나중에는 가족을 거느리고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살았는데, 동복 형인 중 현종 그리고 정현 스님과 도우를 맺어 쉬고 한가히 지내면서 노년을 마쳤다”고 했습니다.(그래서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 보자면 최치원은 지리산보다 가야산과 더 가깝습니다.)

 

이런 최치원이 신선이 됐다는 장소로 주로 두 곳이 꼽힙니다. 지리산 쌍계사와 가야산 해인사랍니다. 합천 해인사 학사대(陜川 海印寺 學士臺) 전나무(천연기념물 제541호)는 장경판전 옆에 있습니다.

 

학사대 전나무.

 

최치원이 해인사 대적광전 옆에 지었다는 정자가 바로 학사대입니다. 최치원이 여기에다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와 전나무가 됐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가야산 해인사 홍류동 골짜기에는 농산정(籠山亭)도 있는데 일대를 두고 최치원이 지은 한시가 있습니다.

 

“첩첩 바위 사이 미친 듯 내달려 겹겹 쌓인 산을 울리니(狂奔疊石吼重巒)/ 지척 사람 말조차 구분하기 어려워라(人語難分咫尺間)/ 시비 소리 귀 닿을까 늘 두려워(常恐是非聲到耳)/ 흐르는 물로 산을 통째 두르고 말았다네(高敎流水盡籠山)”.

 

농산정. 최치원이 여기서 세상을 등졌다는 빗돌도 있습니다.

 

농산정.

 

고운이 여기에 갓과 신발을 벗어두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하지요. 게다가 해인사에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표현한 고운영정(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북 청도 각남면 일곡리 경주 최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해인사 나한상 가운데 섞여 있었는데 일본군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옮겨놓았다고 한합니다. 이쯤 되면 가야산과 해인사도 지리산과 쌍계사 못지 않게 고운 최치원의 입산처라 해도 될 만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고운 영정.

거기서 신선이 됐다는 얘기까지는 아니지만 고운 최치원과 관련된 얘기가 있는 장소는 이밖에도 아주 많습니다. 부산 해운대와 마산 월영대는 다시 말할 것도 없고 대충 주워 삼켜도 경남 합천 자필암, 경남 양산 임경대·경파대 경북 문경 야유암, 경북 봉화 치원봉·고운대 등이 있습니다.

 

김훤주

 

※ 2012년 출판된 문화재청 비매품 단행본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경상권>에 실은 글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지리산 자락 어우러지는 최치원 신선길(http://2kim.idomin.com/2632)'과 함께 읽으시면 이해하시기가 좀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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