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루트

 

보현산천문대·천수누림길 → 8.6km 정각별빛마을 →6.5km 옥간정·모고헌 → 3.8km 자천교회 → 1.2km 오리장림 → 7.6km 귀애정·귀애고택 → 1.4km 별별미술마을(귀호리와 화산리는 붙어 있으나 가상리는 5.1km 떨어져 있음)(가상리까지) → (바로 붙어 있음)시안미술관 → 15.1km 임고서원

 

별뿐 아니라 풍경까지 멋진 보현산천문대

 

별을 잘 볼 수 있는 곳은 지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들 사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인공의 빛에서 멀어질수록 별빛은 영롱하답니다. 해발 1124m 보현산 꼭대기에 최첨단 천문대가 있는 까닭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입니다. 보현산은 비는 적게 내리는 반면 일조량은 풍부한 지역으로, 1만원 지폐 뒷면에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이 도안으로 들어 있을 만큼 유명합니다. 천문대 가는 길은 꾸불꾸불 산길을 따라 이어지지만 산길답지 않게 말끔했습니다.

 

 

보현산천문대 관측 시설은 아이는 물론 일반인도 아닌 천문학자에게만 전문 천체 관측용으로 쓰입니다. 딱 한 해에 한 차례 일반 야간 개장(14:00~23:00)을 하는데요, 영천시가 하는 ‘영천보현산별빛축제’의 하나로 진행되기에 영천시 홈페이지(http://www.yc.go.kr)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답니다.

 

보현산천문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그렇지만 별은 아무래도 어른뿐 아니라 아이에게 많은 환상을 심어줍니다. 그래서인지 일반인 어른 아이를 위해서는 보현산천문대 바로 아래 방문자 센터와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4·5·6·9·10월 넷째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동안 일반인을 위한 주간 공개 행사가 열립니다.

 

 

보현산 정상에는 천문대만 있지는 않습니다. 그림 같은 풍경도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 서면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눈앞에 떠다닙니다. 아래로 아득하게 펼쳐지는 마을 풍경은 고요하답니다.

 

보현산 능선 자락에서 시작되는 천수누림길은 천수를 누리고자 하는 염원은 담아 만든 길이라 합니다. 이밖에도 구들장길, 태양길, 보현산댐길, 황계구곡길 등 보현산 천문대를 중심으로 하는 길이 네 개 더 만들어져 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나름 지역 특색을 살려 지은 길은 이름마다 색다른 뜻이 담겨 있습니다. 보현산의 맑은 공기와 숲 내음을 코로 들이키며 동자꽃·은초롱꽃·현호색 등 철마다 피어나는 야생화를 볼 수 있습니다.

 

‘별빛마을’로 브랜드를 잡은 정각리

 

정각리에서 정각(正覺)은 바르게 깨달음이라는 뜻이랍니다. 보현산 남쪽 산골로 보현산천문대 마을이라 알려져 있지만 마을 이름에 걸맞게 석탑과 절골 등 불교 관련 유적과 지명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마을 절골 안쪽 언덕배기 들판 한가운데 영천정각리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도 있습니다. 근처 자양면 보현리 탑전마을에서 스님 한 명이 밤에 칡넝쿨로 매어 옮겼다는데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합니다.

 

 

밭으로 쓰이는 자그마한 터에 서 있는 탑은 2층 기단(基壇)에 3층 탑신(塔身)을 올렸습니다. 볕이 잘 드는 자리인 듯하고 사방으로 트인 전망이 좋아 예사롭지 않은 터전으로 여겨집니다.

 

보현산 천문과학관도 있습니다. 5D-동영상관, 천체만원경 천체 관측, 멀티미디어 활용 천문교육 같은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어 어린이 등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답니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청소년·어린이 2000원이며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 1월 1일과 추석·설 연휴는 쉽니다.

 

 

별빛마을에서는 지나가는 길에 들러 간단히 음식도 사 먹을 수 있고 하룻밤 묵으면서 다리품도 쉴 수 있습니다. 천문대와 연관 지어 ‘별빛마을’을 브랜드로 삼아 별빛 축제도 열고 저농약 쌀과 사과·미나리 등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도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며 누리는 옥간정·모고헌과 오리장림, 자천교회

 

옥간정과 모고헌은 형제와 같은 존재랍니다. 실제 정만양·규양 형제가 왕래하며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으로 우애도 다진 곳으로 유명합니다. 옥간정(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0호)은 영의정 조현명, 형조참의 정중기, 승지 정간을 비롯해 인물을 많이 배출했답니다.

 

길 가다 만난 일소. 주인 어른은 소가 이제 써레질처럼 어려운 일은 못한다고 하십니다.

 

원래는 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맞아 서당으로만 남았습니다. 향나무가 안마당에 있는데 이를 일러 자단치경(紫檀稚莖)이라 했습니다. 보라빛 박달나무 어린 줄기라는 뜻입니다. 제향은 하지 않고 교육만 남았던 셈입니다.

 

도로 쪽에서 본 모습. 개울 쪽에서 본 모습.

 

모고헌 아래 개울.

 

물 좋은 골짜기에 정자가 있기 마련이듯 여름이면 옥간정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이 시원하고요, 가을이면 계곡으로 펼쳐지는 단풍이 빼어나답니다. 보통 정자와는 달리 가운데 작은 방이 있고 둘레로 작은 마루가 놓였는데 이런 독특한 평면 구성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아 더욱 돋보입니다.

 

옥간정 가운데 방 아궁이와 빙 둘러친 툇마루와 난간.

 

옥간정 바로 옆에 모고헌(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이 있는데 4면에 툇간을 뒀으며 같은 울타리 안에 횡계서원을 품었습니다. 누리는 풍경의 아름다움은 모고헌도 옥간정 못지 않습니다.

 

모고헌 안 향나무(왼쪽)와 횡계서원.

 

영천자천교회(문화재자료 452)는 경북에 유일한 한옥 교회당이랍니다. 1903년 4월 권혁중이라는 지역 인물이 설립했는데 자천교회는 겉모습도 이름나 있습니다만 내부 구조·구성이 실은 더 눈여겨 볼만하다고 합니다.

 

 

내부는 두 채를 붙인 겹집 형태인데 늘어선 기둥(列柱)이 공간을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늘어선 기둥 사이를 남·녀석으로 구분하기 위해 칸막이로 가른 데 비춰 기둥 쓰임새가 넉넉하게 짐작됩니다. 예배를 볼 때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데 쓰였던 것이지요.

 

 

 

앞쪽은 중앙 열주를 멈춰 넓게 하고, 양쪽 기둥을 세워 예배석을 향한 시선을 막지 않음과 동시에 강단과 예배석을 나누는 구조입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이 엄연한 현실이던 개신교 선교 초기의 시대 상황과 건축 양식, 교회 건축의 토착화 과정이 반영돼 있습니다.

 

문득 찾아가면 교회 내부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천교회가 늘 열어놓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거든요. 그러니 미리 연락을 하고 가는 편이 낫습니다. 자천교회 전화 054-337-2775.

 

자천교회 바로 옆 천주교 자천공소.

 

오리장림(천연기념물 제404호)은 화북면 자천리에서 오동리까지 2km에 걸쳐 길게 이뤄져 있는 마을숲이랍니다. 아시는대로 오리는 2km고요, 장림(長林)은 긴 숲입니다. 1500년대에 마을의 바람막이, 제방 보호와 홍수 방지를 위해 주민들이 꾸몄습니다.

 

150살이 넘은 왕버들·굴참나무 등 12가지 282그루가 자연 그대로 시원함을 빚어냅니다. 200년 전부터는 주민들이 이 숲을 위해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자정에 제사를 지냈으며 봄에 잎이 무성하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가운데로 도로가 나면서 숲이 좌우로 나뉘었고 학교 설립, 도로 확장, 1959년 사라호 태풍 등으로 많이 사라졌습니다.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숲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자취를 느낄 수 있답니다.

 

별별미술마을 1 - 귀애정의 귀호리, 그리고 화산리

 

영천 귀애정(문화재자료 제339호)은 공조참의를 지낸 귀애(龜厓) 조극승(1803~1877)을 추모하기 위해 동생 성재 조규승이 지은 정자라 합니다. 귀애정에 들어서니 마음이 확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담장을 두르지 않은 건너편에 길이 나앉아 있고 그 너머에 들이 또 퍼질러 있었습니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와 구분 없음이 만들어내는 자유로움인 것 같은데요, 아무데서나 흔하게 느껴볼 수는 없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귀애정 들머리.

 

 

그 앞에는 귀애고택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안에는 연꽃이 활짝 피는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섬을 만든 다음 육각정자와 돌거북을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육각정자가 귀애정과 통하도록 함으로써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말았습니다.

 

 

이 또한 누구의 소유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경계 없음이 만들어내는 미덕이라 하겠습니다. 정자는 장대석 기단 위에 두 칸 온돌방, 한 칸 마루방, 한 칸 온돌방을 기본 구성으로 한 다음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설치했으며 누마루는 툭 튀어나오게 만들어 운치를 한껏 높였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개가 한 마리 놓여 있습니다.

 

귀애정이 있는 화남면 귀호리와 그에 붙은 화산면 화산리는 별별미술마을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귀애정에도 미술 작품이 몇몇 설치된 모양입니다. 하늘에 별을 다는지 아니면 따는지 모르겠는 아이 모습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 또한 세월이 지나면 문화재 반열에 끼이려나 모르겠습니다만.

 

화산2리 버스 정류장. 화산리 마을 벽화.

별별미술마을 2 - 가상리와 시안미술관

 

같은 별별미술마을 범주에 들어가는데도 화산면 가상리는 좀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별별미술마을은 가상리에서만큼은 작품이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술작품은 대체로 특정 공간에 가둬져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편하게 세상 밖으로 끌어내놓았습니다.

 

왼쪽은 바로 저랍니다.

 

그래서 ‘지붕 없은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네요. 미술에 대한 지식이 특별하게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동네입니다. 그래서 가상리 별별미술마을은 즐겁고 또 유쾌합니다. 미술 마을이라 해서 미술 작품만 있는 것은 더욱 아니랍니다.

 

가상리에 있는 우리 동네 박물관.

 

박물관 내부. 박물관 내부.

 

앞산 뒤산과 들에 실개천이 흐르는 농촌인 여기에는 재실과 정자·서원도 있는데요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옛날 정미소 우물, 정류장, 토성, 빈집, 폐가 등 옛 모습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쏠쏠하답니다.

 

 

가상리에 있는 쾌우정.

 

'행복을 찾아가는 다섯 갈래 길'에는 작가 50명의 작품들도 있습니다. 걷는길(자연상태 미술조각공원 9점) 바람길(찾아다니며 감상하는 거대한 동네미술관 9점) 스무골길 (비보풍수와 예술의 만남 9점) 귀호마을길(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예술 9점) 도화원길(복숭아 향기를 따라 걷는길 9점)이 그것입니다.

 

 

탱자나무도 좋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복마을만들기 프로젝트-신몽유도원도’를 통해 일상생활 공간을 공공미술로 가꿔 놓았습니다. 특히 마을 앞 버스 정류장이 잘 꾸며져 있는데 매우 눈길을 끈답니다.

 

가상리 버스 정류장.

 

가상리 별별미술마을 옆에 시안(CYAN) 미술관이 있습니다. ‘시안’이 무슨 뜻이냐고 미술관에 물었더니 “그냥 편(安)하게 보시라(視)”는 뜻이랍니다. 원래는 폐교였는데 고풍스런 유럽식으로 새로 꾸며졌고 내부는 공간 자체를 작품처럼 만들었더군요. 

 

 

2005년 한국여행작가협회가 ‘폐교를 활용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선정했는데요 TV 드라마 촬영이나 가수들 앨범 촬영에도 많이 간택된답니다. 수도권 비수도권 구분 없이 여러 작가들의 파격적이거나 수준 높은 작품들로 언제 찾아도 서운하게는 하지 않는다 합니다.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 날) 쉬고 추석·설 등은 쉬는지 여부를 따로 알리며 관람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어린이 2000원이지만 전시 내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전화 054-338-9391~3.

 

살아 쓰러졌어도 죽어서는 별이 된 포은 정몽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힌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이방원 하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정몽주 단심가)

 

정몽주의 단심가가 그 어머니가 지었다는 백로가와 함께 임고서원 앞 빗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학창시절 공부는 못했어도 이 시조만큼은 외우지 못한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별 찾아 떠나는 경북 영천 문화유산 여행길’의 마지막은 임고서원(臨皐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입니다. 죽어서 우리 역사에 별이 된, 단심가의 주인공 포은 정몽주를 기리고 있습지요.

 

 

임고서원 소장 전적은 보물 제1109호로, 포은 정몽주 영정은 보물 제111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여진족 토벌과 왜구 정벌에도 공을 세웠고, 외교관으로도 능력을 발휘했으며, 성균관에서 경서를 강의한 선생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로 일컬어졌던 이가 정몽주라 합니다.

 

 

위기에 빠진 고려를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맞서 절의를 세운 포은은 고향이 바로 여기 영천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천 사람들이 임고서원을 들이세웠고 서원은 소실과 중건·정화를 거치면서도 지금처럼 남았습니다. 서원 앞에는 500년 가량 묵은 은행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껴안은 채 서 있습니다.

 

 

 

살아서는 그이를 쓰러뜨린 사람이 권세와 영화를 누렸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이렇게 처지가 뒤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포은을 따라 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노릇이겠지요.

 

 

김훤주

 

※ 2012년 출판된 문화재청 비매품 단행본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경상권>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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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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