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경찰이 실패 뻔한 강제진압 강행한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08. 6. 2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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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9일 마침내 경찰이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대한 무차별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전국의 전의경을 다 모아도 수만 명에 불과한 경찰이 10만 명의 시위대를 강제진압하겠다는 건 애초부터 무모한 일이었다.

실제 이날 경찰이 강제진압을 위해 시위대 속으로 투입한 경찰도 기껏해야 200~300여 명이었다. 자칫 시위대가 과격했더라면 영락없이 고립될 수도 있었다. 실제 일부 경찰은 시위대에 고립되기도 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길을 터주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경찰 지휘부는 그들 전경을 사지로 내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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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찰이 인도에 서있던 시민들에게까지 물대포를 쏘고 있다. /김주완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 작전은 수많은 부상자만 남긴 채 완전 실패했다. 시위대는 전혀 진압되지 않았고 새벽까지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런 결과를 모를 리 없는 경찰 지휘부가 왜 소수의 경찰력으로 무리한 진압을 시도했을까? 내가 볼 땐 제물로 내몬 전경들이 시민들에게 폭행당해 다치길 바랬던 것 같다. 그래야 시민들의 폭력성을 부각시킬 수 있고, 비폭력을 외치는 다수 시민들과 분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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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수단으로 헬멧을 미리 준비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경찰의 이런 의도는 절반은 실패했고, 절반은 성공한 것 같다. 시민들이 훨씬 많이 다쳤지만, 전의경 중에서도 다친 이들이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29일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29일 "초기의 평화적인 의사표현, 문화제적 성격이 가미된 '촛불집회'와는 이미 너무 많이 성격이 달라졌다"며 "소수에 의해 불법·폭력 시위가 되고 있는 것과 관련, 이미 국민들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강변했다고 한다.

이런 경찰의 무모한 진압작전이 시위대와 전면적인 무력충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이 자위수단을 갖출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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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경찰의 강경대응 기조가 언론에 보도된 27일부터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헬멧과 비옷, 마스크, 장난감 물총 등 자위수단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28일 밤~29일 새벽 쇳조각과 돌을 던지고,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경찰의 공세에 시민의 이런 자위수단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시위대의 도발도 없진 않았다. 28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시청 광장쪽으로 진입하던 경찰 살수차를 시민들이 가로막아 타이어의 공기를 빼고, 밸브를 열어 살수차 안의 물을 뺐다.

또 오후 8시50분쯤 한국언론재단 앞 경찰 저지선에 시민들의 행진대열이 다다르자 마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시위 때마다 경찰과 시민 사이에 '비폭력 라인'을 만들어 평화시위를 유지해온 예비군부대가 미처 배치되기도 전에 경찰의 공격이 시작돼버린 것이었다.

이에 흥분한 일부 시민들은 언론재단에서 동아일보 사옥까지 차도와 인도 사이에 세워놓은 경찰버스의 창문을 깨고 철망을 떼냈다. 일부 시민은 장난감 물총에 까나리액젓을 넣어 경찰을 향해 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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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시민이라야 고작 이 정도다.


하지만 명령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경찰의 강제진압과, 통제가 불가능한 일부 군중의 돌발행동은 차원이 달랐다. 보호장구와 방패,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 체포조는 물대포와 소화기의 엄호를 받으며 비무장 상태의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했고, 이에 맞선 시위대의 대항수단은 맨주먹과 깃발을 매달았던 낚싯대가 고작이었다.

5월초부터 꾸준히 촛불집회를 취재해온 블로거기자 박모 씨는 "어청수 경찰청장이 왜 이런 무리수를 쓰는지 모르겠다"며 "마치 4·19혁명 때 시위를 총칼로 진압한 최인규 내무부장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블로거기자 김모 씨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강경진압을 주장하고, 경찰이 그대로 이행하는 것 같다"며 "보수언론이 이후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저렇게 무책임한 주장을 펴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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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8시쯤 서울 대한문 앞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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