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자기 삶 살려고 청소일 하는 여호와의 증인

김훤주 2014. 4. 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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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즐거운 형제

 

첫 인상이 맑고 시원했습니다. 빙그레 웃는 얼굴도 좋아 보였고요. 그렇다고 깔끔하게 단장한 모습은 아니었답니다. 그냥, 수수하고 또 꾸밈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3월 10일 오후 밀양시청 맞은편 주택가에서 박진성·성기 형제를 처음 만났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얘기를 나누는데 말씨랑 말투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억세지도 않고 여리지도 않았으며 어려운 낱말이나 한자말 또는 외래어·외국어 따위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시골 마을 사는 어른들한테서나 들을 수 있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유연하며 억지스러운 구석이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말투·말씨가 아주 자연스러운 형제

 

나이를 물어보니 형 진성씨가 78년생이고 동생 성기씨는 81년이랍니다. 형제들 말씨가 매우 신기해서 어디에서 누구한테 배운 그런 것이냐 다시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잠깐 짧은 동안 침묵하더니, 형 진성씨가 툭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거든요.” 그랬습니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됐습니다. 어쩌다 쉬는 날 집에 있을 때 얇은 선교용 책자를 들고 찾아오던 사람들,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가면서도 예의바르게 깍듯이 인사를 하던 사람들, 양심 또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집총을 거부하거나 병역을 거부하고는 징역을 사는 사람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깊이 배우는 사람들. 기독교 계열 종교 가운데 일반 신도들 공부하는 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들.

 

“항상 모여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하니까 그러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나 봅니다. 또 선교도 해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연습을 나름 하기도 하고요. 이게 저희들한테는 일부러 하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이들 형제를 만난 사정은 이렇습니다. 청소를 정말 재미나고 열심히 하는 형제가 있으니 취재해 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이는 ‘이들 형제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재미있어 죽겠다는 느낌이 절로 묻어난다’고 했습니다. ‘한참 청소에 열 올릴 때 보면 막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도 했었고요.

 

걸레질을 하는 동생 박성기씨. 난간을 닦는 형 박진성씨.

 

청소는 대부분 사람들이 꺼리는 직종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편안하고 깨끗한 상태를 누리려고만 하지 자기가 나서서, 편안하고 깨끗한 상태를 만들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귀찮고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사회에서 대접을 해주고 대가도 두둑한 돈다발로 쳐주면 달라지겠지만 세상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깨끗해지도록 쓸고 닦고 청소하는 사람을 더럽고 하찮게 여기는 풍토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소 키우고 컴퓨터 가게 하려 했는데

 

그런데도 박진성·성기 형제는 청소를 전업으로 삼았습니다. 1년 남짓 됐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용활동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형 진성씨가 지난해 3월 16일 결혼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생계를 꾸려야 할 때가 된 셈입니다.

 

“저희가 밀양 토박이입니다. 용활동 선불홍고추 주산지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오늘 내일 할 때 그 내일동으로 옮겨와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교는 저는 밀양대학교 축산학과를 나왔고 동생은 컴퓨터공학과를 나왔습니다.”

 

형제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선택한 학과도 ‘여호와의 증인’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리 기업이든 비영리단체든 아니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든 공기업이든, 어디 소속돼 밥줄을 걸게 되면 그 논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말씀과 어긋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도 마음대로 내어 쓰지 못하겠지요. 주어지는 일이 여호와의 말씀대로인지 아닌지 구분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조직의 논리나 이해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형은 소 키우면서 농사지으려고 축산학과를 들어갔고 저는 자영업으로 컴퓨터 가게나 차려볼까 싶어서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는데 가게 내는 방법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 않더라고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가르쳐주고…….”

 

이 대목에서 왁자하게 웃음이 터졌답니다. 그래서, 컴퓨터 가게를 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학과 가서 공부할 필요 없이) 그냥 차리면 되는 거예요’ 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웃어야 했답니다.

 

“저는 소를 키울 생각도 해 봤는데, 막상 일이 너무 거창하더라고요. 규모도 크고요. 규모가 큰 만큼 일단 시작하려면 돈도 많이 들어가고 말입니다. 복잡하게 사느니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편이 낫겠다 싶었지요.

 

청소하는 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아요. 빗자루값 기름값이 전부예요. 물은 청소하는 데서 끌어쓰면 되니까 돈이 들지 않고요. 트럭이 중고로 1100만원 들었고, 청소 도구 20만~30만원, 보험 60만원, 고압 분무기 30만원이 전부였어요.”

 

200만원 벌이만 되면 좋겠지만

 

이렇게 밑천을 들여서 하는 청소 사업이 단가는 어떻게 될까요? 원룸 건물이나 사무용 건물을 주로 하는데 원룸 방 하나를 기준으로 해서 5000원이라 했습니다. 한 주에 한 차례씩 한 달에 네 차례 쓸고 닦고 깨끗하게 해 주는 대가랍니다.

 

“계단이나 복도를 청소해 드리는데요, 방이 많으면 그만큼 계단이나 복도가 넓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만약 방이 18개라면 한 달에 9만원이 됩니다. 상대적으로 저희가 좀 싸다고 해요. 지금 4~5층 짜리 건물 서른두어 개 하고 있어요. 건물당 방이 12개라고 보면 삼륙 십팔 해서 180만원 정도 수입이 되네요.

 

입주 청소도 들어와요. 원룸은 방 하나에 3만원, 투룸은 하나에 5만원, 쓰리룸은 7만원을 받습니다. 깨끗하게 원래대로 청소해 드립니다. 지금 청소를 맡고 있지 않은 건물에서 입주 청소 주문이 들어오면 상태에 따라 1만~2만원을 더 받습니다. 이러면 한 달 수입이 200만원은 넘습니다.”

 

이런 한 달 수입을 형제가 똑같이 나눈다고 했습니다. 결혼한 형은 100만원으로는 살기 어렵다고 했고요, 부모와 함께 사는 독신인 동생은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형 진성씨도 그리 돈에 열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아내가 정말 알뜰하거든요 하면서, 200만원만 되면 넉넉하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 정도만 돼도 저축까지 하면서 살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뜻대로 살려고 청소를 직업으로 삼고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산다는 게 제약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를 선택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조정해서 다 할 수 있으니까. 생활하기가 편하니까 자유로우니까. 회사에 취직을 하면 몇 시까지 무얼 해야 한다든지, 여호와의 말씀과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종교가 곧 생활입니다. 다른 종교는 보면 종교는 일부일 뿐, 생활하다가 힘들 때 위안이나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찾는 것이 종교이지만 여호와의 증인은 종교가 삶보다 더 큽니다. 전국에 10만이 넘는데 종교의 가르침을 생활에서 바로 실천합니다.”

 

 

형제는 전과자이기도 했습니다. 형은 군대 가서 집총을 거부하는 바람에 군형법상 항명에 걸려 징역을 살았다 하고요, 동생은 징병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감방살이를 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전과 2범이라 했습니다. 집총 거부로 징역형을 받기는 했지만 그 뒤 나와서 잘 살고 있는데, 예비군 어쩌고를 어겼다고 다시 징역을 살리더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형제에게는 세상에 대한 불만 따위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답니다. 한 달 100만원 수입이 너무 적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계속 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희도 불완전하고 죄인이지만, 성경에 나오는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삶이 윤택해지고 기쁨이 찾아오고 합니다. 지금 집에 텔레비전은 있고 유선방송은 없고 인터넷은 없습니다.

 

굉장히 문란한 성적인 것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고 시간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대화하고 하는 데 방해 되기도 하고요.

 

어릴 때는 술도 마시고 여자친구도 만나고 그렇게 한 번 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고, 어쨌거나 그 때는 부모님 손을 잡고 따라다녔는데 머리가 커서 돌아보니까, 아 이거 다른 종교 하고는 다르구나, 스무 살 넘어가면 자기 삶을 자기가 선택해야 하잖아요?

 

돈을 좇아서 물질을 좇아서 형제부모 간에 원수도 되고 자살도 하고 살인도 하고 하는데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요.”

 

농사에 견주면 청소는 너무 쉽고 편해

 

형제는 지금 하는 청소 일에 무척 만족스러워했습니다. 형이 빗자루로 먼저 쓸고 뒤이어 동생이 밀대로 닦아 내려오는 일이 좋다고 합니다.

 

두 가지 까닭이 있었습니다. 일이 너무 편하다는 것과 시간이 자유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업수이 여기는 사람들 눈길만 빼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청소도구를 싣고 다니는 짐차에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 청소 일을 합니다. 아직 물량이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힘도 세고 키도 커서 농사를 했습니다. 아버지한테 농사일을 거들어주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게다가 농사랑 견주면 청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0년 전 고추 가격이랑 지금 고추 가격이 똑 같으니까 안 됩니다. 그런데 청소는 한 주에 이틀만 하는데도 돈을 이만큼이나 버니까요.

 

청소하고 길거리에 쓰레기를 줍고 하면 좋지 않게 여기고 토박이니까 안면 받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수월합니다. 너무 재미있고요. 농사지을 때보다 힘도 덜 들고 형제가 같이 일하니까 눈치 안 봐도 되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요. ‘쉬자’ ‘하자’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해 드리는 청소 자체도 좋습니다. 자부심을 느끼지요. 올라갈 때는 더러운 계단을 봐야 하지만 청소하고 내려오면서 보면 깨끗해져서 보기도 좋고 마음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하고 나면 다시 신경쓸 일이 없다는 점도 좋습니다.

 

농사는 일 끝내고 나도 무슨 병에 걸리지나 않나 살펴봐야 하고 비가 와도 바람이 많이 불어도 눈이 많이 와도 죄다 걱정을 몰고 다니면서 해야 합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저희는 청소가 즐거워요.”

 

성의껏 하다 보니 입소문도 나게 되고

 

마음가짐이 이렇다 보니 성심성의껏 청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업체보다 더 깨끗하게 청소를 하게 되고 따라서 이제는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답니다.

 

“이쪽 동네는 저희가 잘한다고 소문이 나갖고, 소개해 주시는 데가 많습니다. 일하는 날에는 저기 김밥 카페에서 점심을 대놓고 먹는데, 저희 홍보물을 앞에 꽂아 놓아 주시더라고요. 고맙지요. 이제 저희가 나서서 막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는 됐습니다.

 

저희한테 믿고 맡겨 주시니까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창문틀을 손걸레로 닦고 주차장에 있는 담배꽁초나 모레나 자갈 따위 치우는 일에 더해, 건물과 관련 없는 주변 도로나 화단 청소도 하게 됐어요. 저희가 청소해 주는 건물은 둘레도 깨끗하다, 이런 정도는 하려고요. 정말 깨끗하게 해 보자는 생각입니다.”

 

넉넉한 시간, 풍성한 자유

 

 

형제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보람은 ‘시간’과 ‘자유’랍니다. 한 주일에 열다섯 시간 정도 청소하는 데 쓰고 나면, 나머지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좀 더 돈을 벌려고, 다른 사람들한테 좀 더 인정받으려고 아둥바둥 애를 쓰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실은 나를 모르면서 남의 시선 때문에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내가 살아간다는 그런 의미를 갖고 좀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잖아요.

 

세상이 어차피 생각할 시간도 안 주기는 하지만, 딴 사람 보여주려고 사는 세상은 아닌 것이잖아요? 나의 시간이 많으니까 그 점이 제일 좋습니다. 남는 시간으로 봉사 활동도 하고 전교도 하고 그러면서 삽니다.”

 

국기가 무엇이고 국가는 또 무엇일까요? 진정으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깨끗하게 만들고 하는 그런 움직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국기에 대한 경례 안 한다고 이단시하고, 집총이나 징병을 거부한다고 반사회적이라고 내몰고 하는 풍토가 과연 옳은 것일까요?

 

이런 이들이 설 자리는 당연히 우리 사회가 마련해 줘야 합당하지 않을까요? 욕심 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자기한테 비춰 또는 여호와한테 비춰 옳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그만이라는 이런 삶이 오히려 의미 있고 바람직하고 보람직한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 하나님 야훼를 섬기고 믿는다면서, 오히려 일상에서는 하느님 하나님 야훼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과는 어긋나게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말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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