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봄꽃 전국 동시 개봉과 사라진 꽃샘추위

김훤주 2014. 4.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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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미쳤습니다. 대박이 예상되는 최신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전국 동시 개봉’이 돼 버렸습니다. 보통은 동백이 피고 난 다음에야 목련이 꽃을 피우고, 매화·산수유가 꽃을 벌린 다음에야 벚꽃·진달래가 피어납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경남이라 해도 유채는 4월 중순이나 돼야 그 뒤를 이어 꽃이 피어나는데 올해는 이 모두가 한꺼번에 다 피어났습니다. 어떤 데는 조팝나무에서조차 꽃이 피어났을 정도고, 벚꽃은 이미 서울에서까지 활짝 피어났습니다. 서울 벚꽃 3월 개화는 기상 관측 이래 처음이라고까지 하네요.

 

꽃이 이렇게 한꺼번에 피고 보니 오히려 자연의 질서를 알겠습니다. 봄꽃들은 서로서로 조금씩 맞물리면서 피고 살짝 어긋나면서 집니다. 동백꽃이 피어나서 한창을 지나 조금씩 시들 즈음에 목련이 꽃을 피우고요, 목련꽃이 내리는 빗줄기에 후두둑 떨어질 조짐이 보이면 벚나무 꽃봉오리가 벌어집니다.

 

3월 31일치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경남 창원 진해 벚꽃 사진.

 

또 이를테면 유채꽃은 벚꽃이 남쪽을 지나 서울·경기 쪽에 다다를 즈음 남쪽 바닷가에서 노란 꽃을 세상으로 뿜어냅니다. 이런 식으로 지나친 겹침도 번짐도 없이 그리고 공백도 없이 시간의 경계선을 슬그머니 흐리면서 즈려밟는 것이 봄꽃의 속성이었습니다.

 

이렇게 슬몃슬몃 서로 넘겨짚고 기대면서 이어지다 보니 봄철 내내 꽃이 끊어지지 않았고요 사람들 또한 이런 꽃들 덕분에 지난 겨울 어깨를 시리게 만들었던 차가운 얼음을 녹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한꺼번에 전국 동시 개봉을 하고 보니 꽃구경조차 오히려 제대로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벌도 나비도 이 꽃들이 한꺼번에 다 진 뒤에는 양식 걱정을 해야 할는지도 모르겠고요. 예전에는 시차를 두고 돌아다니면 한 가지 꽃을 질리도록 볼 수 있는 데가 여러 군데였습니다. 올해는 여러 꽃이 한데 뒤섞여 피고지는 바람에 여러 색깔 물감으로 황칠해놓은 도화지를 보는 것 마냥 어지러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홍매화축제가 3월 30일 열렸는데, 이날 경내 홍매화는 절반 넘게 꽃이 져 있었고, 벚꽃과 산수유꽃과 동백꽃으로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답니다.

 

한겨레 그림.

 

앞으로 남은 봄날은 또 어찌해야 하나요. 생물학적 지식이 충분하지는 않은 처지라서, 결실과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 알 도리가 제게는 없지만, 지금 꽃들이 지고난 다음에는 틀림없이 연두를 지나 초록만이 온통 넘쳐날 텐데요, 지금 왕창 피어난 꽃들이 그 때 다시 피어줄 까닭이 없으니 그 단조로움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는지요…….

 

물론 이리 말하면 팔자 늘어진 꽃 타령으로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태까지는 꽃소식이 제주를 지나 전남·경남을 거쳐 수도권과 강원까지 차례대로 북상해왔습니다.

 

전국 자치단체들과 민간 조직들은 지역 특성에 맞도록 꽃 관련 축제나 놀이를 마련하고 장사도 해 왔습니다. 적지 않은 상인들도 이런 꽃 관련 축제나 놀이에 맞춰 남에서 북으로 차례로 올라가며 난전을 펼쳐왔습지요.

 

그런데 이런 흐름이 이번에는 단박에 사라졌습니다. 경남 창원 진해도 벚꽃이 만개했고 서울 여의도 벚꽃도 더없이 벌어졌습니다.

 

3월 31일 한겨레에 실린 서울 벚꽃 사진.

 

말하자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벌이를 할 수 있도록 봄꽃이 차례대로 피고지고 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열어줬는데요, 지금은 전국에서 동시에 피고지고 함으로써 그 시간과 공간을 오히려 가로막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꽃샘추위가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상기후였습니다. 이번 봄꽃 ‘전국 동시 개봉’과 없어진 꽃샘추위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이상기후는 한반도 전역을 한 달 가량 뒤덮었던 눈으로 기억됩니다. 한 해는 지나치게 추웠고 다른 한 해는 넘치도록 따뜻했습니다. 이런 이상기후의 원인을 많은 사람들은 자연 생태 파괴에서 찾습니다.

 

사람들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을 망가뜨리고, 쓰는 과정에서도 생태계를 부서뜨립니다. 그러면서 지구는 더워집니다. 이제 더는 지구를 덥히지 말아야 하지 싶습니다.

 

따사로운 봄날 제대로 된 꽃구경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이런 봄꽃을 활용해 조금이나마 지역경제를 활성화해 보려는 자치단체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김훤주

 

※ <기자협회보> 4월 2일치에 실은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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