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월인데도 한여름 날씨 같던 날
어린이·청소년 여행 체험을 6월에는 함안 법수 남강가로 갔습니다. 16일 일요일이었는데요, 함안 으뜸 누각 악양루에 올랐다가 맞은편 악양제방으로 가서 풀밭에서 꽃과 풀을 찾는 놀이를 즐긴 다음 공차기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더불어 둑방길 3km 남짓을 걸은 다음 거기 있는 조그만 공원에서 차려온 점심을 먹고는 촛대를 겸할 수 있는 작은 솟대를 만드는 체험을 하고 다시 자기 눈에 가장 좋아보이는 풀꽃을 찾아 그림으로 나타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방해를 했습니다. 아침 10시를 살짝 넘었을 뿐인데도 더위가 무척 심했습니다. 30도를 넘는 기온에 아이들은 힘들어했습니다.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높다랗게 산중턱에 자리 잡은 악양루에서 남강과 함안천이 합류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악양루에서 내려다보이는 남강과 함안천.
걸어 나와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눈에 담고는 다리를 건너 악양제방으로 오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지쳤고, 여기 와서 널찍한 풀밭에서 한 번 더 지쳤습니다. 제대로 놀아보기도 전에 지쳤는데, 여기저기 무리지어 있는 토끼풀 더미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놀이도 신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오늘 신나게 놀아보리라 다짐하고는 축구공까지 가져왔건만, 그래서 공을 풀밭에 던져 놓고 발길질을 해 봤는데 대부분 차 보지도 못하고 다들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공놀이를 시작하는 아이들.
2. 더운데도 버스 타는 대신 둑방을 함께 걷고
더위 탓이었습니다. 일단 둑방 위로 올라가 원두막에 앉았습니다. 더위에 늘어진 아이들은 아우성을 내질렀습니다. 버스를 타고 어서 그늘로 가자, 왜 이렇게 더운 데 데려 왔느냐,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등등 갖은 얘기가 다 나왔습니다.
건너편에 가 있던 버스를 도로 오게 했습니다. 모두들 버스를 타고 갈 기세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있는 달그리메 선생님이 “나는 걸어서 건너편 공원까지 갈 생각인데, 한 사람이라도 같이 가려면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큰 싸움소를 지나옵니다.
아이들 몇몇이 나섰습니다. 태현이랑 시현이 형제 등등이었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머지 아이들도 우르르 일어났습니다. 공을 차려고 뛰느라 배가 아픈 원규도 나섰고요,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프다는 한이도 나섰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버스가 오니까 그것을 타도 된다고 했지만, 한 명만 남기고 모두 걷기를 자청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을 앞질러 뛰어가기까지 했습니다. 원규와 한이는 뒤에 조금 처져서 저랑 함께 걸었습니다.
원규는 자기가 배가 아픈 까닭을 말해줬습니다. 무엇을 잘못 먹거나 배탈이 나서 아픈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고 나서 바로 뛰는 바람에 아픈 배라면서 천천히 걸어가면 곧 낫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말대로 원규는 건너편 공원에 도달해 얼마 있지 않았는데 다시 생생해졌습니다.
한이는 더위를 무척 탓했습니다. 물집이 생겼는지 걷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런데도 업어주겠다는 손길을 뿌리쳤습니다. “진짜 무겁거든요!” 했습니다. “한이 정도는 너끈히 업고 갈 수 있다”고 해도 기대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걸을 수 있거든요!”
3. 아이스크림과 아이들의 집중력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올라붙었습니다. 내뿜는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차례대로 아이들은 수돗가로 가서 씻었습니다. 처음에는 버스에 올라타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정자 아래 그늘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원기를 되찾았는지 거기 있는 놀이·운동기구에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더위를 가라앉힌 다음 빙 둘러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에서도 왁자합니다. 더위에 지친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버스를 타고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왔습니다. 이렇게 더위에 늘어진 아이들에게는 그게 불량식품이든 아니든 이런 정도는 먹게 해야 좋을 것 같았습니다. 사갖고 온 아이스크림이 남았습니다. ‘설레임’이라고, 비닐봉지에 들어 있어서 녹아도 바로 흘러내리지는 않은 물건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것을 갖고 바로 놀이에 들어갔습니다. 369게임입니다. 1부터 정수를 하나씩 늘려나가는 게임입니다. 대신 3의 배수가 나오면 숫자를 소리내어 부르는 대신 입을 닫고 손뼉을 칩니다. 저는 아이들이 이렇게 집중력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또 사람들은 아이들 놀이가 없다고들 쉽게 말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까 그렇다고 잘라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결국은 하나씩하나씩 탈락하더니 끝까지 남은 세 사람은 100을 넘겨서까지 이어갑니다. 승패가 갈라지지 않아 결국 가위바위보로 아이스크림의 주인공을 정합니다.
첫 게임 우승자 기현이가 왼편에 서 있습니다.
이긴 기현이는 무척 즐거워합니다. 바로 입으로 가져갑니다. 남은 아이들끼리 남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두고 다시 369게임을 합니다. 앞에 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낸 아이들이 뒤에 게임에서는 먼저 떨어져나갑니다. 앞에 게임에서 몸과 마음을 집중하느라 기력이 많이 빠진 때문이 크겠습니다. 이번에도 승패는 가위바위보로 갈렸습니다.
4. 솟대 촛대 만들기 체험을 하는 보람
솟대 촛대 만들기 체험을 할 시간이 됐습니다.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의 감병만 사무국장이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왔습니다. 나중에 봤더니, 일부러 그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들은 아버지 체험을 진행할 때 조수 노릇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솟대는 옛날 역사가 없던 시절부터 거룩한 땅을 일러주는 표시였습니다. 사람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땅이었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억눌리고 빼앗겼던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솟대는 지금도 좋은 무엇, 걸리적거림이 없는 좋은 상태를 뜻하게 됐습니다.
감병만 국장은 그런 솟대를 책상에 올려둬도 좋을 만큼 작은 크기로 만들면서 거기에 홈을 파 파라핀을 담은 그릇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파라핀에 불을 붙이면 촛불이 됩니다. 촛불이 피면 굳이 전등으로 방을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에너지 절약을 생각하고 이산화탄소 발생에 따른 지구온난화 문제를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취지라고 합니다. 솟대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를 감 국장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산에서 산 나무가 아닌 이미 죽은 나무의 줄기를 베어와 만든다고 했습니다.
왜 그리 힘들게 하느냐 물으면 이렇게 답을 한답니다. “산에 죽은 나무는 언젠가 썩기 마련이고 썩으면서 이산화탄소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를 부추깁니다. 작으나마 그런 이산화탄소를 줄여보려고 그런 재료를 활용해 장식용 솟대를 만들어 봅니다.”
그런 솟대를 촛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같은 취지라고 했습니다. “지금 전기는 석유를 때거나 원자력 작용을 해서 나옵니다. 석유는 한정된 자원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때면 공기가 오염됩니다. 원자력, 핵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것 줄이거나 없애려면 결국 전기를 아껴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이렇게 촛불을 켜고 전기를 아끼는 시간을 마련해보면 어떨까요?”
5. 콩나물시루에 물 붓기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이들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즐겁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에너지다 지구온난화다 원자력이다 따위는 아직은 알아듣지 않아도 되는 어른들의 영역으로 봐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저희 처지에서도 아이들이 이런 말을 죄다 알아듣거나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냥 솟대 기둥으로 쓰는 대나무 얇은 가지에다 불기를 쬐어서 스스로 바라는 대로 멋들어지게 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지 끝에다 오리를 날렵하게 매달고 부리가 하늘을 제대로 하늘을 향하게 하는 것이 더 관심이 갑니다.
에너지 절약이나 지구온난화 따위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아이들 자라면서 생각이 여물고 자라는 것이 꼭 콩나물시루에 들어앉은 콩알들 같기 때문입니다. 콩나물시루에 뿌려지는 물은 그냥 주루룩 흘러내릴 뿐입니다.
콩알 하나하나에 깊숙이 새겨들어가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물이 내려가는 그 순간에는 콩나물이 자라는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나절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보면 콩나물을 꼭 그만큼 자라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솟대촛대들. 하얗게 파라핀이 박혀 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러므로, 그런 물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하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절로 자라고 절로 여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른들에게 필요한 일은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고 아이들한테 스스로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음을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지요.
이렇게 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바로 생생해졌습니다. 오히려 어른이 제 생각대로 틀을 짜 놓고 거기에 맞춰 갖은 영양분을 주입하면 아이가 자기 가진 성질대로 크지 못하는 잘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ㅏ.
6. 정말 잘 놀고 집중력도 대단한
해가 설핏 기울면서 그늘이 여기저기 생겨난 덕분도 있겠지요. 철봉에 가서 매달리기도 하고 수돗가에 가서 물장난도 합니다. 물론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핸드폰에 눈길을 고정하고 게임을 즐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기 들어선 족구장에 절반쯤 그늘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공을 들고 나섰습니다. 족구를 하자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뭐…… 이러면서 얕잡아 봤다가 큰 코 다쳤습니다. 족구를 하는 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공격도 잘하고 수비도 잘합니다. 어른인 저보다 공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하기야 저 같은 경우 어른들끼리 족구를 할 때면 언제나 ‘개구멍’ 취급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오늘은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제가 배웠습니다.
더위에 늘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굴더니 곧바로 자기네들끼리 재미나게 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따분하게 여기지 않고 놀거리를 찾아내었습니다. 집중력도 대단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있는 어버이는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종이를 나눠주고는 그리기를 할까 하다가 낱말을 말해주고 기억해 놓은 만큼 쓰게 하는 놀이를 했더니 낱말 서른 개 가운데 스물여덟 개를 맞힌 아이도 있었습니다. 스물일곱, 스물셋을 맞힌 아이도 있었는데요, 아마도 저 같으면 스무 개를 넘기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어진 끝말잇기에서도 아이들 집중력과 지식은 만만찮았습니다. 선생님이랑 어울려 같이 했는데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저희 어른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끈질기기도 했습니다.
7. 7월에는 문화재 공부와 물놀이를 함께
어린이 청소년 여행 체험 프로그램에는 보통 스무 명 안팎이 참가를 하는데요, 이 날은 모두 아홉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기말시험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문을 남기기로 작정했다면 당연히 취소하고 그렇지 못했겠습니다만 말씀입니다.(물론 앞으로는 적당하게 시기를 조절할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물놀이하기 딱 좋은 옥천골짜기.
7월에도 셋째 일요일인 21일에 어린이·청소년 여행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원래는 통영 연대도에 가서 해양 체험을 하려고 했지만, 연대도는 철이 다르기는 하지만 3월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어서 시원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산골짜기로 골라잡았습니다.
옥천사터 남은 석등 받침.
창녕 화왕산 옥천골짜기랍니다. 갖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 관룡사와 용선대를 둘러보며 문화재를 공부한 다음 고려 말기 개혁을 이끌었던 신돈이 태어나 자랐던 옥천사터를 찾아봅니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미리 장만한 재료들로 밥과 반찬을 만들어 먹고는 신나게 물놀이도 즐깁니다.
처음 통영 연대도 생각하고 산정한 참가비 4만7000원에서 오가는 배삯 5000원을 빼는 대신 점심 재료 3000원 정도를 4만5000원으로 맞출까 싶습니다. 손수 끼니를 해결해 보는 보람도 누리고 공산품에 가까운 과자 대신 제대로 된 간식도 마련합니다.
7월 21일(일) 창녕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 옥천사터 옥천골짜기.
상담·문의·신청 : 055-250-0125, 010-8481-0126, haettane@gmail.com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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