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는 충남으로 역사기행을 떠났습니다. 마산박물관 답사 모임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꽤 먼 거리라서 다른 때보다 일찍 나섰습니다. 수덕사와 장곡사와 모덕사를 둘러보는 일정입니다.

 

1. 노래 <수덕사의 여승> 주인공은 누구일까?

 

수덕사(修德寺)라 하면 대부분 대웅전이랑 여승을 떠올립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연대가 알려진 유일한 고려 시대 건축물입니다. 그리고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1960년대에 유행한 대중가요가 유명합니다.

 

‘수덕사의 여승’은 누구일까요? 일제 강점기 조선 여성 3걸로 일컬어지는 윤심덕·나혜숙·김일엽 가운데 김일엽이랍니다. 김일엽은 비구니 스님이고 이 노래가 널리 알려질 당시 여기 수덕사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덕사에서 여승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수덕사에 소속돼 있는 견성암이라는 암자가 비구니 수도처라 합니다. 하지만 이 견성암도 옛날 모습 그대로가 아니고 새로 지은 건물이 많다고 하니 노래에 매이면 그것은 허상이 되겠지요.

 

2. 수덕사 대웅전의 눈맛 좋은 벽면 

 

어쨌거나, 수덕사의 공식 으뜸 보물은 대웅전입니다. 연대가 알려진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어졌다니 올해로 705살입니다. 같은 고려 시대 건물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있습니다만 정확한 나이는 모릅니다.

 

 

이들 고려 시대 건물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셋 다 수더분하고 간결하면서도 튼튼합니다. 그러면서 차이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부석사 무량수전은 화사하고 봉정사 극락전은 섬세하며 수덕사 대웅전은 가장 꾸밈이 없습니다.

 

가만 들여다봤더니 노란 벽면이 이채로웠습니다. 다른 절간 다른 전각에는 이런저런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둥이 그런 벽면을 간결하게 나눠주고 있을 뿐, 어떤 보탬도 더함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눈맛이 좋았습니다.

 

 

3.  죄악은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죄악이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천왕문에서 예사롭지 않은 천왕을 만났습니다. 이런 천왕과 이런 죄악상은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천왕이 짓밟고 있는 죄악상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적나라합니다.

 

천왕 발 밑에 놓인 벌거벗은 여자 그와 짝을 이루는 천왕의 발 아래 존재.

 

 

아름다운 여인이 죄악상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경우는, 밀양 표충사를 비롯해 여러 절간에서 봐 왔습니다만, 그것들은 죄다 옷가지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얀 속살이 통째로 드러나 있습니다.

 

죄악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죄악…… 죄악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아름다우니까 죄악이다? 죄악의 본바탕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답지 않으면, 또는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다른 무엇이 없으면 사람이 죄악으로 끌려들지 않는다?

 

 

수덕사에는 수덕여관도 있습니다. 아주 이름 높은 사람인 줄 아는데, 이응로라는 화가가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지금 복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켠에는 이응로가 바위에 새겨넣은 추상 무늬 ‘그림’이 있습니다.

 

 

4. 대웅전이 둘인데, 정작 석가모니 부처는 모시지 않는 절

 

수덕사를 떠나 점심을 먹고는 장곡사로 갑니다. 수덕사 앞 식당들은 차림이 한결같습니다. 우리는 수덕식당에 가서 나름 깔끔하고 잘 차려진 음식을 먹었지만 다른 식당에 가도 같은 산채비빔밥이면 같은 반찬이 나오고 값도 7000원으로 같습니다.

 

장곡사(長谷寺)는 수덕사가 있는 충남 예산이 아니라 이웃 청양에 있습니다. “콩밭~~ 매~~는 아~낙~네”로 널리 알려진 칠갑산 자락입니다. 이름 그대로 골짜기(谷)에 길게(長) 늘어서 있습니다.

 

수덕사는 절간 건물이 좋고 돋보이지만 장곡사는 그보다 둘레 경관이 매우 빼어납니다. 때마침 비가 내린 뒤끝이라 더욱 산뜻하고 함초롬합니다. 함께한 일행들도 자꾸 눈을 씻고 다시 봅니다. 그러고는 길지 않은 길을 따라 내쳐 걷습니다.

 

장곡사는 별난 절간입니다. 대웅전이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다른 절간 대웅전에는 보통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 두 대웅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별나게도 위쪽 대웅전은 비로자나불과 약사여래, 아래 대웅전은 약사여래가 있습니다.

 

대웅전이 왜 둘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대웅전에 석가모니 아닌 다른 부처들을 모신 까닭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칠갑산을 비롯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불상을 모아 놓다 보니 이렇게 됐지 싶고, 그런 부처들을 위아래 구분 없이 모시다 보니 대웅전이 하나만으로는 모자라 두 개를 짓게 되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

 

5. 부뚜막과 조왕신을 볼 수 있는 장곡사

 

위쪽 대웅전에서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내려옵니다. 수덕사에서 색다른 볼거리를 천왕문이 갖추고 있었던 것처럼 장곡사도 색다른 볼거리를 하나 품고 있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순천 선암사에 가면 그 곳 부뚜막 들여다보기를 즐겼습니다. 연기에 검어진 공간이 다시 햇빛이 알맞게 걸러져 더욱 어둑해진 가운데 아궁이가 위에 조왕신(竈王神)이 모셔져 있습니다. 부처는 이렇게 모든 존재를 품어버립니다.

 

하지만 지난 3월에 갔던 선암사에서는 부엌 구경을 못했습니다. 전에는 열려 있던 부엌문이 닫겨 있었는데다 스님까지 지키고 앉아 들어가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부엌 문이 열려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아쉬움이 장곡사에서 녹아 스러졌습니다. 마음껏 넋 놓고 구경을 했습니다. 선암사처럼 규모가 크고 가지런히 제대로 갖춰져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절간 부엌 분위기는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북이 언제나 동그랗지는 않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장곡사의 그것.

6. 최익현은 이기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을까?

 

이어지는 발걸음은 모덕사(慕德祠)로 갑니다. 조선 말기 항일 의병장 최익현(1833∼1906)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최익현은 흥선대원군을 비판해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 때 이완용 따위 을사오적 처단을 주장했고 이듬해 1월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면암 최익현이 살았던 옛집.

 

 

최익현 옛집 뒤뜰.

 

아마도 최익현은, 이기기 위해 싸우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이가 몸을 일으켰을 때 나이가 일흔셋입니다. 시쳇말로 ‘당장 죽어도 호상(好喪)’이었습니다. 태인→정읍→순창→곡성을 순조롭게 접수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이는 선비였습니다. 위정척사였습니다. 정(正)은 왕이 다스리는 신하의 나라였고 사(邪)는 그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이에게는 일제도 나쁘지만 1894년 떨쳐 일어난 동학농민군도 나빴습니다. 같은 양반이고 선비였지만 농민과 함께한 전봉준과는 달랐습니다.

 

어쩌면 매천 황현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동학농민군을 보는 관점도 둘이 같습니다. 또 매천은 조선 정부를 비판했고 그 망함에는 한 치 아쉬움도 없다고 했습니다. 최익현도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정책을 비판했고 그 탓에 귀양살이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매천은 조선이 500년 동안 선비를 길렀는데 그 망함을 맞아 따라 죽는 선비가 하나도 없다면 참 허망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입니다. 최익현도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 해도 최익현이 죽기 위해 싸웠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습니다. 일본군에 넘겨진 최익현은 남의 땅 대마도에 유배됩니다. 보통은 최익현이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으로 순국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았는데, 이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단발을 강요당하자 단식으로 사절(死節)하기로 결심하고…… 단발 조치가 철회되자 단식을 중지했으나 11월 병을 얻어 12월 30일 순국했다.” 큰 줄기는 다르지 않지만 세부 내용은 다릅니다.

 

면암 최익현은 집안이 영 못 살지는 않았나 봅니다. 여기 모덕사는 늘그막에 최익현이 머물러 살던 집 옆에 있습니다. 모덕사는 1914년 지어졌고, 살던 집은 중화당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데 1900년 경기도 포천에서 이리로 옮겨올 때 지었습니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든 생각입니다.

 

어쨌든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그이 살던 옛집도 느낌이 그럴싸하고 덕을 그리는 사당도 그럴 듯합니다. 게다가 그 앞에 들어앉은 커다란 못까지 함께 어울리면서 그 전경이 아주 대단한 울림을 안기면서 눈길을 멀리까지 이끕니다.

 

모덕사 전경.

옛집 전경.

해딴에의 역사기행은 6월에 쉽니다. 대신 7월 6일(토) 충북 충주로 갑니다. 단호사 철불좌상~탑평리 칠층석탑~충주박물관~중원 고구려비~미륵대원지를 둘러봅니다. 참가비는 4만5000원인데, 신청·문의는 055-250-0125, 010-2926-3543으로 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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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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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neowind.tistory.com 김천령 2013.05.24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특이하군요. 장곡사
    비로자나불이라면 으레 적광전인데...
    아래 대웅전에 약사여래만 있다면 예전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아미타불(서)로 짝을 이뤄 대웅보전이었을 가능성도 있는데요. 분실되어 약사불(동)만 남았을 수도... 불상의 크기를 보면 주불인지 협시불인지 그 용도를 좀더 알 수 있겠지만요... 석가모니불은 없고 비로자나불과 약사여래가 같이 있는 위 대웅전은 어째 선뜻 이해가...
    참, 어렵네요. 아무튼 진기한 것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3.05.24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김천령님^^

      김천령님이 특이하다시면 다른 말이 필요가 없습지요~~~

      어쨌든 저도 이런 절간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풍경은 매우 시원하고 멋졌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