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엄숙 권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운조루

김훤주 2013. 5. 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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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멋진 장터 구례장과 화엄사, 운조루 3

 

4월 13일 테마 체험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운조루가 차지를 했습니다. 시골 물산이 넘쳐나는 구례장을 거쳐 하한산장 참게수제비를 거쳐 화려장엄하면서도 소박·여유·자유·무애(無碍)스러운 화엄사를 거쳐 왔습니다.

 

1. 세상살이가 버거워 쉬려고 지은 운조루

 

운조루(雲鳥樓)는 뭐랄까,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양반 기와집 치고는 그다지 엄숙이라든지 권위라든지 이런 따위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 흐르는 세월 속에 있는 그대로 놓여 있는 그러한 옛 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오로지 저 혼자만의 기분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일까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바로 '어울림'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옛날에도 지금과 같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랬으리라고 믿음직한 근거들은 몇 있습니다. 먼저 운조루라는 이름입니다. 사랑채 이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여기 들어선 집을 통째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조선 영조 52년(1776) 유이주라는 무인 집안 사람이 낙안군수로 있으면서 지었다고 합니다. 중국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에 나오는, “雲無心而出岫(운무심이출수 : 구름은 무심하게 산골짜기를 나오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 새는 날다 지쳐 문득 동지로 돌아오네”에서 첫 자를 땄다는 얘기입니다.

 

운조루 들머리. 왼쪽에 호랑이뼈가 걸려 있습니다.

이런 설명이 맞다면 귀거래사라는 시의 분위기에 비춰볼 때, 어렵고 버거운 세상살이를 접고 돌아와 지친 몸을 추스르는 그런 공간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운조루는 실제로 들판과 산기슭이 만나는 즈음에 펑퍼짐하고 드러나지 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2. 굴뚝이 있지 않고 뒤주가 나와 있는 까닭

 

다음은 굴뚝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양반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밥을 해대느라 불을 때고 그 연기가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면 둘레 살고 있는 없는 사람들 허기진 배를 더욱 허기지게 할 것이기 때문에 굴뚝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맞는 얘기일 것입니다. 물론 굴뚝이 있고 그 높은 굴뚝을 통해 연기가 올라가면 한결 모양새는 도드라지겠습니다만, 굴뚝 하나를 두고서도 그렇게 위세를 세우기보다는 실제 불을 피우더라도 아무 기척이 없는 것처럼 만든 셈이 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힌 이 집 뒤주입니다. 다른 사람이 풀어헤쳐도 된다는 뜻이라는데, 이렇게 해서 뒤주를 내어놓음으로써 다른 배고픈 사람들이 와서 여기 들어 있는 쌀을 거리낌없이 퍼 나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둘레 이웃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곳간 주인이 하인을 시켜 퍼 주지 않고 운조루 집안이랑 아무 관련 없는 이들도 눈치 보지 않고 가져갈 수 있도록 사람의 자존심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돋보인다고들 하지요.

 

이런 어울림이 실제로 운조루에 스며들어 있기에, 무인의 집이면서도 그 기상이 씩씩하게 솟아나 보인다기 보다는, 잘 사는 집안이면서도 마을 전체 모습과 어긋나지 않고 스르르 그 한 부분으로 녹아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3. 생활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죽음의 자리

 

저는 이 가운데 ‘타인능해’ 하나만 제대로 새겨도 운조루를 멀리서 찾아온 보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여깁니다만, 이밖에도 운조루는 볼만한 거리를 곳곳에 곰탁곰탁 품고 있습니다. 먼저 가빈터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행랑채 왼편 끄트머리에 있는데요, 옛날에 집안에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여기에 모셔두고 100일장을 치렀다고 합니다.

가빈터. 매트랑 공구, 보일러 등이 들어 있어 좀 어수선했습니다.

 

사흘 뒤 입관해서 여기 들였다고 하는데, 물론 옛날 양반집 있는 사람들이나 100일 동안 주검을 모실 여유가 있었겠지만, 저는 여기 이렇게 생활공간으로 죽음을 끌어들이려면, 죽음을 삶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먼저 생겨나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우리 삶은 죽음과 완전히 나뉘어져 있거든요.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스스로 자기 힘으로 죽을 능력조차 없어져 버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던데, 죽음을 다루는 공간, 심지어는 아픈 몸을 다스리고 치료하는 공간조차도 우리네 삶터에는 있지가 않은 실정입니다. 죽음이 완벽하게 추방당한 삶이고 그런 삶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4. 사랑채와 안채 곳곳에 곰탁곰탁 놓여 있는 것들

 

운조루라는 사랑채도 그럴 듯하지만, 저는 그 아래에 있는 것들에 눈길이 더 갔습니다. 이를테면 붙박이 돌확이라든지 나무로 만든 수레바퀴 따위들입니다. 저것들이 살아서 덜컹거리고 쿵덕거리던 시절이 확 제게로 끼쳐져 오는 그런 느낌입지요.

 

안채로 들어갑니다. 여기는 모두 문이 달려 있습니다. 문짝 아래 턱이 높은 데는 방이고 턱이 없는 데는 마루입니다. 마루는 사람이 움직이고 옮겨다니는 공간이기에 문턱이 없고요, 방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니까 문턱이 있습니다. 방에 있는 문턱은 사람이 앉은 채로 팔을 괴기에 알맞은 높이라고 합니다.

 

앞쪽 마루는 문턱이 낮고 뒤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와 있는 툇마루도 눈여겨보면 남다르다고 합니다. 옆으로 다닥다닥 붙인 녀석들은 짧게 잘렸지만 이것들을 모두 받아안으면서 앞으로 길게 놓인 나무는 둘 또는 셋을 이어붙인 것이 아니고 하나랍니다. 저렇게 긴 나무를 갖다 쓴 집안이라면 꽤나 살림이 넉넉했겠다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이런 풍경들도 요즘은 무척 보기 드뭅니다. 놓여 있는 나무궤짝들은 무엇을 담았을까요? 저는 이런저런 곡식들 담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또아리는 뜻밖에 앙증맞은 느낌을 줍니다.

 

 

 

물론 저 또아리를 머리 위에 받치고 물항아리나 나락 따위 짐들을 이고 날랐을 아낙네들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 땋아서 매어놓은 것이 제게 그런 느낌을 줍니다. 저 끝을 입에다 넣고 머리 위에 놓인 짐이 흔들릴세라 안간힘을 쓰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지요.

 

안채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도 충분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안쪽 시렁이 저는 멋졌습니다. 저기 올라 있는 대나무로 만든 것 같은 바구니들이 이 집 사람들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저 안에 있는 것들, 요즘에는 대다수가 냉장고 신세를 지고 있겠지요.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나무지게가 눈에 띄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새끼로 등판까지 제대로 만들어 붙인 녀석입니다. 요즘은 이런 지게 드뭅니다. 바지게를 얹어 걸치는 뒤로 삐죽 튀어나오는 부분이 몸통에 제대로 붙어 있는 가지로 돼 있습니다. 요즘은 통째로 쇠로 만들어 이어 붙인 지게가 대세입니다.

 

 

대문을 나와 마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뒤쪽으로 올라가니 이렇게 연둣빛 나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을 어귀에는 나름 오래된 나무가 서서 조금씩 잎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운조루 집 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습니다. 맞은편 들판 건너로 보이는 오봉산과 삼태봉이 타오르는 불꽃 모양 화산(火山)이어서 그 불기를 막으려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뿐이겠습니까? 실제로 여기 연못은 여러 모로 쓰임이 많았을 것입니다.

 

나오기 전에 하나 더, 암수재(闇修齋)입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름 짐작하기에 어두운 곳에서도(또는 보이지 않는 데서도=闇) 몸과 마음을 닦는(=修) 집 정도가 되겠는데요, 그와 함께 거기 적혀 있는 주련이 그럴 듯했습니다.

 

논어 첫 머리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와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가 짝을 이룹니다. 공자가 늘그막에 했다는 말씀입니다. 논어 같은 대목에 나오는 다른 하나는 人不知而不愠不亦君子乎(인부지인불온불역군자호)인데, 앞에 두 가지가 되면 뒤에 이것은 절로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집 운조루 주인이 다다랐던 사람됨의 수준이 상당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봤습니다. 진정으로 저 글귀를 좋아하고 즐겼다면 말씀입니다. 배우고 그 배운 바를 익숙하게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지, 뜻 맞는 벗이 찾아오면 함께 기뻐할 줄 아는 경지, 그러다 보니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고 괴로워하지 않는 경지…….

 

지금은 너무 많이 알려져 싫증이 나기까지 하는 이 글귀는 운조루 지을 당시에도 양반들은 너무 많이 입에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이런 범상한 글귀는 쓰기를 삼갔을 것입니다. 찾기 어렵고 뜻이 깊은 그런 글귀를 골라 주련을 해서 다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도 이렇게 삼척동자도 웅얼거릴 수 있는 그런 글귀를 짝 맞춰 올렸습니다. 그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한 사람이면 이렇게 하기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주욱 이어집니다. 해딴에는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경남형 예비사회적 기업입니다. 2012년 9월 경남도로부터 지정받았습니다.

 

저희 해딴에는 '잘 놀아야 잘 산다'고 생각합니다. 노는 사람은 많지만 잘 노는 사람은 드문 현실입니다. 저희는 갱상도 사람들이 잘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만들며 잘 놀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일을 합니다. ^^

 

같은 날 떠난 여정인데 앞에서 쓴 글들은 이렇습니다.

전라도 구례 멋진 장터와 화엄사, 운조루 2(http://2kim.idomin.com/2368),

그리고 전라도 구례 멋진 장터와 화엄사 운조루 1(http://2kim.idomin.com/2364) 입니다.

 

일이 있으시면 이리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김훤주 개인 010-2926-3543, 공용 전화 055-250-0125, 010-8481-0126. 메일 주소는 pole08@hanmail.net입니다. '해딴에'로 검색하시면저희 카페로 바로 연결도 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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