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민주주의전당, 마산에는 개 발에 닭 알

김훤주 2013. 3. 7. 07:30
반응형

1. 마산은 민주주의와 반독재의 고장인가

민주주의전당이 있습니다. 2001년 6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건립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광주에 짓겠다고 공약했고요, 박근혜 현 대통령은 2012년 11월 28일 마산에 짓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마산에서는(행정통합이 됐으니까 이제는 창원이라 해야 맞겠네요.) 그동안 민간 차원 시민 사회에서 민주주의전당을 마산으로 끌어오자는 논의와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어쩌면 그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민주주의전당을 마산에 두자는 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산이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사건인 3·15의거와 10·18부마민주항쟁의 고장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 마산은 민주주의 또는 반독재와 거리가 먼 고장이 됐기 때문이랍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것을 일러주는 일들이 이번에 생겼습니다. 마산역에 2월 5일 이은상 시비가 들어선 것입니다. 마산역(한국철도공사)이 터를 내놓으며 제안하고 국제로타리클럽 3720지구가 돈을 내놓아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에는 이은상의 시 ‘가고파’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 적힌 약력은 경남문협 회장을 지낸 김복근 시조시인이 정리했습니다.

2. 왕보다 더한 왕당파 같은 철저한 기회주의자 이은상

호가 노산인 이은상은 철저하게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어쩌면 반민주주의자라는 말로도 오히려 모자란다고 저는 봅니다. 이은상은 아마 당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면 그 공산주의정권조차도 앞장서 찬양했을 사람입니다. 이는 그이 이력을 보면 그대로 나타난답니다.

일제강점기에 감옥살이를 한 경력만 빼면, 해방 이후 한결 같이 권력의 편에 섰습니다. 1960년 3·15의거와 4·19혁명 과정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한 이승만 정권을 옹호했습니다. 물론 이승만은 그밖에도 국민방위군 사건이나 보도연맹 사건으로 엄청나게 많은 민간인을 괴롭히고 또 죽였습니다.

뿐더러 이은상은 독재자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킨 뒤에는 곧바로 박정희의 손발이 되는 민주공화당 창당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 제정 이후에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며 독재정권을 미화·찬양했습니다.
 

1979년 부마항쟁과 10·26사태가 지난 뒤에는 박정희 추모시도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짓밟고 새로 들어선 군부세력인 전두환 정권까지도 옹호했습니다. 그이에게는 문인으로서 세상과 인간의 근본을 성찰하는 그런 태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렇게 살다 간 이은상은 생전에 단 한 차례도 반성·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으로서는 사과할 까닭이 없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이는 이를테면 ‘나는 양지만 골라 딛는다’를 소신으로 삼았고, 실제로 그 소신대로 살았을 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3. 3.15의거기념사업회장조차 이은상을 지켜야 한다 소리 높이고

물론 이런 이은상을 기리는 시비가 들어섰다고 해서 제가 마산이 민주주의 또는 반독재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태도, 그리고 지역 사회 이른바 여론주도층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먼저 이은상을 마산의 많은 문인들은 좋아한답니다. 어쩌면 자기네 이익을 위해 그냥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마산문학관도 노산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고 지금 들어선 가고파 시비도 그대로 놓여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자회견을 하는 경남의 문인들. 경남도민일보 사진.


게다가 마산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않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가고파’ 가곡을 즐겨 부르는 이들도 쉽사리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가고파’는 마산 사람이 아니라 마산 ‘출신’ 사람을 위한 노래지요. 서울 따위 다른 데 나가 살면서 ‘떠나온’ 마산을 그리워하는 노래랍니다. ‘꾀죄죄한 꼴을 벗고 출세해서 서울것처럼 환골탈태한 촌놈’이 자기가 떠나온 시골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노래랍니다.)


만약 광주라면 어떨까요? 1980년 5월 그 처절했던 광주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당시 항쟁을 짓밟은 전두환 일당을 옹호·찬양·미화했던 사람이, 그래도 빼어난 문인이라는 이유로 그이의 시비를 광주에 들이세운다고 하면 광주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나 마나가 아닐까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지요. 광주는 그동안 광주민주화운동에 담긴 정신을 나름대로 갈고닦아 왔습니다. 그래서 광주 사람들은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고 아무리 광주 출신이라 해도 광주의 정신을 짓밟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저는 압니다.

4. 김주열 열사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새 출발해야

마산은 다르답니다. 3·15와 10·18은 뼈도 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은상이 미화·찬양·옹호했던 세력이 지역을 전면적으로 온전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이라는 사람조차 이은상을 지켜내야 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이런 마산에 민주주의전당이 들어선다면 지나가는 개조차 웃을 일이 아닐까요. 3월 15일의 마산의거는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주검이 마산중앙부두 앞에 떠오름으로써 더욱 발전됐습니다.


그리고 4월 19일과 26일의 혁명으로 완성됐습니다. 김주열은 마산 3·15와 4·11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주열 열사 앞에서 3·15와 4·11을 지키지 못하고 말하자면 가고파 세력에게 완벽하게 밀렸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새로 시작해야 마땅하지 싶습니다.


김훤주
※ <기자협회보> 2월 27일치에 실은 글을 조금 채우고 다듬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