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요구가 아닌 나눔으로 지역 공동체 회복을

김훤주 2012. 12.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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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미정(42) 씨는 본인을 일러 타고난 나눔형이라 했습니다. 무엇을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받아내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며 그 속에서 나누는 그런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20대였던 1990년대는 그이에게도 요구와 투쟁을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부산에서 보낸 대학 시절이 그랬던 모양이지요. 그러다 20대 중반에 창원으로 넘어오게 됐고, 거기서 설 씨는 새로운 운동 형태를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줄곧 한 우물을 파게 됐답니다.

독립 영화 공동 제작자로도 활동
어떻게 하다 보니 영화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설미정(42)씨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는 독립영화 <에프 투 원(F-2-1)>입니다. <에프 투 원>의 공동 제작자로는 설씨 말고도 이철승 경남이주민복지센터 소장과 문광조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이사장이 더 있답니다.

10월 13일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꽃들에게 희망을’ 사무실에서 만나 요즘 일상이 어떤지 물었더니 설씨는 <에프 투 원> 제작하느라 바쁘다고 했던 것입니다. ‘F-2-1’은 결혼 이주 여성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이전에 주어지는 비자를 뜻한답니다.


“란 응완 씨라고, 베트남 여배우가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배우를 현지 오디션을 통해 주연 여배우로 선발했습니다. 싱가포르 사람과 공동으로 작업한 2010년 작품 <떠도는 삶>에도 출연을 했는데요. 영화는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어요.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초청 작품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에서 오디션을 진행할 때 이 배우가 전혀 꾸미지 않은 채 오토바이 타고 헬멧 쓰고 왔다고 합니다. 실제 생활하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 셈이지요. 실제 영화에서도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국 농촌 노총각이 돈을 내고,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매매혼 개념인데요, 단체로 베트남에 나가서 결혼을 위해 그 나라 여성들을 만나는 장면이 있고 여기서 남편 될 사람을 뒷자리에 태우고 오토바이로 그 쪽 시내를 한 바퀴 돈다든지 하지요. 또 결혼해 한국서 같이 살게 된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지는데 그것도 오토바이랑 관련돼 있습니다.

내년 5월에 시사회를 할 것 같은데, 일단 계획은 1월 중순까지 촬영을 마치고 3월 안에 마무리합니다. 독립 영화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저예산 상업영화로 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서는 몰라도 베트남에서는 상업 영화관 상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여배우가 인지도가 있거든요.

아직 섭외가 끝나지 않아 죄다 말할 수는 없지만 명계남 선생님도 출연합니다. 개런티 없이 차비만 챙겨드리는 정도로요. 의뭉스러운 영감님으로 나와요. 남자 주인공인 경찰한테 사건을 풀만한 실마리를 조금씩 보여주는……. 홍지민 씨도 나오고 <웰 컴 투 동막골>에 촌장님으로 나온 분도 계세요. 정상적인 개런티는 못 드리고요, 나중에 흥행이 이뤄지는 데에 따라서 나눠갖는 이른바 ‘러닝 개런티’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김성태 촬영 감독이 함께합니다.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김 감독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영화제에서는 빛을 내겠지만 상업영화로서는 매력이 없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결혼 이주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영화

영화 <에프 투 원>의 주제는 ‘결혼 이주 여성의 자아 또는 정체성 찾기’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여기로 시집 와 살면서 겪는 고달픔과 서걱거림,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잘 사는 나라에서 왔다면 지금 이런 대접을 받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문(自問)하면서도 여기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잡으려 합니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시부모를 책임지려고 하는 모습이나 의문에 싸인 남편의 사인을 찾아내려 하는 장면이 그렇다고 합니다.

“제작자로서 제 역할이요? 경남을 기반으로 한 독립영화 <조용한 감독>을 만든 김재한 감독이 연출·감독을 맡고 있는데요, 돈이랑 물품 장만이 제 임무지요. 전체적으로 2억 원 정도 예상하는데 지방의원이랑 시민단체들과 함께 노력해 경남은행에서 1억원 지원을 받는 등 1억2500만원 가량 마련했습니다. 현물로도 지원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동서식품에서 커피, 서울우유에서 치즈나 요구르트를 비롯한 간식거리, 창원 현대로템에서는 방한복 등등…….”

왕성하게 활동하는 ‘꽃들에게 희망을’

설씨는 영화 제작이 본업은 아니랍니다. 본업은 ‘꽃들에게 희망을’이지요. 설씨가 ‘희망지기’를 맡고 있는 ‘꽃들……’은 △독거노인 쌀 지원 △저소득 가정 밑반찬 지원 △저소득 가정 자녀 학습 지도 지원 △팔룡시장 어르신 무료 급식 지원 △동네 경로잔치 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1999년 12월 만들어져 올해로 13년째입니다. 여태 활동을 어떻게 벌여 왔는지 아는 이들은 설미정씨가 없으면 ‘꽃들’도 ‘사실상’ 있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본령인 ‘꽃들’은 요즘 좀 어떠냐고 제가 물었습지요.


“추석 앞두고 태풍 왔을 때 쌀 지원을 받으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분위기가 우울했던 것 말고는 별로 다른 게 없어요. 저소득 가정 밑반찬은 화요일 배달하는데 차량 봉사는 한 주에 3명씩 한 달에 12명이 돌아가면서 나서서 해 주시고요. 쌀은 한 달에 1200kg 정도 나갑니다. ‘사랑의 쌀독’인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여기 오셔서 가져가십니다.

동우기계에서 한 달에 150만원씩 쌀값을 지원해 주시고 사파초교에서 한 달에 200~300kg 보태주는데 그래도 모자라 받은 후원금으로 쌀을 더 삽니다. 쌀을 가져가시는 어르신이 100분이 넘는데 더 많아질 것 같아요. 정부 지원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가족 가운데 근로 능력 또는 경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든지 말든지 실제 부양을 받든지 말든지 수급권자에서 빼버리거든요.

자손들이 잘 안 풀리거나 중간에 사업이 망해서 자녀들로부터는 한 차례도 도움을 받지 못한, 그러면서도 정부 사회안전망에는 걸리지 않는, 그런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어요.


후원은 단체, 기업, 개인을 가리지 않고 받습니다. 300명은 훨씬 넘을 거예요. 이걸 제대로 조직·관리하기 위해 사단법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려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담 실무인력 두기이고 다른 하나는 반찬가게 만들기입니다.

실무인력을 두려면 인건비 마련이 필요한데, 법인 이사들이 일부 부담하고 후원금에서 일부 부담하면 될 것 같아요. 자원봉사 회원 관리나 쌀·밑반찬 지원을 전담하는 인력이 생기면 저는 바깥에 나가 후원자 발굴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찬가게는요, 실제 반찬을 팔지는 않아요. 장날 무료급식·경로잔치·김치 1만 포기 담그기 지원을 나가는 팔룡시장을 비롯해 전통시장 서너 곳을 컨소시엄으로 묶어서, ‘상품성은 없으나 먹을 수는 있는’ 어물이나 채소 등을 지원받아 반찬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 반찬 나눔 가게’라고, 이름까지 지었어요. 장소는 가까이 경남장애청소년문화교육진흥센터(원장 김인식) 교육장을 쓰기로 얘기가 돼 있고요.

지금은 동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께 쌀만 드리는데, 여기에 3찬을 더해보자는 포부입니다. 쌀과 밑반찬과 간식거리를 통합하고 확장하자는 얘기입니다. 법인은 내년 5월부터는 본격 업무 수행이 되도록 할 작정입니다.”

보통은 이런 활동을 하면 사람들이랑 부대끼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기대가 같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기가 십상이라고들 하는데, 설씨한테는 어떤 어려움이나 고달픔이 있을까요?

“해 드릴 수 있는 지원은 5인데 지원 받으시는 분이 요구하는 눈높이는 8 정도 되는 경우지요. 쌀의 질을 일정하게 맞춰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름이면 여러 군데서 모아오는 쌀의 품질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드릴 수 있는 양도 들쭉날쭉하지요. 그러다 보니 받는 분 처지에서는 섭섭하고 속이 상하고 하시나 봐요.

정부나 자치단체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품질이 떨어지는 쌀이지만 그 또한 지원 받은 것이라 어쩔 수 없다, 다 맞출 수가 없다, 이렇게 미리 말씀드리지만 항의나 푸념을 듣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미를 주세요, 찹쌀을 좀 섞어 주세요, 많이 주세요, 햅쌀로 주세요, 쌀 말고 다른 것 주세요, 선물로 줄 다른 것 없나요? 등등 요구 또는 주문이 많은데 여기 다 맞춰드리지 못하니까요. 물론 드릴 선물이 있다든지 하면 드립니다.

경남발전연구원 이은진 원장은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빠지지 않고, 본인이 받기는 했으나 돌려주기는 어려운 선물들을 차곡차곡 챙겼다가 갖다 주십니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석영철·여영국 경남도의원, 김석규·노창섭 창원시의원도 그렇게 하십니다.”


나눔을 통해 달라지는 사람들 모습

이렇게 보면 ‘꽃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곳이라기보다는 선의(善意)가 모이는 공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 착한 뜻을 나누고 붙이는 사람이 바로 설미정씨고요.

“그렇지요. 지역사회 안에 우리 공간이 자리잡고 있어요. 함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사랑의 쌀독’도 2006년 사파초등학교와 결연하면서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쌀을 모아주지 않았으면 도중에 접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으로 하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어떤 경우는 부모님이 모은 쌀을 갖고 ‘꽃들’ 사무실로 찾아오시기도 해요. 아이가 내는 시기를 놓쳐 내지 못했는데 많이 속상해한다면서요.”

‘꽃들’이 하고 있는 일은 나눔운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구·쟁취운동을 주로 하는 이들에게 나눔운동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책무를 대신하는, 별것 아닐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늦추는 구실까지 한다고 비치기도 한답니다.

“요구도 함께합니다. 근본 문제에 대한 지적과 비판도 해요. 이 일을 하다 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제대로 선정되지 못하는 사례를 많이 알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활동을 하면서 사람이 바뀌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꾸욱~ 참고 보내요~~~’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그런 것 다 참고 돈을 보낸다는 얘기입니다. 생활 속에서 갈등은 하지만, 내 것이지만 혼자 쓰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이기적인 사람이나 성향이 계산적인 사람도 바뀌어 나갑니다.


팔룡시장 어르신 무료급식에서 4년째 한 번도 빠짐없이 설거지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그 분 친구들을 감동시킵니다. ‘시간이 되면 같이 가 줄게’ 하지요. 이렇게 강남 가는 친구 같이 따라가는 식으로 하다가 나중에 보면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덤을 나누다가 나중에는 자기것까지 나누게 되면서 얻는 충만함이지요. 무엇을 두 손으로 움켜쥐기보다는 푸는 게, 풀어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술 마시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사람

설미정씨는 부산에서 살다가 1996년 창원으로 왔습니다. 아버지 직장이 창원으로 옮겨오면서 뒤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창원은 부산과는 완전 다른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부산서 대학을 마치고 부산민주청년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창원에도 오자마자 마산·창원민주청년회에 가입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제가 원래 요구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나눔형이었지 싶어요. 대학 생활 5년에 그런 아쉬움이 있고요. 하고 싶었던 것이 공동체 부분이었어요. 친구들이 현장 노동자로 가든 학교에 남든 시민운동을 하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알콩달콩 같이 지내고 싶은 삶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아버지 집이 사파동에 있었고 그 때 사파동 출신으로 정동화 창원시의원이 활동하시고 있었어요. 정동화 의원을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운동 형태도 청년회 활동을 벗어나지 못했겠지요. 지역 주민 속에서 주민과 함께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거다!’ 하게 됐습니다. 부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거든요.

또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제가 사는 사파동성아파트 안에 마을 도서관을 만든 것도 제게 쏟아진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거기서 동네 소식지를 만들고 이런저런 모임을 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갔지요. 이런 게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미정씨는 직업이 과외 선생님입니다. 교육청에 등록돼 있고 세금도 꼬박꼬박 낸답니다. 수학을 주로 가르치지만 수학만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사람됨을 더 크게 본다는 말씀입니다. 학부모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사회 활동으로 수업을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 아시라고, 그렇다고 보충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면서 술 마시기를 즐깁니다. 그이 취미라지만 취미가 아닌 특기라 해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술자리는 그이에게 사람이 사람과 통하는 공간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저랑 술을 마신 지도 참 오래 됐네요. 어찌어찌 살다 보니 그리 됐습니다요. ㅎㅎㅎ

“술 마시기를 무척 즐기지요. 술자리는 제게 공사 구분이 없는 자리예요. 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하지요. 한 때 공사 구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분류가 없어졌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꽃들’ 후원자도 많이 만들고 또 후원자들과 마시는 자리도 많아요.

물론 좋은 사람들과도 많이 마시고요. 구분이 없습니다. 좋아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해서 ‘한 잔 하고 싶다’ 해서 만납니다. 최근 그렇게 만나 술을 같이 마신 이가 김갑수 민주통합당 창원의창 위원장이었습니다. 하하.” 김갑수는 좋겠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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