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나는 문재인에게 실망할 준비가 돼 있다

김훤주 2012. 12. 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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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실망을 하지 않는 방법은 뜻밖에 아주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두고 실망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이명박 지금 대통령한테 전혀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2008년 5월 이른바 ‘촛불 사태’가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이에게 조금은 기대를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람이고 귀가 있고 머리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 저리도 아우성치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신경 써서 듣고 생각하겠거니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이는 다른 사람들 말과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예 생각이 달랐고 알아들을 귀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때는 이명박 선수와 이명박 정부를 두고 이런저런 비판을 조금 했지만, 그래 봐야 입만 아프다 싶어서 점점 하지 않게 됐습니다.

1. 이명박 대통령한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

이명박 선수. 뉴시스 사진.


그이 반응은 대체로 엉뚱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촛불 말고도 보기를 하나 들자면, 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면 된다고 대꾸하는 식이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렇게 눈높이를 낮춰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집단으로서 청년 전체의 실업 문제를 그런 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나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저는 이런 견해를 두고 제 생각을 밝히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MB 일당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http://2kim.idomin.com/1261)”가 제목입니다.

그 글을 쓴 때가 2009년 11월 29일인데요, 그 뒤로는 정말 이명박 선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어져서 비판할 생각이 아예 들지가 않았습니다.(칭찬은 더욱 그랬고요.) 비판이든 비난이든 조금이라도 기대가 있어야 할 수 하는데 그것이 하나도 없어져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2009년 12월부터 여태껏 쓴 글 가운데 이명박 선수를 대상으로 삼은 바가 있는지 한 번 검색해 봤더니 딱 하나뿐이더군요. “가시박과 이명박 대통령 닮은 점 네 가지(http://2kim.idomin.com/1728)”가 그것입니다. 그 뒤로는 ‘이명박’을 진짜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2. 재벌·부자 증세 없이 복지를 하겠다는 박근혜 후보

저는 이번 대선에 새누리당 당적으로 나선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선수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 이익은 생각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긴다든지 하는 보기는 매우 많습니다.

박근혜 선수. 뉴시스 사진.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그대로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비롯한 과거 역사 관련 인식도 그렇고 정수장학회 관련도 그렇고 영남대학교 재단 관련도 그렇습니다. MBC·KBS 등등 숱한 언론 장악 관련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저런 복지 관련 공약에 대해서도 저는 같은 생각을 합니다. 복지의 기본 정신인 보편을 무시한 선별적 복지인 점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신문·방송·통신에서는 이를 두고 무어라 하든, 제가 보기에는 그런 공약을 뒷받침하는 비용을 어디에서 대느냐가 아주 믿지 못하겠습니다.

복지 관련 재원(5년 동안 135조원)을 ‘지하경제를 활성화’해서 대겠다는 말은 실수라 치더라도, 이미 있는 전체 예산 가운데 낭비성이거나 불요불급한 부분을 아껴서 대고(60%=81조=한 해 16조2000억원), 나머지는 세원(稅源) 확충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한 해에 16조원을 웃도는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말도 쉽게 믿기지 않지만(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낭비성 또는 불요불급한 예산이 지금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세원 확충 부분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박근혜 선수는 부자들, 재벌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1대99인 세상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 1%에 해당하는 부자들 재벌들에게서 세금을 걷지 않으면 어디에서 그만큼 더 걷겠다는 얘기인지요?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99%에 해당하는 영세자영업자나 이른바 ‘유리 지갑’이라는 봉급생활자들을 쥐어짜겠다는 것인지요?

그래서 저는 박근혜 선수에 대해 전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이가 내세운 이런저런 공약을 그이가 지키리라는 생각은 아예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절망(絶望)이 되겠습니다. 절망은 희망이 없어짐입니다. 이러니 자연히 기대가 자라날 수 없고 따라서 그이가 잘못해도 실망할 건덕지가 있지 않은 셈입니다.

3. 그러면 문재인 후보는 어떨까?

문재인 선수. 뉴시스 사진.


하지만 민주통합당 당적인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문재인 선수를 두고 여러 차례 비판하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올해 10월 2일 썼던 “문재인 보면 천성산 지율스님이 생각난다(http://2kim.idomin.com/2267)”가 최근 것이군요.

하지만 그래도 문재인 선수는 말귀가 열려 있고 다른 사람 생각도 할 줄 안다는 점에서 박근혜 선수와 다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 있으면서 길거리에 나앉아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관통 저지’를 위해 목숨 걸고 단식하던 지율 스님을 찾아가 만난 데서도 그런 사정이 조금은 짐작된다고 저는 봅니다.(물론 지율 스님은 저랑 생각이 조금 또는 많이 또는 완전히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서 저는 문재인 선수에 대해서는 적으나마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는 문재인 선수에 대해 실망할 준비도 돼 있습니다. 어쩌면 문재인 선수가 자기 공약을 지키고 실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싶으면서도 다르게는 지키고 실현하지 못할 개연성이 더 크겠다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는 문재인 선수가 재벌·부자 증세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 대목에 나름 기대를 합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그이 스스로가 (노무현 정부를 허랑 구덩이에 빠지도록 만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그리고 성장지상주의를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과 조건 또한 그런 공약 실현에 엄청난 방해가 되리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한 사람은 절망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실망입니다. 절망이든 실망이든 그것이 제게 주어졌을 때 받아들이면 그만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 또한 사람인지라 절망인 세상이 더 나은지 아니면 실망인 세상이 더 나은지를 나름대로 가늠해 보고는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쨌든 투표는 꼭 합시다. 지금 국면에서는 말로써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 말 없이 투표소에 가서 꾸욱 찍어 주는 것이 으뜸 방책입니다. 저는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투표를 할 요량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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