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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예술촌에 가면 라상호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라상호 작가는 자기가 머무는 거처 안팎을 모두 두루 꾸미고 가꿀 줄 아는 예술인이었습니다. 옛 시민극장 뒤편 건물 2층에 있는 그이의 공간 '마산르네상스 포토 갤러리'는 내부도 깔끔했지만 들머리 바깥쪽도 남달랐습니다.
갤러리 안팎을 성심껏 꾸미는 라상호 작가
길바닥에는 건물 2층에 사진 갤러리가 있다는 표시를 해뒀고, 들어오는 양쪽으로는 화초가 담긴 화분을 주렁주렁 매달아 싱싱한 느낌을 주면서 눈길도 끌었습니다. 창동예술촌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렇게 산뜻한 느낌을 안고 들어선 2층 갤러리. 아래쪽 투명한 상자 안에는 오래 된 카메라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습니다. 함께 찾은 블로거 보라미랑님은 여기 있는 카메라들을 라 작가가 어떻게 해서 모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라 작가는 말했습니다. "일부러 모았어요. 몇 십 년 동안 계속이요. 그래서 지금도 그대로 꺼내 쓸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물론 고장이 나서 쓸 수 없는 녀석도 많지만요." 쓰려고 사기보다 모으기 위해 샀다니 여기에 들어간 돈도 예사롭지 않게 많았겠다 싶었습니다.
찾아온 블로거들을 위해 커피를 끓여주는 라상호 작가.
갤러리에 전시된 사진 작품들도 꽤 단정했습니다. 미얀마나 네팔 같은 나라에 가서 찍어온 사진입니다. 라 작가는 주제가 '평화'라고 했습니다. "불교 나라라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욕심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평화롭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 평화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평화와 재산이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가진 바가 많을수록 평화와 거리가 멀다는 것 또한 제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 작가의 이런 얘기가 새삼스럽지야 않지만 그래도 작품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느낌은 새삼스럽습니다.
전시된 사진들. 웃고 있거나 넉넉한 인상이 많습니다.
여기 사진들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이들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탁발하러 거리로 나서는 이들 나라의 스님들 행렬, 그리고 서로 마주 쳐다보거나 따로 쳐다보는 이들의 눈망울이 말 그대로 평화롭기만 합니다.
모두가 시민과 소통을 위한 노력
창동예술촌에 들어와 사는 그이의 바람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창동예술촌을 비롯해 창동과 오동동 일대를 꽃으로 덮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는 지금 그이가 갤러리 들어오는 통로에 매달아놓은 화분이랑 관련이 있지 싶습니다. 그이는 자기의 조그만 시도가 창동·오동동에서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블로거들과 얘기 나누는 라상호 작가.
블로거 거기뭐야님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라상호 작가.
다른 하나는 창동예술촌을 찾는 이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퍼지면서 사진관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는데, 이 사진관을 문화콘텐츠로 재생해 여기를 찾는 사람에게 가족 사진을 비롯해 여러 개성 있는 사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얘기였습니다.
라 작가는 지금 주어진 공간이 비좁다는 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런 작업을 하기에는 좀 작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 모두 교육할 수 있다고도 했는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암실까지 갖춰야 할테니 작기는 하겠습니다.
암실 체험도 하게 하고 필름카메라 아날로그 현상도 몸소 해 보게 하면서 현상법을 터득하게 되면 디지털 카메라를 제대로 찍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찍어놓은 그이의 사진 솜씨가 부럽기는 했습니다.
라 작가가 말하는 사진 잘 찍는 방법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라 작가는 자기 얘기를 해 줬습니다. "'피사계 심도'를 깊게 합니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피사계 심도를 깊게 하면 초점이 맞는 범위가 넓어진다고 합니다. 초점을 좁혀서 자기가 돋보이게 하고 싶은 부분만 뚜렷하게 보이고 나머지 부분은 흐릿하게 처리하는 수법과는 반대인 셈입니다.
본인이 가장 아낀다는 사진 앞에서 작품을 찍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라 작가.
그러면서 이어갑니다. "그렇게 하면 필요치 않는 것들도 앵글에 다 담깁니다.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도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테마(주제)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정해진 주제를 돋보이게 하려고 재주를 부리지 말고, 대신 주제를 강력하고 뚜렷한 것으로 잡아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이는 그러면서 갤러리 벽에 걸려 있는 자기 사진 가운데 두 개를 골라 보기로 삼아줬습니다. 하나는 먹을거리를 머리에 인 소녀고 다른 하나는 그림자를 길게 끌면서 탁발하러 나가는 스님의 행렬입니다.
피사계 심도가 얕은 사진.
피사계 심도가 깊은 사진.
소녀 사진에서는 머리에 올려져 있는 것과 소녀 얼굴 말고는 모두가 희미해져 있습니다. 반면 스님 탁발 행렬은 그림자도 있고 빛도 있고 멀리와 가까이 늘어져 있는 나뭇잎도 있고 어린 스님 돌아보는 눈동자도 있습니다.
소녀 사진에서는 배경이 모두 흐릿해져 있기에 그것을 보는 사람 눈길이 절로 뚜렷한 얼굴 중심으로 쏠릴 수밖에 없겠고, 얼핏 보면 탁발 행렬 사진은 이와 달리 그것을 보는 사람 눈길이 여러 갈래로 흩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 작가 말씀 그대로 주제가 아닌 다른 것들도 자기 형태를 잃지 않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스님 행렬로 눈길이 모이는 것을 흩어놓을 정도는 절대 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찍을 수 있도록 연습을 하면 좋겠다, 정도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유익한 얘기였습니다. 특정 국면에만 필요한 그런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고 주제를 고르는 자세 또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더욱 좋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란히 함께 서 있는 청년은 아들입니다. 마찬가지 사진을 한다고 했습니다.
사진 작품이 매매 대상인 줄 모르는 사람
이와 성질은 다르지만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창동예술촌 구경을 왔다가 여기 갤러리를 호기심에 들어와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사진 작품도 돈으로 사고 파는 매매 대상인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손전화에도 카메라가 달려 있을 만큼 사진과 사진기가 넘치는 탓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예술로서 사진과, 예술로서 사진의 값어치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으니 한편으로 씁쓸한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왜냐고요? 앞서 전해드릴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2008년 12월 연말 라상호 작가를 비롯한 여섯이 모여 사진 판매를 전면에 내걸고 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이름을 작가들은 이렇습니다. 김관수·손묵광·손형찬·조성제·김일창(특별찬조).
사람들이 파는 것인 줄도 모르는 사진을 이들이 나서서 팔려고 했을까요? '이름과 처지는 남부끄러워서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지만, 사진계 원로 선배의 처지가 하도 딱해서' 십시일반으로 사진을 모아 팔려고 나섰던 것입니다.
당시 출품했던 라상호 작가 작품. '히말라야 랑탕'.
전시를 기획했던 김관수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은 당시 "사진계 원로를 보는 순간 나중에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사진작가들 사진이 사고파는 대상이라는 생각조차 못한다니, 작가들 사정이 당장 나아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지요.
그래도 라 작가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주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자기 작품 세계를 많이 알리고 서로 이해하는 정도를 넓혀나가면 좋겠다는 취지로 읽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는 듯도 보였습니다.
많이 찾아갑시다. 왼편 위쪽 네모 상자에 마산르네상스 포토갤러리가 적혀 있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 의도된 목적이나 까닭없이 사람들이랑 이리저리 뒤섞이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라 작가가 자기 갤러리에 왔다가 일없이 돌아서 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또 와 주세요'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말씀입니다.
라상호 작가는, 9월 22일 창원시가 후원 경남도민일보 주최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주관으로 치러진 '창동예술촌 블로거 팸투어'에서 보라미랑님과 오스틴님과 막소주님과 거기말야님과 함께 팀을 이뤄 처음 찾아간 예술가였습니다. 라상호 작가 010-3581-7997.
방명ㄺ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블로거 보라미랑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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