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문재인 보면 천성산 지율스님이 생각난다

김훤주 2012. 10.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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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 국면에서 김두관 선수가 자신을 친노와 구분지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선수는 조선일보와 7월 18일 한 인터뷰에서 김두관이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했음을 들어 '김두관은 친노 코어(core·핵심)'라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문재인 선수는 무엇일까요?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 바로 옆에서 수행을 했고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과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 자리를 오랫동안 누렸으니 '문재인은 친노 코어 가운데서도 코어(core of cores)'가 되겠습니다.

친노 코어 오브 코어스 문재인

이런 친노 코어 오브 코어스를 보면 저는 지율스님과 천성산이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그이는 2002년 10월 대선 국면에서 지율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와 환경단체들이 요구했던 고속철도의 천성산 관통 노선 재검토를 받아들여 공약으로 채택합니다.


바로 이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부산불교회관입니다. 가운데에 노무현 선수가 앉아 있고 그 왼쪽에 본존 부처님 협시보살처럼 문재인 선수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에 지율스님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지율스님이 무슨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일러주는 물증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노무현 대선 공약으로 올라간 뒤 지율스님을 비롯한 불교계는 '재검토'를 포함한 노무현 후보의 불교계 10대 공약을 조계종 이런저런 절간과 스님들에게 알리고 홍보물을 뿌렸습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노무현 선수의 대통령 당선에 작으나마 보탬이 됐겠지요.

그러나 지율스님의 바람은 곧바로 무너집니다. 지율스님이 견뎌야 했던 노무현 정부 5년은 참담과 끔찍 그 자체였습니다. 오히려 2002년 12월 18일 노무현이 당선된 며칠이 지율스님에게는 즐거운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꼬인 노무현 정부의 노선 재검토


노선을 재검토하려면 그에 앞서 진행하고 있는 공사부터 중단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중단'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재검토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스니다. 그래서 지율스님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인 2003년 2월 5일 단식에 들어갑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줄곧 이어지는, 다섯 차례에 이르는, 그리고 300일 넘는 그 끔찍한 천성산 터널 관통 관련 지율스님 단식 사태의 시작이라고는 지율스님 자신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만.

지율 스님의 단식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3월 7일 '재검토 지시'를 이끌어냅니다. 고속철도 해당 공사 발주 중단은 나흘 뒤인 3월 11일 이뤄졌습니다. 지율스님 단식은 38일만인 3월 15일 중단됩니다.

그리고 노선재검토위원회가 5월 12일 구성됐는데, 여기에 지율스님은 빠져 있었습니다. 이 노선재검토위원회는 넉 달 남짓 뒤인 9월 19일 노선을 '재검토'만 하고 원안대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율스님의 요구는 이렇게 무너져 내렸고 뒤이어 두 번째 단식이 이어졌습니다.(10월 5일~11월 17일)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 없이 치러진 노선 재검토


노선재검토를 요구한 지율스님은 딱 하나만 바랐습니다.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원칙에 따라서 바라보면, 지율스님의 이 바람은 매우 정당합니다. 노선을 재검토하려면 지금 노선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데 당시 이뤄져 있던 환경영향평가는 결론이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었거든요.

그러나 그 환경영향평가는, 나중에 법원에서도 인정이 됐는데, 부실 덩어리였습니다. 도룡뇽이라든지 끈끈이주걱·황조롱이·삵·수달 같은, 천성산에 실제 살고 있는 수많은 희귀동식물이 조사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법원에서조차 인정된 사실인데 편법으로 얼룩져 있기도 했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유효기간은 당시 7년이었습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환경영향평가는 1994년 6월 있었으므로 7년이 되는 2001년 6월까지 착공하지 않았다면 새로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실제 착공한 시점이 8년이 되는 2002년 6월이었으니 앞선 환경영향평가가 효력이 없는데도 새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환경영향평가를 새로 해야 하는데도 이 당연한 요구를 요구하는 지율스님의 요구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환경영향평가만 제대로 이뤄져서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온다면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겠다고 지율스님이 말했는데도 말씀입니다.

물론 2005년 8월 30일부터 11월 29일까지 석 달 동안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하긴 했지만-그것도 지율스님의 단식에 밀려서- 결과를 놓고 보면 눈속임이었을 따름입니다. 조사는 공동으로 했지만 보고서 발표는 제각각 한 데 더해 당시 진행되고 있었던 법원 판결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시점에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에게 천성산 지율스님 관련 책임이 크다

저는 여기에 문재인 선수가 책임져야 할 구석이 크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선 재검토를 공약으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선수가 크게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뒤 대통령 비서실에 있으면서도 크게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단식을 하고 있는 지율스님을 두 차례나 찾았다는 사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찾아와 갖고 하는 말은 대체로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스님께서 양해하시라"였습니다. 관계장관대책회의에도 참여한 친노 코어 오브 코어스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고 저는 봅니다.

2004년 8월 24일입니다. 동아일보 사진입니다.


그리고 어째서 어쩔 수 없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환경영향평가가 부실이고 편법·불법이었는데, 그 부실과 편법·불법을 대통령조차도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믿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굳세고 철학이 튼튼하게 받침이 됐다면 토목족들의 저항 또는 반대를 넘어설 수 있었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그런 행태를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선수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선을 위해 써먹었다가 당선되고 나서는 여러 이해 관계가 얽혀 복잡하고 귀찮으니까 집어던져 버렸다는 얘기입니다.(물론 노무현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에 대한 문제제기도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재검토 공약을 어기지 않았다는 인식이 더 큰 문제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문재인 선수가 이런 노선 재검토(또는 원안 노선 백지화) 공약에 대해 철부지 수준으로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선수는 지난 6월 이 문제에 대해 '(노선 재검토) 공약을 어기지 않았다'고 우긴 모양입니다.

2003년 5월부터 9월까지 넉 달 남짓이나 노선'재검토'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노선을 '재검토'했고, 하지만 그 결과 원안 노선 말고는 다른 대안 노선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와 그렇게 했을 뿐이니 공약 위배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묻습니다. 노선 재검토의 근거는 무엇이었습니까?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바로잡는 새로운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노선 재검토를 할 수 있습니까? 정치적·금전적으로 재검토를 했다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공사를 한참이나 진행해 버린 한국철도시설공단 손을 들어주는 요식행위 이상으로 볼 수가 있을까요?

사정이 이렇습니다. 잘못 그 자체는 어쩌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든 단체든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잘못은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앞서 저지른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큰 일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음에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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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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