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역사 체험단을 꾸리는 일곱 가지 까닭

김훤주 2012. 8.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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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가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고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를 만들었습니다. ‘해딴에’라는 말은 아시는대로 ‘해가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경상도 지역말입니다. “미루지도 말고 서두르지도 말고 지금 바로 여기서 누리고 배우고 즐기자”는 의지를 이 ‘해딴에’라는 낱말에 담아 봤습니다.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는 지역의 사람과 자연과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지역의 자연과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누리고 배우고 즐기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지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체험단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 8월에 시작하는 제1기 역사체험단은 한 달에 한 차례씩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경남에 있는 자연과 문화·역사를 찾아갑니다. 한데 어울려 놀고 먹고 배우고 하면서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우고자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얻게 되는 지식은 덤이랍니다.


1.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부대낀 느낌은 평생을 갑니다


여고 3학년이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역사 과목을 외우지만 이 친구는 머리에 그림을 그립니다. 예전에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그림은 내용이 아주 풍성하답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충남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배울 때 다른 아이들은 국보 제9호이고 백제 석탑의 전형이며 목탑(木塔)의 자취가 남아 있다 따위를 외우지만 이 친구는 나아가 몸통이 좁다랗고 몸돌은 넓지만 얇더라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과 견주면 더욱 그런 사실이 뚜렷해진다고도 생각합니다. 정림사지는 5층이지만 불국사는 3층이더라는 비교도 합니다. 그리고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너머로 붉은 빛깔로 그윽하게 지는 해도 떠올립니다.


감성이 풍부한 그림이 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해가 산 너머로 지는데 반해 여기 해는 들판으로 지더라는 기억을 생생하게 해냅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어버이는 딸이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절간과 문화재를 찾아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위와 같은 해넘이를 구경하고 있는 아래 사진 속 아이들.


2. 문화역사와 자연생태가 서로 맞물려 있음을 알면 사람이 풍성해집니다


인류 역사에서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장소는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바닷가 아니면 강가로 물이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은 한꺼번에 밀려들면 엄청나게 위험한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닷가의 경우는 안으로 오목하게 생긴 데를 찾아들었고 강가의 경우는 본류가 지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물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어서 다른 많은 동물이나 식물도 풍성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거리가 동시에 해결됐습니다. 게다가 물이 풍성하니까 물길을 따라 사방팔방 배를 타고 교통을 하기도 쉬웠습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사람들은 삶을 꾸려나갔고 자기네 삶을 위해 자연을 가꾸고 또 길들였습니다. 그렇게 살아나가는 방법을 일러 문화라고들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 삶(문화)이 자연생태와 어우러지면서 켜켜이 쌓이면 역사가 됐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고 문화와 역사와 생태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역사와 자연생태의 이런 기본 관계를 알게 되면 어느 하나에 편벽되게 매달리는 옹졸한 태도가 없어집니다. 자연이 살아야 사람의 삶도 풍성해진다는, 제대로 된 문화와 역사는 훌륭한 자연 생태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긴 호흡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3.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해야 새로운 DNA(유전자)가 새겨집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체험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되풀이함으로써 습관이 되도록 해서 몸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사람의 몸과 마음은 그것을 곧장 까먹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말씀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도 바로 그런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배움(學)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익힘(習)은 가볍게 여깁니다. 우리 제도권 교육의 가벼움과도 관련돼 있겠지만, 당장 눈앞 성과에 매달리는 사회 풍토도 영향을 끼친다고 하겠습니다.


역사체험을 단발로 마련하지 않고 여섯 차례를 한 모음으로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게다가 머리로만이 아니라 함께 다니고 걸으면서 온 몸의 세포를 열어 익힙니다. 이런 반복 체험을 통해 한 번 익혀 놓으면 평생토록 마르지 않는 재산이 되고 지식이 됩니다.


4. 다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체험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 세계도 옛날과 달리 무척 각박하다고 합니다. 가족의 두께는 오래 전에 얇아졌습니다. 학교나 학교에서도 친구는 사라지고 경쟁자만 남았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돕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공격적이 됩니다.

공산성


그러나 역사체험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너 사람씩 모둠을 지어 초등학생과 중학생, 낮은 학년과 높은 학년이 골고루 섞입니다.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자연생태 문화역사 체험 현장을 찾아 걸어갈 때도 모두 그렇게 합니다.


역사체험단의 모둠은 전혀 경쟁 관계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들 친해지게 돼 있습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서로에 대한 서로의 배려와 보살핌은 서로에게 믿음과 존중을 싹트게 합니다. 날마다 경쟁해야 하는 아이들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오아시스를 만나야 좋지 않을까요?


5. 앎은 관심을 낳고, 관심은 사랑을 키웁니다


언제부터인가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자리를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됐습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가야 하고 지금보다 더 크고 더 넓고 더 먼 곳이 더 좋은 데라고 여기게 됐습니다.


그러나 나고 자란 곳은 인간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도 알고 보면 매우 굵고 깊고 튼튼합니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다른 지역을 알고 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그 못지 않게 자기 자리를 제대로 살펴보고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경남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아이들의 생각을 깊고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형성되는 지역에 대한 앎은 관심을 낳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앎과 관심은 소중함에 대한 인식으로 발전해 자기 고장에 대한 애정을 키우게 됩니다.


6. 관심과 사랑은 표현 욕구로 이어지고 그러면 글쓰기는 저절로 됩니다


지역에 대한 앎도 그렇지만 거기에 관심이나 사랑까지 더해지면 자기자신의 앎과 관심과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학부모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글쓰기도 절반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글을 쓸 능력이 없는 것에 앞서서 글을 쓸 거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교·학원만 만날 오가고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 보니 글을 쓰도록 해도 쉽게 지치고 짜증을 냅니다. 하지만 다른 풍부한 경험을 하면 아이들은 글도 말도 좀 더 잘하게 됩니다.


다니며 함께했던 친구 이야기, 새롭게 알게 된 역사 이야기, 보고 느꼈던 이야기를 스스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역사체험을 하면서 그날그날 듣고 보고 누린 내용을 글로 정리하도록 해서 사고력도 함께 길러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7. 게다가 요즘 학교 성적은 영·수·국이 아니라 사회탐구에서 판가름 난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은 아니지만 시절이 이러하니만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여기시고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대학 입시를 위해서도 역사체험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영어·수학·국어 같은 주요 과목은 비슷한 수준에서는 성적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답니다. 어지간해서는 다들 학원에 다니기에 차별화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주요 과목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탐구에서 내신 등급이 판가름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다양하게 쌓은 역사 체험 활동이 사회 탐구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의 제1기 역사체험단, 창원과 진주 둘로 나눠서 8월부터 진행합니다. 문화유산답사와 해설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이 이끌고 현직 기자가 동행해 그날그날 글쓰기에 도움을 줍니다.

강충관 선생


문화유산답사가 강충관 선생님은 영남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미학미술사학과를 수료했으며 경주대 대학원 문화재학과를 중퇴했습니다. <대학신문연합>에 문화재 관련 기사를 연재했고 포항 MBC 프로그램 <영일만>에서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문화재청 산하 비영리민간단체 1호인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에서 1995년부터 활동해 오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지역신문 문화부에서 기자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95년부터 마산·창원·진해 지역의 비영리 민간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살아 있는 역사 공부를 해왔습니다.


제1기 역사체험단 프로그램은 이렇습니다. 많은 관심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역 사회를 좀더 풍성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보람이 없겠습니다. 블로그에서 비밀 댓글로 신청하셔도 되겠습니다.


김훤주
※2007년 1월 강충관 선생님이 창원 민들레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한 '오백년 백제 미소를 찾아서' 역사 체험 프로그램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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