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그리고 진주냉면

기록하는 사람 2012. 7. 1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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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입맛과 식성은 아마도 성장 과정에서 결정되는 요인이 클 것이다.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면서 각자 자기 입맛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나는 경상도, 그 중에서도 남해군에서 태어났다. 대체로 남해안 지역은 음식 맛이 짜고 자극적이다. 초중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보냈다. 부산 음식도 짜고 자극적인 건 남해와 비슷할 것이다.

내가 냉면을 처음 먹어본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듯하다. 그게 냉면이었는지 밀면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밀면보다는 냉면이 좀 더 질겼다는 기억은 있다. 맛은 거의 비슷했던 것 같다. 돌돌 말아올린 면 위에 여러가지 고명을 얹고 빨간 양념장과 시원한 배, 그리고 삶은 계란 반토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 말고도 토마토 한 조각이 있었던 적도 있다. 지금으로 치면 중국집 냉면 비슷한 거다.

그 후 정말 냉면이 맛있다고 느꼈던 적은 1998년(또는 1997년) 중국 옌변조선족자치주 옌지 시의 북한 냉면집이었다. 북한 정부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들었는데, 아마 2~3층까지 있는 큰 식당이었다. 냉면의 종류도 서너 가지쯤 됐다. 가장 비싼 걸 시키니 큰 세수대야만한 그릇에 면과 육수를 담고, 거기에 넣어먹는 고명은 따로 담아 나왔다. 자기 입맛대로 고명을 넣어먹어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때 먹은 북한식 냉면은 그간 내가 먹어본 냉면 중 최고였다. 그 후 국내(경남 일대)에서는 북한 냉면집의 그 맛을 능가하는 냉면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맛있는 냉면에 대한 갈구가 항상 잠재해 있었다.

진주냉면


그러다 진주냉면을 먹었는데, 그나마 옌지에서 먹었던 북한냉면 맛과 어느 정도 비슷했다. 하지만 수 년, 아니 10여 년이 지난 뒤였으니 진짜 비슷한 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는 것 뿐이다.


진주냉면이 특이한 것은 육전을 얹어준다는 것이다. 쇠고기를 전으로 부쳐 그걸 가늘게 썰어 주는데, 냉면을 먹는 동안 고기를 둘러싸고 있는 밀가루 전이 슬슬 퍼지면서 부드러워지고 나름 고소한 맛을 낸다. 그것도 내 입맛엔 나쁘지 않았다.

을지면옥 냉면


2년 전 우연히 서울에서 을지면옥을 먹게 됐다. 냉면을 먹기 전 편육(돼지고기 수육)을 먹게 됐는데, 고기도 탱글탱글 맛있고 찍어먹는 소스도 희한하게 입맛을 자극했다. 너무 맛있어서 두어 접시 더 시켜먹었던 것 같다. 그 후 냉면이 나왔는데, 맑은 육수에다 흰색에 가까운 면이 특이했다. 게다가 고춧가루를 뿌려주는 것도 낯설었다. 면은 별로 질기지도 않고 퍼석한 느낌이었다.


맛은... 그야말로 '니맛 내맛도 없는 닝닝한 맛'이었다. 이게 서울에서 그렇게 유명하다고? 영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실망이었다.

을지면옥의 편육


그런데 이상했다. 날이 지나면서 자꾸 그 집에서 먹은 편육과 닝닝한 냉면이 당기는 것이다. 사실은 냉면보단 편육이 더 생각난 것이지만, 냉면도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을지면옥 편육과 소스. 새우젓도 준다.


이후 서울 출장길에서 다시 을지면옥을 찾았다. 그날도 둘이서 낮술에 편육을 세 접시나 먹었다. 물론 냉면도 먹었다. 하지만 그날도 냉면이 그다지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세 번째였다. 이번엔 을지면옥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필동면옥을 찾았다. 거기도 편육이 있었는데, 메뉴판에는 '제육'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가격은 을지면옥과 같은 1만 4000원이었다. 하지만 제육(편육)은 을지면옥보다 좀 못한 느낌이었다. 냉면은? 순전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면이 좀 탱탱하고 쫄깃했다. 육수는 별 차이가 없었다.

필동면옥 제육


다음날 다시 을지면옥에 갔다. 역시 편육은 을지면옥이 최고였다. 면도 처음 먹을 때보다는 은근히 감칠 맛이 있었다.


이렇게 사람의 입맛은 서서히 변할 수도 있구나 싶다. 언제 기회가 되면 진짜 북한 냉면을 다시 맛보고 싶다. 그것과 을지면옥, 필동면옥, 진주냉면을 제대로 한 번 비교해보고 싶다.

을지면옥 메뉴판

필동면옥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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