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모산재 영암사지

김훤주 2012. 5. 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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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가회면 들판은 싱그러웠습니다. 그 자리 그대로인 황매산 모산재는 한껏 웅장했습니다. 또 그 아래 들어 앉은 영암사지는 마음껏 씩씩했습니다.

4월 18일 수요일, 주말에 비가 오신다는 소식에 이틀 앞당겨 떠난 생태·역사기행이었습니다. 이날 나들이에서 자연이 주는 즐거움과 역사가 주는 상상력을 사람들은 무한 팽창으로 통째 누렸습니다.


모산재는 돌로 이뤄진 산이고 그 아래 있는 영암사지 또한 돌로 지은 유적들이 남은 자리입니다. 자연의 돌과 인공의 돌이 봄날 따뜻한 가운데 어우러졌답니다.

모산재.

영암사지 들머리 벚꽃.


인공의 돌은 부드러우면서 따뜻했습니다. 들머리 삼층석탑은 아담하고 금당터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위태로울 정도로 날렵합니다. 통돌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면 삿됨을 쫓는 괴수가 축대에 돋을새김으로 들어서 있습니다.

영암사지 금당터.


앞자리 석등을 떠받친 쌍사자의 엉덩이는 탱글탱글 보드랍습니다. 축대에 눈길을 두고 둘레를 돌아보면 커다란 연꽃들 사이에 강아지처럼 표정이 귀여운 사자도 두 차례 눈에 띈답니다.


왼편 또다른 금당 자리로 갑니다. 벚나무에서 난분분난분분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양쪽에 자리잡은 귀부(龜趺)가 사뭇 모습이 다릅니다.

거북이 머리를 치켜든 귀부.


왼편 귀부에서는 거북이 고개를 꼿꼿하게 치켜들었고 오른편 귀부 거북이는 고개를 다소곳하게 숙였습니다. 고개를 쳐든 거북은 힘이 잔뜩 들어 있음을 나타내듯 발톱이 셋만 나와 있고 오른편 거북은 발톱이 넷이 나와 힘이 조금 빠진 편이랍니다.


거북 등짝에도 사람들은 눈길을 보냅니다. 육각형 껍질의 오톨도톨함이 새삼스럽습니다. 또 꼬리는 어떤지, 살짝 두 차례 말아올린 질감이 아주 생생합니다. 어쩌면 구름처럼 보이는 무늬도 새겨져 있고 동작에 따라 힘이 들어가고 말고 하는 무늬가 목둘레에 새겨져 있습니다.


"정말 그 옛날에 어쩌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렇네요. 노동의 숙련도만으로는 이렇게까지 하지 못할 법한데요, 아무래도 신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렇게 정성을 쏟기가 어려웠겠지요."


앞서서 기운이 장한 모산재 돌에 감탄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느낌이 부드러운 영암사지 인공의 돌에 놀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금당 자리 부처님 있었을 한가운데 자리에 앉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절터 곳곳을 둘러보는 도중에 바닥으로 엎어집니다. 쑥이랑 냉이 같이 지천에 널린 봄나물을 뜯는 것입니다. 덕분에 떠들썩하던 소리가 단박에 잦아들었습니다.

바닥에 엎어져 나물캐는 사람들.


영암사지에 이렇게 홀랑 빠져 헤어나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다들 일어서 아래쪽으로 난 흙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봅니다. 여기 걸음에는 영암사지와 모산재 전경을 한꺼번에 눈에 담아내는 보람이 숨어 있습니다.

아래쪽 흙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모산재와 영암사지.


한 시간 남짓 노닐다 보니 점심 때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아래 일흔 넘으신 '할매'가 하는 포장마차로 스며듭니다. 국수랑 나물전이랑 손두부랑 동동주랑이 마련돼 나옵니다. 여기 자리는 먹을거리도 좋았지만 벚나무 꽃비와 꽃그늘이 더 멋졌습니다.


벚나무 아래 들기 전에 바깥에서 보면 어둑신한데 여기 자리에 앉아 치어다 보면 꽃그늘이 무척 해사합니다. 꽃잎 사이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은 맑고, 햇살과 꽃잎이 마주쳐 만들어진 그늘조차도 밝습니다.

꽃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데 더해 꽃비까지 오시다니! 바람이 가볍게 한 차례 불어대니 벚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꽃잎이 바람에 하얗게 흩날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야트막하게 탄성을 내지릅니다.

꽃잎들은 어디라 가리지 않고 사뿐 내려앉습니다. 아스팔트에도, 포장마차에도, 평상에도, 머리에도, 어깨에도, 가슴에도, 동동주에도, 나물전에도, 두부에도, 그리고 시냇물에도…….

벚꽃잎이 물 위에 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여정의 절정을 여기 포장마차에서 누리지 싶습니다. 모산재와 영암사지는 지금 아니라도 언제든 누릴 수 있지만, 꽃그늘 평상에 앉아 술배 밥배 불리면서 꽃비를 맞기란 '지금' '여기' 아니면 도대체 즐길 수 없는 노릇이지 싶습니다.


꽃비를 어지간히 누린 사람들이 이제는 길로 나섭니다. 오던 길을 되짚어 오도마을 들머리 이팝나무 있는 자리까지 3km 조금 못 되게 이어집니다. 조금씩 꽃이 지기도 했고 그 바로 옆에 잎이 새로 나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벚꽃그늘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답니다. 어쩌다 나물이 담겼지 싶은 바구니를 끌고 동네 할머니가 지나갈 뿐이고 자동차도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한 번씩 오갈 따름입니다. 이러다 보니 사람 소리보다 곤충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도심 벚꽃을 사람에게 빼앗긴 벌들이 여기 한적한 자락 길 따라 피어난 벚꽃에 몰려들어 웅웅거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벌 소리 그 커다람에 이따금 감탄하면서 가는 틈틈이 봄나물을 뜯습니다. 가져온 봉지들이 이미 제법 많이 불룩해져 있습니다. 들판은 대부분 비어 있는 채로 넉넉합니다. 얼마 안 가 곡식들이 자라기 시작하겠지요.

산들이 만들어낸 골짜기는 이처럼 들판과 저수지와 마을과 사람과 나무와 풀과 바위까지 품고도 모자라 공장처럼 생긴 돼지 축사마저 와락 안았습니다.


벚나무는 내려올수록 꽃보다 잎이 많아집니다. 오도 마을 들머리 이팝나무 앞에서 벚꽃 행렬이 끊어집니다. 여기 이팝나무는 한 달 정도 지나야 하얀 꽃들을 터뜨리겠지요. 그 때면 지금 꽃을 머금은 벚나무들은 푸르른 이파리를 손수건처럼 흔들고 있겠지요.


1km 남짓 바깥에 있는 가회면 소재지까지 꽃길이 이어지면 더욱 좋겠지만 여기서 발길을 거둬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해가 미처 서산으로 기울지 못하고 중천에 머물러 있을 때 발길을 거둬 버스에 올랐습니다.


생태·역사기행은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에서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남풀뿌리환경교육정보센터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다달이 셋째 금요일 아침 9시 경남도민일보 앞에서 모두 마흔 사람 안팎이 떠나는데요, 5월치는 이미 마감이 됐습니다. 6월부터 10월까지는 아직 자리가 남아 있답니다. 함께하고 싶으시면 제 전자우편 pole08@hanmail.net나 손전화 010-2926-3543으로 성함과 연락 전화번호, 그리고 어느 달에 가시려는지를 적어 보내주세요. 고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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