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합천활로 ⑦ 남명 조식 선비길

김훤주 2012. 1.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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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천을 중시한 남명 조식

남명 조식(1501~1572)은 조선 시대 경상우도의 대표 선비다. 예(禮)와 인(仁)을 앞세운 경상좌도 대표 선비 퇴계 이황(1501~1570)과 쌍벽을 이루며 경(敬)과 의(義)를 앞세우고 실천을 중시했다. 남명은 당대에 벼슬살이는 않고 초야에서 후학을 기르고 곧은 소리 상소를 올려 이름을 떨쳤다. 그이는 여기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남명은 1558년 음력 4월 지리산을 둘러보고 남긴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산을 오르는 힘듦과 산을 내려오는 손쉬움을 생각하며 선(善)을 쌓기는 산을 오름과 같고 악(惡)을 행하기는 산을 내려옴과 같다는 말을 했다. 이처럼 그이는 작은 일 하나를 하면서도 선악의 구분과 경의의 일어남을 마음에 담았다.

이런 태도는 그이가 떠난 뒤에도 제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제자들이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아 대부분 의병으로 떨쳐 일어나면서 실천을 중시했던 그이 이름이 한 번 더 크게 울렸는데 그 가운데 대표가 바로 최초 의병장 곽재우(의령)와 광해군 시절 높은 벼슬에 올랐던 정인홍(합천)이다.

한 시대를 곧게 살다 간 남명의 이런 영향은 시대를 뛰어넘어 근대에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그이가 태어난 고장 이 곳 삼가에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10년 경술국치까지 많은 의병이 나온 데 더해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는 무려 3만 명이 참가한 음력 2월 17·22일 두 차례 시위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40명 가량 목숨을 잃고 150명 남짓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으며 50명 정도 끌려가 옥고를 치렀는데, 우리나라 가장 큰 만세시위 가운데 하나로 기록돼 있다.

2. 용암서원의 편액 '집의문'과 '거경당'

선비길은 외토리 들머리 500년 묵은 느티나무에서 비롯된다. 마을 어르신들은 집을 나와 들판을 오가는 길에 당신보다 열 곱절 가까이 연세가 높은 이 나무 아래에서 고달픔을 풀고 휴식을 얻는다. 여기 앉아 이웃과 얘기 나누다 자전거를 타고 나오던 어르신 한 분이 "우리는 600년은 넘었다고 봐" 하시며 나무를 우러러 본다. 그만큼 둥치가 우람하고 키가 크다.

이런 한가로운 풍경 옆에 '외토리 쌍비'가 놓였다. 오른쪽은 비문이 닳아 백비(白碑)가 됐으나 왼쪽은 아직 글자가 뚜렷하다고 한다. 육중한 비각에 가려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안내판은 이것들이 효행비인데 왼쪽은 나중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고려 우왕 시절 여기서 낙향한 벼슬아치 이온의 효행을 들었으며 세운 연대가 확인되는 보기 드문 고려 시대 비석이라 설명한다.

다시 길 따라 나아가면 오른편 들판 너른 자리에 한옥이 몇 채 있다. 작고 오래 된 건물은 남명이 머물며(1548~1561) 후학을 가르친 뇌룡정(雷龍亭)이고 번듯하고 때깔 좋은 집은 후대에 남명을 위해 지어진 용암서원(龍巖書院)이다.

정자라기 보다는 독립된 사랑채 같은 뇌룡정 오른쪽과 왼쪽 기둥에는 '시거이용현(尸居而龍見)'과 '연묵이뇌성(淵默而雷聲)'이라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글귀가 각각 적혀 있다. "주검처럼 가만 있다가도 용처럼 나타나고, 연못 같이 묵묵하다가도 우뢰 소리를 낸다'는 뜻인데, 이를 보면 남명이 모름지기 선비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가 손에 잡히는 것이다.

용암서원 앞에는 남명의 흉상과 그이가 임금에게 올렸던 을묘사직소를 새긴 커다란 돌덩이가 나란히 놓여 있다. 단성소라고도 하는 이 상소는 임금이 내린 단성현감직을 받지 않고 오히려 임금을 호되게 나무란, 경의에 입각한 남명의 꼿꼿함이 그대로 표현된 명문으로 이름높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때문인지 이 곳을 찾는 요즘 사람들은 이런 남명의 기상보다는 용암서원과 뇌룡정이 내뿜는 넉넉하고  따뜻한 기운에 더욱 감흥을 느낀다. 바로 곁에 양천강이 구불구불 천천히 흘러가고 건너편 산들이 그럴 듯하게 둘러싸고 있는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데 자리잡은 절간과 마찬가지로 편안한 기분을 주는데, 어쨌거나 뜻있는 선비들 모여 좋은 선생 모시고 공부하기에 안성맞춤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집의문(集義門)이라 적힌 대문을 여니 마당이 널찍하다. 건물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지 않고 탁 트여 있다. 용암서원 현판이 걸린 가장 큰 건물 대들보에는 거경당(居敬堂)이라 적혀 있다. '의가 모이는 문'으로 들어와 '경이 머무르는 공간'에서 학문을 한다는 얘기겠다.

바로 옆에는 효행비의 주인공인 이온을 모시는 용연사·용연서원이 있는데 여기 들러 잠시 기웃대다 마을로 들어가 남명 생가터를 찾았다. 언덕배기에 바짝 붙은 생가터는 허물어져 있고 안내판에는 곧바로 발굴 조사를 거쳐 복원을 하겠다 적혔다. 지금은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나중 복원되고 유물까지 채워지면 볼 만하겠다 싶다.

3. 삼가에 있는 3·1운동기념탑과 기양루와 향교

삼가에 들를 차례다. 왔던 길로 도로 나가 국도 33호선을 탈 수도 있지만 여유로운 들판 풍경을 눈에 담으려면 오던 방향으로 계속 나가는 편이 낫다. 삼가까지 9km남짓밖에 안 되니까 선선한 가을에는 가까운 친구랑 함께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타박타박 걸으면 좋겠다.

길은 얼마 안 가 다리를 지난 다음 학리 마을 앞 삼거리에 오른쪽으로 꺾어져 곧장 나간다. 지금은 길가에 콩이 꽤 심겨 있는데, 그 풍성한 품이 꽃보다 나아서 키낮은 가로수처럼 보인다. 콩은 질소를 땅 속에 고정시켜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구실까지 한다.

나락이 익어가는 들판을 가다 보면 드문드문 집채들 엎드린 마을 어귀에는 어김없이 정자나무가 한두 그루씩 나타난다. 흘러오는 양천강과 마주보며 달리는 덕분에 풍경이 풍요롭다. 길은 어느새 아스팔트에서 콘크리트로 바뀌었고 두모 마을서는 60호 지방도와 만나진다.

이렇게 삼가에 가면 동네 한가운데 기양루(岐陽樓)와 삼가시장 들머리 삼가장터 3·1만세운동기념탑과 강 건너 삼가향교가 있다. 이 셋은 놓치면 아까운 볼거리다.

기양루는 조선시대 지어졌다. 면사무소 자리 가까이 있던 객사·동헌에 딸린, 옛적 사람들 풍악과 더불어 술도 마시며 놀던 자리다. 지금은 강변으로 집들이 들어서 전망이 막혔지만 예전에는 2층 누각에 오르면 양천강 너른 풍경이 통째로 안겨왔겠다. 조각과 그림을 살펴보는 즐거움도 있다. 용이나 봉황이나 원숭이 따위가 있는데 어떤 녀석은 혓바닥이 움직여진다.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은 위에 얹힌 조각상이 힘이 넘친다. 나팔을 들거나 맨손인 남녀들이 투각된 태극기를 위로 펼쳐 들고 사방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제막은 2005년 했는데, 작은 마을에서 90년 넘게 전에 3만 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는 엄청난 일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데 적격이다. 앞면에 새긴 그림은 아름답고 뒷면에 쓰인 글씨는 씩씩하다. 또 한 쪽 구석에는 100년 전 의병 활동을 벌인 이들을 기리는 빗돌도 놓여 있다.

강 건너 교동 마을에는 우람한 삼가향교가 언덕배기 높은 데 있다. 풍토를 교화한다는 유교 특유 계몽주의가 담긴 현판 '풍화루(風化樓)'가 걸린 대문이 올려보면 주눅이 들 정도로 대단하다. 옆으로 돌아 들어가니 명륜당도 당당했다. 남명과 직접 관련은 없겠지만, 남명이 읽은 것과 같은 경전을 교재로 삼아 여기서 가르침(敎)과 배움(學)을 이뤘음은 분명하겠다.

삼가향교 정문.

삼가향교 명륜당. 댓돌이 이채롭습니다.


마지막 일정은 당연히 삼가 장터가 된다. 들머리 강가에 '한우의 고장 삼가면 합천'이라 적혀 있는데 이것이 빈 말이 아니다. 아마도, 소 잡는 솜씨가 뛰어난 업자들이 여기 있음이 틀림없다.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값도 다른 데보다 싼 편인데, 이런 한우를 다루는 식육식당이 장터 곳곳에 박혀 있다. 남명 같은 학자의 정신도 느끼고 질 좋은 한우도 맛볼 수 있는 그런 나들이 길이다.

코스 : 외토리 쌍비~뇌룡정·용암서원~용연사·용연서원~남명 생가터~기양루~삼가 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삼가향교

길 안내
자가용
창원·진주·부산 방면 : 남해고속도로~군북(의령)나들목-의령읍~대의고개~외토리
대구 방면 : 88고속도로~고령나들목~합천읍~삼가면~외토리
서울 방면 : 대전통영고속도로~88고속도로~거창나들목~합천읍~삼가면~외토리

대중교통
(이 글에서는 외토리에서 삼가로 걸어나오는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려면 반대로 삼가에서 외토리로 걷는 편이 훨씬 낫다. 합천읍에서 삼가 가는 차편은 그래도 자주 있지만 합천읍에서 외토리 가는 차편은 아예 없다. 대신 삼가에서 외토리 들어가는 버스는 있는데 하루에 두 대뿐이다. 그러니까 삼가에서 점심을 먹고 두 시 정도 출발해 외토리에서 5시 전후 출발하는 막차를 타고 돌아오면 되겠다.)

마산 합성동터미널 1시간 오전 7시 50분(창원), 10시 40분(창원), 오후 12시 50분, 2시 45분, 5시 30분, 6시 40분 6차례
진주시외터미널 50분 오전 6시 50분~오후 8시 13차례
대구 서부터미널 1시간 오전 6시 10분~오후 8시 20분 22차례
부산 사상터미널 1시간 40분 오전 7시~오후 7시 15차례
서울 남부터미널 5시간 : 오전 10시 8분 12시 오후 2시 3시 4시 45분

군내버스
합천~삼가 : 오전 7시 30분, 10시 10분, 11시 30분, 오후 12시 30분, 1시 20분, 2시 20분, 3시 40분, 5시, 6시 10분
삼가~외토 : 오전 7시 30분, 9시 50분(장날), 오후 1시 30분(장날), 4시 50분.

주변 여행지 : 합천댐(30km), 황매산(25km), 모산재 영암사지(12km).

여행하기 좋은 시기 :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다 그럴 듯하다.

문의 :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 055-930-3755~8.

김훤주
※ 합천군에서 2011년 12월 펴낸 <나를 살리는 길 합천활로>에 실려 있습니다.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에 연락하시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남명조식의학문과선비정신다시울린千石鍾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김충열 (예문서원,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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