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솔숲과 전망이 멋진 통도사 암자길

김훤주 2011. 12.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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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라 하면 커다란 본사(本寺)와 자잘한 암자 여럿만 저는 떠올렸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자가용 자동차만 타고 돌아다닌 폐해였습니다. 자가용으로 휘리릭 달리다 보니 정작 길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지요.

본사와 암자, 암자와 암자를 잇는 길이 촘촘하게 박혀 있고 길은 또 저마다 좋은 풍경과 좋은 분위기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돌아보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12월 14일 아침 9시 20분 즈음 양산시청 맞은편 정류장에서 12번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10분 안팎 간격으로 부산과 울산을 오가며 양산을 거칩니다. 통도사가 있는 신평시외버스터미널에 10시 조금 넘어 닿았습니다. 내려서 신발끈을 고쳐 매고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통도사 들머리에서 부도원을 향해 절하는 보살들.


합천 해인사는 느낌이 청신하고 상큼하다면 양산 통도사는 부드럽고 따뜻하답니다. 배경으로 삼은 가야산과 영취산에도 이런 차이가 있지만 이는 터 잡은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산중에서 개울을 끼고 있는 점은 같지만, 해인사는 골짜기에 둘러싸여 있고 통도사는 가파르지 않은 평지에 펼쳐져 있습니다.

통도사 갖은 건물들은, 대웅전도 개산조당도 대광명전도 영산전도 볕이 바르게 든답니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금강계단은 지붕이 없는데다 모조리 돌로 만들어진 때문인지 서늘한 편이랍니다. 이마저도 해가 중천에 뜨면 달라지지만 말씀입니다.


본사는 평일 아침나절인데도 분주합니다. 구경하러 나온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스님들은 그 많은 전각들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불경을 읊습니다. 전각에는 신도들도 있습니다. 바깥에서 신발을 보니 영산전과 약사전에 많았고 대웅전에는 더욱 많았습니다.


둘러싼 소나무 대나무와 멀리 산까지 눈에 담았다가 돌아나옵니다. 일주문을 나선 다음 오른편 위에 있는 돌다리를 건넙니다. 바로 앞 가풀막에는 자연석을 쪼아낸 계단이 있습니다. 길은 비탈을 끼고 둥글게 이어져서 취운암에 이릅니다.


취운암을 벗어나면 바로 아스팔트길이랍니다. 옆에는 잎이 푸르고 싱싱하게 뿜어져 나온 무밭이 있고 멀리 산기슭 소나무 아래에는 차밭이 빛나고 있습니다. 길은 둘로 갈라집니다. 서운암이 있는 왼쪽 대신 오른쪽으로 줄곧 걸었습니다.


수도암에는 들르지 않고 안양암으로 갑니다. 거기 서면 본사가 통째로 내려다보이기 때문입니다. 내려가 끄트머리에 서면 길게 누운 본사 몸통이 한 눈에 들어온답니다. 비록 나뭇가지가 시야를 흐리기는 하지만요. 들머리 우람한 소나무는 보기만 해도 느낌이 좋습니다.

비로암 가는 길에 있는 연밭과 정자. 정자에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돌아나와서는 비로암을 향해 걷습니다. 꺾어지는 모퉁이에는 잔술이랑 채소랑 엿 따위를 파는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상대로 호객을 해보지만 차창이라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휘리릭 달아날 뿐이지요.


비로암 이르는 길은 솔숲이 참으로 멋집니다. 굵고 가는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드높이 솟아나 있습니다. 여기에 들기만 해도 머리가 온통 시원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햇살은 소나무 줄기와 가지 사이로 갈라지면서 쏟아집니다.

길을 가는 스님이 보입니다.


솔숲길은 길게 이어지면서도 단조롭지가 않습니다. 개울도 따라다니고 곳곳에 조릿대도 자라고 멀리에는 잘자란 대숲이 배경으로 들어서고 합니다. 끄트머리에는 서어나무와 참나무들이 잎을 떨군 채 불쑥 자라나 있습니다.


비로암은 배경도 좋지만 내려다보는 전망도 좋습니다. 뒤편 영취산은 아래로 푸른 솔숲이 있고 위로 잎 진 작은키나무들이 무리지어 온통 갈색입니다. 커다란 곰 등짝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커다란 바위가 이쪽저쪽 튀어나와 있습니다.


아래로 보면 멀리까지 산들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고 가까이에는 감나무와 대나무와 소나무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아주 가까이에는 스님들 울력 나가지 싶은 텃밭도 있습니다. 한참을 마루 끝에 앉았다가 뒤란에 들어가 샘물을 떠서 한 입 머금었습니다.


돌이켜 내려오는 길에는 극락암을 들렀습니다. 극락암 삼소굴은 경봉 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담장은 야트막하고, 오른쪽 산수유는 붉은 열매를 잔뜩 매달았고, 감나무는 뒤뜰 즈음에 서서 까치밥을 많이 장만해 놓았고, 마루에는 노스님 한 분이 볕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삼소굴. 왼편에 산수유가 빨갛습니다.


극락암 또한 뒤편 배경과 앞쪽 전망이 비로암 못지 않답니다. 독성각 올라가는 뒤쪽 길에는 잘 자란 대숲이 서걱서걱 소리를 냅니다. 잔디가 곱게 깔린 비탈에는 까치밥을 매단 감나무가 그림자로 내려앉았습니다. 들머리에는 영취산 봉우리가 비친다는 극락영지가 조그맣고, 그 위로는 돌로 만든 무지개다리가 좁다랗게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 내려오다 비로암 가면서 꺾어졌던 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들어섭니다. 지산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랍니다.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올려다보며 영취산을 누리는 눈맛이 좋습니다. 내년 농사를 위해 쟁기질을 해놓은 들판도 느낌이 넉넉합니다.


지산 마을에 들어서니 낮 1시 30분 어름, 구멍가게에 들러 라면을 하나 주문해 끓여 먹고는 1시 55분 출발해 신평터미널까지 10분도 걸리지 않는 마을버스(800원)를 탔습니다. 다리가 조금 뻐근해 왔습니다.


김훤주

지산~신평터미널 마을버스
오전 7시 25분, 8시 5분, 8시 55분, 9시 55분, 10시 55분, 오후 12시 55분, 1시 55분, 2시 55분, 3시 55분, 4시 55분, 6시 55분, 7시 55분
통도사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예술문고
지은이 이기영 (대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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