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여기 올라온 순간부터 정리해고 철회보다는 이 크레인을 마징가제트로 개조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근데 자기 전에 꼭 이 크레인 아래서 외치고 가는 아저씨가 계세요. '절대 딴 생각 하지마이!! 아랐쩨?' 저 아저씬 도대체 어떻게 아셨을까요?"

크레인 농성 10일째였던 2011년 1월 16일 '소금꽃' 김진숙(@JINSUK_85)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309일 간의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그를 만났다. 엄동설한 차가운 쇳덩어리 위에서 어떻게 이런 낙관적이고 위트 넘치는 글을 올릴 수 있었는지 물었다.
 

"하하. 트위터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시작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무슨 말을 써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 싸움에 여러분들이 연대해주십시오' 이런 말을 쓰기가 싫더라고요. (……) 그냥 제 마음을 달래는, 저를 위로하는 수단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는 자신을 위로하는 수단으로 썼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것이었다. 나 또한 당시 이 글을 보고 뭔지 모를 마음의 부담을 적잖게 덜 수 있었다.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 이런 배려와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김진숙의 첫 노동운동은 1986년 당시 '어용노조'의 대의원 출마와 당선이었다. 그의 책 <소금꽃나무>에 나와있는 당시 상황이다.
 

"(대의원대회) 회의가 끝나자 일제히 송도횟집으로 모셔져 진탕 먹고 간부라는 사람들은 어디서 데려왔는지 색시들과 쌍쌍이 춤판이 벌어지고……. 물론 현장에선 조합원들이 죽음을 넘나들며 작업할 시간이었죠. 돌아오는 길에 차비나 하라며 봉투를 건네주더군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집에 와 보니 10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기본급 13만 6100원이던 86년도에."

김진숙 지도위원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그 때 김진숙이 이 돈을 그냥 받아 챙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5년 후 85호 크레인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테고, '희망버스'라는 한국 사회운동의 새로운 역사도 씌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10만 원의 봉투를 쥔 김진숙은 고민했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자기들 하는대로 박수 치면 따라서 치고, 손 들라면 손이나 들어주고 그러면 최소한 이런 건 보장되겠구나 하는 갈등이 없진 않았습니다. 아니 좀 더 솔직해져야 겠군요. 밤새 천장에 새파란 종이돈이 왔다갔다하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김진숙은 다음날 그 돈을 돌려주고 말았다. 이 일로 '어용노조'와 회사에서 찍혔고, 곧이어 해고된다. 김진숙이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저를 대의원으로 뽑아 준 아저씨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김진숙의 노동자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느낄 수 있었다. 투쟁의 대열에서 동지들을 배신하고 이탈해나간 조합원들도 모두 이해한다고 했다.
 

이처럼 사랑과 배려, 여유, 낙관으로 똘똘 뭉친 김진숙에게 딱 하나 실망스런 대상이 있었다. '진보정당'이었다.
 

"우리나라는 진보정당이 오히려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 저도 너무 상처가 커서 그냥 그 얘기를 하기가 싫어요. 그럴 애정도 남아 있지 않고…."
 

'통합진보당'도, '진보신당'도 김진숙에게 '희망'은 아닌 듯 했다. 그는 희망버스에서 배워야 할 것으로 '진정성'을 꼽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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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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