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로컬푸드 아랑곳 않는 농협의 역주행

김훤주 2012. 3.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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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대충 짐작해 볼 때 2011년 12월에 있었던 <로컬푸드 시스템 구축을 위한 경남 실천 전략 세미나>에 토론자로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찾아 보니 12월 15일 경남발전연구원 1층 세미나실에서 오전 10시~12시 50분 열렸습니다. 주최는 경남도, 주관은 경남발전연구원이었습니다.)


제가 로컬푸드 관련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바는 별로 없지만, 환경 어쩌고 생태 저쩌고 하는 얘기를 때로 씨부렁거리다 보니 이런 자리가 과분하게도 제게 돌아오곤 합니다.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경남발전연구원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는 귀로는 듣기 좋고 눈으로는 보기 좋은 얘기나 정책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들이 주로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앞서 제가 토론을 준비하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생협이 생각났고 도농직거래도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협동조합인 농협도 생각이 났습니다.
 

뉴시스 사진.


그러니까 원래 생겨 먹은 취지대로 농협이 제대로 일을 하고 굴러가면 로컬푸드니 뭐니, 무엇을 살리니 마니 하는 얘기가 처음부터 나올 까닭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협은 자기가 바탕으로 삼고 있는 농민들 편을 주로 든 적이 별로 없습니다. 농기계나 비료 따위 만들어내는 자본의 편을 들거나 이런저런 농업 생산물 관련 자본의 편을 주로 들었습니다.

농민 편을 든다 해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 소농과 어르신(나이가 많으시다는 뜻입니다) 농민들은 그렇게 농협이 편을 드는 농민에서는 빠져 있었습니다. 소농 그리고 어르신 농민이 생산해 낸 농산물을 유통시키고 이를 통해 소득을 얻게 해 주는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로컬푸드 정책을 둘러싼 사회 현실을 함께 둘러봤습니다. 꼼꼼하게 틀리지 않게 둘러봤다는 말씀은 아니고요, 그냥 거칠게 이리저리 훑어본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아래에 있는 토론문입니다. 원래 제 생각은 이 토론문을 바탕으로 삼아 여기저기 살을 좀 더 붙여서 블로그에 올리려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도록 시간이 기다려 주지를 않아 날것 그대로 올립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현행 농업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행 농업에 문제가 없다면 ‘로컬 푸드 정책’ 또한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김종덕 선생님 짚으신대로 지금 농업은 농업이 아니라 공업이라고 해야 맞을 수 있는 측면이 큽니다.

현행 농업에 담겨 있는 문제점을 낱낱이 가려내어 널리 알리는 일이 선행되거나 병행돼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것들이 농산물이나 축산물이 아니라 공산품이라는 사실을 좀더 분명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2. 먹을거리의 중요성에 대한 구체적 실천적 인식의 확산이 있어야 하지 싶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먹을거리를 골라 먹으려고 애쓰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측면도 동시에 있습니다. 패스트푸드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문제투성이입니다.
 

하나로클럽과 하나로마트를 운영하는 농협유통 주식회사의 눈속임. 뉴시스 사진.


패스트푸드는 거대기업에서 만들어냅니다. 유통망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광고도 엄청나게 해댑니다. 생활 환경이 패스트푸드를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돼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 조건에서 패스트푸드를 먹는 사람이 늘어나거나 그대로 유지가 된다면 로컬 푸드는 시장을 확보할 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로컬푸드정책의 성공은 지금 있는 패스트푸드 시장을 그대로 둔 채로는 이뤄질 수 없다고 저는 봅니다.

패스트푸드의 해악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개인이나 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하는 산발적인 보도로도 안 됩니다. 자치단체 차원에서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마땅합니다.

3. 식품위생법을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식품위생법은 패스트푸드를 비롯한 모든 먹을거리를 규율합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들의 포장, 재료 표시, 이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생산자=거대기업 위주로 돼 있는 줄 압니다.

이런 식품위생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장은 그리고 직접은 로컬푸드와 무관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엉터리 이름, 깨알 같은 크기로 하는 성분 표시, 사람 눈을 끄는 포장 따위를 고치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의 소비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줄어든 소비의 영역은 앞으로 형성될 로컬푸드와 만나 어우러질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저는 봅니다.

4. 모범 사례를 널리 알리는 노력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경남 지역에도 경남을 벗어난 다른 지역에도 로컬푸드를 실현하는 모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자치단체가 나서서 널리 알려야 합니다. 농민들에게 먼저 집중해서 제대로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정천섭 대표 발제를 보면 로컬푸드정책을 모르는 사람이 소비자는 10명밖에 안 되지만 생산자는 53명이나 됩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로컬푸드정책을 세우는 데는 바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로컬푸드정책을 제대로 실행하고 널리 확산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바탕을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5. 로컬푸드정책에 드는 비용은 농업협동조합한테 물려야 하지 않을까요?

로컬푸드정책은 농업협동조합이 주체가 돼서 실행해야 맞지 않을까요? 로컬푸드정책이 농업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는 일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도 농협은 농민과 농업을 갉아먹는 갖은 패스트푸드를 하나로마트에 산더미로 쌓아놓고 돈벌이에 열을 올립니다. 농협은 또 지금 이 순간에도 돈 빌려주고 이자 받아 먹는 돈 장사에도 마찬가지 열나게 나서고 있습니다.


농협이 과연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요? 농협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인지요? 오늘 세미나를 보면서 저는 실제로는 농협이 해야 마땅한 일을 자치단체에서 나서서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로컬푸드정책과 관련해 드는 돈은 모조리 국민 일반, 지역 주민 일반의 세금입니다. 농협이 내어놓은 자금이 아닙니다. 농협이 해야 하는 일을 자치단체가 주민(또는 국민) 세금으로 대행해 주는 셈이니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당장 오늘 여기서 벌어지는 ‘로컬푸드 시스템 구축을 위한 경남 실천 전략 세미나’ 관련 비용부터 농협에다 청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농민을 위하지 않고 농업을 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시스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을 전국 차원에서는커녕 지역 차원에서도 하지 못하는 농협에 대한 문제 제기는 매우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 제기를 통해 농협이 로컬푸드정책의 주체가 되면 일부러 실패하려 해도 실패할 수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나름대로 조직과 기반이 탄탄하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김훤주

로컬푸드조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지은이 야마시타 소이치 (이매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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