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과적'의 정치경제학과 21세기 풍속도

김훤주 2011. 12.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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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적의 정치경제학

과적(過積)의 정치경제학, 이렇게 얘기하면 지나치게 1980년대 냄새가 나겠지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 놓고 제 생각을 한 번 씨부렁거려 보겠습니다.

과적은 좋지 않습니다. 일단 도로를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사고 위험을 키웁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면 그 규모는 대형입니다. 그리고 과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크게 불안감을 줍니다.

과적은 동시에 좋기도 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싣고 가니까 유통비용을 줄여줍니다. 또 통째 과적으로 싣고 가면  처음 생산 현장에서 분해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옮겨간 다음 현장에서도 조립을 하지 않아도 되니 생산비용도 줄어듭니다.

그런데 과적은 짐차를 몰고 다니는 노동자가 합니다. 이 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여서 짐차가 자기 소유이기는 하지만 독립성이 없습니다. 물론 노동조합이 있어서 요즘 조금씩 말발을 세우려고 애는 쓰나 봅니다만.

실은 짐이 양쪽으로 거의 절반이나 튀어나와 있습니다.


과적은 노동자가 하지 않습니다. 짐차를 소유하면서 몰고 다니는 노동자에게 크고 작은 자본이 요구합니다. 이 요구를 노동자는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자기보다 더 큰 자본에게 납품하는 작은 자본이 짐차 노동자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적은 작은 자본의 요구라기보다는 더 큰 자본의 요구라고 봐야 맞습니다.

큰 자본이 작은 자본에게 하청을 주면서 단가 책정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가가 충분하지 못하니 작은 자본은 아무래도 과적을 통해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려 하게 되겠지요.

과적은 결국 특수고용노동자인 짐차노동자와 작은 자본과 더 큰 자본의 대립 투쟁과 타협의 산물입니다. 그 산물인 과적은 사회 차원에서 본다면 전혀 이득이 되지 않고 해악만 끼칩니다.

2. 어스름에 시작되는 과적의 21세기 풍속도

여기까지가 제가 나름대로 아는 과적의 정치경제학이라면 이제부터는 과적의 21세기 풍속도를 그려보겠습니다. 과적은 어스름이 내릴 때 기승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같은 짐차입니다. 싣고 가는 짐의 크기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벌건 대낮에 잔뜩 과적을 하고 다니는 짐차를 본 적은 없습니다.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많이 봤고, 어쨌거나 어두워지면 과적 짐차가 쏘다니기 시작합니다.

왜일까요? 뻔한 노릇이지요. 사람들 눈길과 경찰 따위 단속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서겠지요. 그러나 한밤중 과적 운행이 위험은 더욱 키웁니다. 사회 차원에서 보자면 더욱 안 좋은 일입니다.

저는 짐차 노동자(그리고 노조)와 작은 자본과 더 큰 자본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해결해 사회 전체에다 좋지 않은 문제를 안겨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3. 과적 책임 세 주체가 해결 못하면 신고·고발할 수밖에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사회에서 이들에게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것은 과적 짐차가 눈에 띌 때 사진을 찍어 증거를 확보한 다음 신고·고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쨌든 그 당사자 가운데 가장 약자인 짐차 노동자가 먼저 다칠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짐차 노동자를 위한답시고 사회 차원의 불안과 위험과 비용 부담을 그대로 팽개쳐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고·고발이 결국에는 짐차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자본의 과적 요구를 거절하고 사회 차원의 공동선에 합류할 수 있는 노동자가 되도록 나아가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1월 8일 저녁 8시 즈음 창원공단에서 나와 봉암로를 거쳐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나들목으로 나가는 짐차를 봤습니다. 무슨 복잡한 규정을 따지지 않아도 한 눈에 과적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바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거의 두 개 차로를 저 짐차 혼자서 차지하고 가는 장면입니다. 너무 어두워서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포토 스케이프'에서 '사진 밝게 하기' 몇 차례 되풀이했더니 조금 볼만하게 됐습니다.

12월 13일 인터넷 국민신문고를 통해 신고·고발을 했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원판 사진을 두 장 붙였습지요. 그랬더니 이튿날 부산사상경찰서인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차량 번호가 안 보인다"면서, "보이는 사진을 좀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네들이 원판 사진을 조금만 가공하면 차량번호를 확인할 수 있거든요. 어쨌거나 경찰이 게으르거나 잘 알지 못해서 그러려니 여기면서 17일 보내줬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한 사람만이라도 과적이 작은 문제가 아님을 알아주시고 어떤 식으로든 이를 줄이는 데 힘을 보태려 하신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이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런데 신고·고발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국민신문고에서 5붙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요. 관건은 사진인 것 같았습니다. 사진만 제대로 확보하면 신고·고발은 식은 죽 먹기만큼이나 쉽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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