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강릉 헌화로 합궁골과 남해 가천 암수바위

김훤주 2011. 10. 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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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라빠진 젖꼭지에 매달린 아이 같은 정동진 상업시설들

9월 중순 강원도에 간 김에 정동진에 들렀더랬습니다. 때 맞춰 가지 않은 때문인지 그다지 아름답다거나 멋지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해변이 펼쳐져 있었고 이를 따라 갖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해 뜨는 모습으로 이름난 곳이라는데, 기차역도 있고 갖은 시설물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바닷물은 여기서도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모습이 제게는 좋게 비치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이름난 곳이라 해도 관광지 한 곳을 두고 들어선 상업 시설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았거든요. 말하자면 어머니의 말라빠진 젖꼭지 하나에 여러 아이들이 달라붙어 빨려고 하는 듯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나았습니다. 강릉 경포해변에서 정동진을 지나 헌화로 들어서서 마주친 합궁골과 견준다면 말씀입니다. 헌화로라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헌화가'와 관련되는 곳으로 소개돼 있었습니다.

2. 합궁골 '불알'은 인공일까 아닐까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러 가던 도중 길 옆 벼랑에 철쭉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꺾어 달라 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자,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이 꽃을 꺾어다 바치면서 불렀다는 노래에서 연유된 명칭"이 헌화로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여기에 합궁골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이 곳에 음양이 조화를 이루며,
동해의 떠오르는 해의 서기를 받아 우주의 기를 생성하고 있으니 이름하여 합궁골이다.
남근과 여근이 마주하여 신성한 탄생의 신비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곳은
특히, 해가 뜨면서 남근의 그림자가 여근과 마주할 때 가장 강한 기를 받는다고 하며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일출을 기다린다.
아무쪼록 사랑의 전설이 담긴 이 곳 헌화로 합궁골에서
아름다운 인연으로 나란히 선남선녀가
동해의 상서로운 기를 받으며
천년바위로 백년해로를 기약하고 다복한 삶을 누렸으면 한다."

가만 살펴 보니 위쪽 안에 이른바 여근이라 할만한 자연 형상이 있고 이른바 남근과 비슷한 모양은 길가 아래쪽에 솟은 길다란 바위였습니다. 때가 때인지라 바위에는 덩굴식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남근 아래 양쪽에 놓인 하얀색 동그란 바위가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자연석이라고 돼 있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자연 그대로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인조석은 아닌 것 같았으나 자연석 그대로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그 둥근 모양이 사람 손을 타지 않고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바위 색깔이 둘레에 있는 다른 바위의 그것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둘레 암석은 좀더 색깔이 짙었는데 이 동그란 바위 두 알만 유난히 밝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공으로 보였고, 그래서 싫었습니다. 말하는 그대로 여기가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우주의 기를 생성하고" "신성한 탄생의 신비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데라면 인공을 일부러 더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공을 더한다는 것은, 지금 있는 자연 그대로에 무언가 모자람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사람의 욕심이고 사람 마음의 작용일 따름입니다. 여기 둥근 바위는 '불알'로 여겨지는데, 이것이 있어야 하는데 빠져 있다고 사람들이 여겼으리라는 얘기입니다.

3. 생긴 그대로인 남해 가천 암수바위

하지만 그런 따위야 없어도 그만입니다. 경남 남해 가천 마을 암수바위처럼 지금 놓여 있는 그대로가 가장 자연스럽고 또 가장 그럴 듯합니다.

사진 왼쪽 솟아 있는 바위가 이른바 남근이고 그 아래 갈라진 바위는 여근이며 맞은편 가운데가 불룩한 바위는 아이를 밴 임신부입니다.

여기다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무엇이 모자란다 해서 남근 근처에 둥글게 깎은 바위 두 개를 갖다놓고 여근 위쪽에다 젖무덤 모양 바위를 만들어 붙이면 그야말로 마음 작용의 과잉이요 자연에 대한 인식의 결핍일 것입니다.

아무리 관광 명소로 이름 날리기를 바란다 해도, 이렇게 어거지로 갖다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저는 여깁니다. 불쑥 솟은 바위 아래 둥근 바위는 치워 없어지면 오히려 나을 것 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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