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시외버스 타고 가본 홍류동 소리길

김훤주 2011. 10. 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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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읍에서 같은 합천의 해인사까지 들어가는 군내버스가 없다는 것은 참 신기한 노릇입니다. 우리나라 으뜸 관광지로 꼽히는 해인사에, 군내버스로는 갈 수가 없다니 말씀입니다…….

대신 시외버스는 있었습니다. 하루 세 차례였습니다. 오전 9시 30분, 오후 1시 10분과 5시 10분 진주를 출발해 1시간 20분 뒤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합천시외버스터미널에 닿았다가 묘산·야로·가야를 거쳐 해인사까지 50분 남짓 걸려 들어가는 경전고속 버스였습니다.(해인사에서 나오는 차편은 오전 7시 40분, 오후 1시와 5시 출발이랍니다.)

합천과 해인사를 오가는 버스가 석 대밖에 없다 보니 터미널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해인사행 버스를 놓치신 분은 대구행 버스를 타고 (경북 고령군 쌍림면) 귀원에서 내려 대구서 해인사 가는 버스로 갈아타세요." 대구~해인사와 대구~합천 차편은 그래도 많은 모양이지요.

10월 5일 오전 10시 50분 합천에서 해인사행 버스를 4800원 내고 탔습니다. 가파른 산길과 평탄한 들판길을 번갈아 달렸습니다. 벼가 누렇게 익은 들판에는 가을걷이를 마친 논배미도 적지 않았습니다. 풍요로 무르익었다가 인간들에게 속내를 내어주고 조금씩 비어가는 가을 들판입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홍류동 소리길.


왼편으로 멀리 월광사지 삼층석탑이 보이는가 싶더니 해인사 들머리 가야면 소재지가 나왔습니다. 9월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열리고 있는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덕분인지, 거리는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파는 좌판도 있고 약재와 푸성귀를 파는 난전도 있습니다.

이윽고 종점인 해인사 들머리 주차장 끄트머리에 닿았습니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해인사에 들르지 않으면 서운한 노릇이겠지만 겨우 엿새 전에 주어진 업무 때문에 찾은 적이 있는 터라 이번에는 홍류동 소리길에 집중해 누리고 즐기기로 했습니다.

먼저 밥집을 찾았습니다. 진주장 식당(055-932-7216)입니다. 흐르는 물가에 바짝 붙어 있어 골짜기 풍경과 물소리가 그대로 안겨왔습니다. 방안 대신 바깥 자리를 골라 앉았습니다. 좀 차기는 했지만 상큼한 기운이 좋았답니다.

산채전과 비빔밥을 시켰습니다. 저마다 7000원짜리였는데 주인 아주머니 인정과 신경씀이 느껴졌습니다. "비빔밥은 보통 대접에 담는데 오늘은 날씨가 차서 뚝배기에 데워 왔어예." 해물과 몇몇 산나물 그리고 감자가 들어 있는 산채전도 괜찮았습니다. 밀가루를 두껍지 않게 입힌 데 더해 기름도 많이 배어 있지 않아 씹는 맛이 개운했던 것입니다.

동동주도 한 잔 기울였지요. 그러면서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물소리를 듣다가 1시 조금 넘어 일어섰답니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쏟아졌고 저쪽 그늘은 더욱 짙어져 있었습니다. 길 따라 내려가다 오른쪽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나무 데크로 접어들었습니다. 소리길의 시작이랍니다.

홍류동 골짜기 소리길은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을 앞두고 9월 들어 열렸습니다. 여기 소리길은 다른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참 좋다'는 한 마디면 족합니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 고즈넉한 길이 여태 열리지 않고 있었을까 미심쩍을 지경입니다.

사실 소리길은 이번에 처음 열린 것이 아닙니다. 데크와 안내판을 새로 세우고 바닥을 평탄하게 하고 양쪽으로 밧줄을 비끄러매는 등 가다듬었을 뿐이지 예전부터 있었던 길이랍니다. 이 길은 골짜기를 넘나들며 가야면 야천리 세계문화축전 주행사장까지 6km정도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이제 들기 시작한 단풍을 보며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줄기의 시원한 소리를 듣습니다. 때때로 이 소리는 사람들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에 묻히기도 한답니다. 골짜기에 가득 들어찬 하얗게 빛나는 바위는, 나무들이 바닥에 떨어뜨린 짙은 그늘과 크게 대조를 보입니다.

물은 깊이에 따라 맑고 밝았다가와, 짙고 어두웠다가를 되풀이합니다. 짙고 어두운 물은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며 맑고 밝은 물은 가볍고 상큼한 소리를 냅니다.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쏟아져 내린 물이 여울을 이루는 데에 모여 서서 그 어울림을 눈에 담습니다.

소리길의 고갱이는 농산정(籠山亭)에 죄다 있습니다. 우리말로 풀면 농산정은 산을 둘러싼 정자쯤이 된답니다. 물론 산을 둘러싼 주체는 정자가 아니지요. 산을 둘러싸는 주체는 흐르는 물 소리랍니다. 말 그대로 여기 오면 물소리가 산을 어떻게 둘러싸는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신라 말기 사람 고운 최치원이 산을 둘러쌀 정도로 우렁우렁 울리는 물 소리에 세상일까지 다 묻혀버려 생각도 걱정도 함께 사라졌다고 읊었던 자리라고 합니다. 농산정은 후세 사람들이 이를 기려 지은 정자이고요.

농산정을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사실은 농산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그럴 듯하답니다. 원래 정자는 거기서 바라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자리에 놓이는 법이니까요. 바로 앞까지 소리치며 흘러 온 물은 여울을 이뤄 그윽하고요, 숲을 이룬 소나무는 스치는 바람이 한가롭습니다.

4km남짓 지나면 마을길이 나타납니다. 오른쪽 청량사 가는 길과 갈라지는 자리입니다. 좀 더 내려가면 한 편에 막걸리랑 어묵 따위를 파는 가판대가 하나 있습니다. 머리를 잘 빗어넘긴 주인 아저씨는 "왜 소리길이냐?"고 묻는 길손들에게 "물소리가 그치지 않으니까 소리길"이라 일러줍니다.

마을길은 들판길로 이어집니다. 들판에는 벼도 심겨 있었지만 코스모스 같은 꽃들도 심겨 있었습니다. 이번 축전을 겨냥한 가꾸기였겠습니다. 야천리 축전 주행사장 앞에 4시 40분 즈음해 닿았습니다.

심심한 입을 달래려고 비스킷을 한 봉지 샀습니다. 해인사에서 나오는 버스를 5시 10분에 탔고, 이번에는 3700원을 냈습니다. 소리길 내려오는 끄트머리에는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을 11월 6일까지 하는 행사장이 있습니다. 저도 앞서 가봤습니다만, 한 번은 들러볼만하다고들 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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