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저 '나는 나'라는 사람

"저는 저를 알아달라고 농사짓거나 시를 쓰는 게 아닙니다. 누가 알아준다고 내 삶이 넉넉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내 삶이 초라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는 나'입니다."(50쪽)

만약 서정홍이 명함에 '농부 서정홍'이라 하지 않고 '시인 서정홍'이라고 적어 다니며 여기 이 책 <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펴내고 이런 말을 담아 넣었다면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농부는 …… 땀 흘려 일을 하지만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고마워할 줄 알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민들레처럼 봄을 노래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60쪽)


만약 서정홍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또 농사를 지어도 농약 치고 화학비료 뿌리고 비닐하우스 덮어씌우는 그런 농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면 입에 발린 소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맨 왼쪽이 서정홍, 대각선으로 마주보이는 이가 형수. 옆에 손을 든 사람은 바로 저랍니다. 달그리메 사진.


"이웃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그 문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까요."(79쪽) "내가 변해야 남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 사람들은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남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남이 나 대신 '그 무엇'을 해주기를 바랍니다."(173쪽)

서정홍은 스스로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서정홍은 마음이 열린 사람입니다. '좋은 이웃'을 얻기 위해서랍니다. 만약 서정홍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가 바뀌었고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2. 가장 불쌍하지만 가장 소중한 농부

"어떤 학생한테 '농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하고 물었더니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불쌍한 사람요.'라고 답했습니다. …… 아이들 눈엔 농부는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될 몹쓸 직업인 것이지요.

…… 분위기 있는 고급 술집에서 양주 마시며 울고불고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는 연속극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한테, 이 세상에 있는 수만 가지 직업이 다 사라져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농부가 없으면 어느 한 사람도 살 수 없다고 한들, …… 알아듣겠습니까?"(246쪽)


연속극은 어른들이 만듭니다. 어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서정홍이 어떤 여성단체 초청을 받아 '조화로운 삶, 아름다운 삶'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만약 혼인을 앞둔 아가씨라면,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 착하고 성실한 농촌 총각한테 시집을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 사람이 마음 착하고 성실하면 되지. 그 무엇을 바라랴. 이렇게 생각하고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손 들어 보시겠습니까?'


삼백 명 넘는 어머니들 가운데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시민사회 운동을 하면서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바꾸어 보려고 애쓰는 어머니들이 모였는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187쪽)


물론 서정홍은 '이럴 수 있단'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뚜렷이 나타내려다 보니 이런 말투가 나왔을 뿐입니다. 서정홍이 '이럴 수 있지 않은'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데서 반증이 됩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서정홍 선배 집에서 촛불을 켜고 얘기를 나눴지요. 2010년 1월. 달그리메 사진.


여기 이진홍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선생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진홍 씨가 아이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사람은 서로 가려고 난리 법석을 떠는, 돈 많이 벌고 편안한 길보다 서로 가지 않으려는 길을 스스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 길 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있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직업이지요. 그리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농부가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왜 농사를 짓지 않으세요?'

그 말을 듣고 십 년 남짓 아이들 앞에서 입만 살아서 옳은 말만 해 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뉘우치고 또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우선 나부터,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되자고."(230~231쪽)

서정홍은 이런 이진홍을 두고 '내가 만난 예수'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도 했답니다.

3. 자유를 즐기며 실천하는 삶

자유란 스스로(自) 말미암음(由)입니다. 남의 지배를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거나 휘둘리면 자유가 아닙니다. 지금 세상은 돈이 휘두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욕심 때문에 돈에 매이고, 휘둘립니다.

"돈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의사고 한의사고 약사고 교사고 교수고 박사고 변호사고 할 것 없이 돈이 안 된다면 누가 …… '머리 터지도록' 돈을 들여 공부를 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돈에 미쳐버렸는지도 모릅니다."(145~146쪽)


"그들은 집을 마련하고도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승용차를 사고도 승용차가 내뿜는 매연을 마시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 내 아들이 대학에 붙었으면 대학에 붙지 못한 아들이 있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174쪽)


서정홍과 서정홍의 삶이 돋보이는 까닭은 귀농을 해서가 아닙니다.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려고 해서도 아닙니다. 돈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입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좋은 말을 한다고 누가 알아듣기나 한단 말입니까? 이제 입으로 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수천 마디 좋은 말보다 실천하는 삶이 필요한 시대입니다."(68쪽)


중국 사상가 노신 선생이 떠오릅니다. "청년들이여, 지도자처럼 행세하는 것들의 말을 따르지 말아라. 그이들은 기껏 길거리에서 '이리로 가면 옳다', '이 길만이 살 길이다' 떠들 뿐이다. 자기 길이 옳다면 스스로 그리 가면 그뿐이다. 그이들은 그럴 용기도 없고 확신도 없다."


그리고 서정홍은 힘든 농사일도 즐기면서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산밭에서 낫질을 하다가,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거름을 뿌리다가, 호미질을 하다가, 이렇게 갖은 것들에게 눈길을 던지고 쓰다듬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를 줄은 알지만, 산길 곳곳에 피어 있는 키 작은 들꽃이나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비바람 맞으며 서 있는 나무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들꽃을 바라보거나 나무에 기대어 먼 하늘을 바라보면 얼마나 영혼이 맑아지는지 모릅니다."(78~79쪽)


이런 서정홍이 지금 경남 합천 가회면 황매산 기슭 나무실마을에서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이 그립습니다."(170쪽)


김훤주

※ 격주간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303호(2011년 9월 5일치)에 실은 글입니다.
기획회의(303호)(격주간)
카테고리 잡지 > 문학/교양
지은이 편집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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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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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라매 2011.09.13 0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부끄럽다 생각하면서도 헤쳐나오지 못함이 더 부끄럽구요.